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이어 영국도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에서 자국으로 오는 비행편 탑승객이 기내에 노트북, 태블릿 PC 등 휴대용 전자기기를 반입할 수 없도록 했다.
영국 BBC방송에 따르면 21일(현지시간) 영국 정부는 터키, 레바논, 요르단, 이집트, 튀니지, 사우디아라비아 등 6개 국가 내 10개 공항에서 출발하는 영국행 항공편 탑승객에게 전자기기 반입을 금지했다.
영국 교통부는 금지 품목의 크기를 길이 16cm, 너비 9.3cm, 높이 1.5cm로 정했다. 휴대전화 정도만 소형 기기만 반입이 가능해 탑승객은 대부분의 전자기기를 위탁 수하물로 부쳐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할 전망이다. 영국 정부 대변인은 "항공 보안에 관한 협상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규제"라며 "끊임없이 테러의 위협에 직면에 있는 상황에서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대응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BBC는 영국 정부가 미국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BBC는 "영국이 미국의 최신 정보 보고서를 기반으로 판단했을 것"이라며 "평가된 정보를 기반으로 이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분석했다. 이에 영국 정부 관계자는 "미국과 긴밀한 협의를 가진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하면서도 "그와 별개로 각자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해명했다.
영국 정부는 이번 조치가 구체적인 위협에 따른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과 영국이 이같은 결정을 내린 데에는 최근 폭탄 제조기술이 정교해지면서 공항 보안 감시망을 피해가는 일이 빈번해지고 있는 것이 이유가 될 수 있다고 추정했다.
지난해 2월 소말리아 모가디슈 국제공항에서 이륙한 다알로항공 소속 여객기 폭발 사고에서 노트북 형태의 폭발물이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배후로 추정된 무장단체 알샤바브는 한달 뒤에는 소말리아 벨레드웨이네공항에서 프린터와 노트북에 각각 폭탄 1개씩을 숨겨 반입하려다 적발되기도 했다.
FT는 최근 알카에다 아라비아반도 지부(AQAP)의 폭발물 위협에 새로운 증거가 발견된 것이 이번 조치의 배경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FT는 미군 특수부대가 AQAP의 예멘 근거지에 폭격을 강화하고 있는 사실이 이번 조치와 연관성이 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알샤바브가 테러에 사용한 폭발물은 모두 AQAP가 만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최근 AQAP는 금속 탐지기와 폭발물 탐지견도 발견할 수 없는 비금속 폭발물을 개발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경각심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보안 및 대테러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가 비논리적이라며 배경에 의문을 제기하고 나섰다. 이들은 전자기기를 화물칸에 실어도 폭발 가능성에는 변함이 없고 위험성이 같은 휴대전화만 기내 반입을 허용한 것도 모순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미국 유명 보안전문가인 브루스 슈나이어는 "여행하기를 어렵게 만드는 규제"라고 폄하했다. 그는 "기술면에서 10년 사이에 크게 변한 것이 없음에도 오늘날 더 심각해진 것처럼 취급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중동 국가에만 규제를 적용해야 할 근거가 전혀 없다"고 비판했다.
[박대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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