영국 런던이 테러 공포에 얼어붙었다. 최근 유럽 대륙에서 테러가 잇따르는 동안에도 지난 2005년 7월 지하철 연쇄 폭탄 테러 이후 10년 이상 테러 안심지대 자리를 지켜왔던 런던이다. 그러나 좀비처럼 확산되는 테러는 또다시 바다 건너 영국까지 피로 물들였다.
22일(현지시간) 런던 의사당 인근서 차량과 흉기를 이용한 테러가 발생해 범인을 포함한 5명이 죽고 40여명이 부상당했다. 이날 밤 웨스트민스터 다리와 국회의사당 주변엔 긴장감만이 흐르고 있었다. 사건 현장과 가까운 웨스트민스터 지하철 역은 폐쇄되고 영국 국회의사당 입장이 금지되면서 적막이 감돌았다.
영국 런던의 랜드마크 런던 아이(London Eye)와 의사당을 연결하는 웨스트민스터 다리는 트라팔가 광장, 국립 미술관 등 관광 명소와 가까워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그러나 이날 만큼은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가운데 테러범과의 교전 과정에서 사망한 경찰관 케이스 팔머(Keith Palmer)를 추모하는 꽃다발만이 거리를 지키고 있었다.
경찰 병력은 대거 증강배치됐다. 인근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는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조기가 게양됐다.
이번 참사는 유럽 각국이 브뤼셀 자살테러 1주기를 맞아 테러에 대한 경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가운데 발생해 더욱 큰 충격을 주고 있다.
가디언의 보도에 따르면, 22일(현지시간) 오후 2시 40분 경 런던 의사당 인근 웨스트민스터 다리에서 진회색 SUV 차량이 갑자기 인도로 돌진해 순식간에 20여 명 이상이 바닥에 쓰러졌다. 불과 몇 분도 지나지 않아 범인은 흉기를 들고 차량에서 뛰어 내린 뒤 그를 저지하려는 경찰 두 명을 공격했다. 이 중 한 명은 범인이 휘두른 흉기에 심하게 찔려 목숨을 잃었다.
사건이 발생하고 6분이 지나자 첫 번째 구조대가 사건 현장에 도착했다. 당시 의사당에 있던 테리사 메이 총리는 경호원들에 둘러쌓여 즉시 다우닝가 10번지 총리실로 이동했다. 소식을 접한 하원도 곧바로 정회했다.
범인은 범행 후 의회에 진입하려다 무장경찰이 쏜 총에 맞아 병원으로 후송됐지만 이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 현장을 그대로 목격한 롭 라이언 씨는 "범인이 몰고 있던 차량이 사람들을 치고 내 쪽으로 오고 있음을 알았다. 나는 직관적으로 차를 피했지만 사람들이 그대로 차에 받치는 것을 봤다"며 "숨을 돌리고 주변을 돌아보니 충격 그 자체였다"고 전했다.
범인의 신분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그러나 런던 경찰은 범인이 지난 해 프랑스 니스와 독일 베를린에서 일어난 트럭 테러와 비슷한 수법을 이용한 것에 초점을 맞춰 테러로 규정하고 조사에 착수했다.범인이 이라크나 시리아에서 활동하다가 유럽으로 돌아온 이른바 '귀환 지하디스트(이슬람 성전주의자)일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극단주의 감시단체 '시테'는 테러범이 자메이카 이민자 가정 출신 '아부 이자딘'이라는 이름의 42살 남성으로, 2006년 영국의 대테러법에 따라 불법단체로 규정된 알부라바의 전 대변인이라고 밝혔다.
이날 긴급 안보회의를 주재한 메이 총리는 TV 생중계 연설에서 "폭력과 테러를 통해 민주주의와 자유, 법 질서를 파괴하려는 시도는 결국 실패할 것"이라며 "테러 앞에서 우리는 함께 뭉쳐야 한다"고 호소했다. 영국 정부도 다음날 아침 외교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무고하게 희생된 분들의 명복을 빌며, 희생자들의 유가족들과 영국 국민들에게 깊은 애도와 위로의 뜻을 표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날 테러 사건의 부상자 40명 중에는 한국인 여행객 5명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날 토비아스 엘우드 외무차관은 테러 현장에서 끝까지 남아 범인의 흉기에 찔려 다친 경찰을 응급처치한 사실이 알려져 '영웅'이 됐다.
[런던 = 박승철 기자 / 서울 = 김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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