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화재현장에서 주민들을 대피시키다 정작 본인 목숨은 지켜내지 못한 경비원. 평소 '앉아있던 시간이 별로 없을 정도'로 주민들의 소소한 편의를 위해 정성을 다했다는 그의 마지막 길은 결코 쓸쓸하지 않았다. 그가 1년여 동안 지키고 있던 경비실에는 그를 추모하는 헌화와 손편지가 가득 찼고, 을지대학교 을지병원 빈소에는 그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한 아파트 주민들의 조문행렬이 끊이지 않았다.
양명승(60)씨가 사망한지 이틀이 지난 20일 오전. 그가 지난 1년여동안 자리를 지켰던 서울 노원구의 한 아파트 입구 경비실 인근에는 여전히 아파트 주민들이 오가며 '의인'에 대한 애도의 뜻을 전했다. 아파트 동대표 한모(63)씨는 " 20여년간 수많은 경비원들을 만나 봤지만 아저씨처럼 성실한 분을 못 만나봤다"며 "너무 안타까운 심정"이라고 말했다.
유족들에 따르면 양씨는 지극히 내성적인 소유자였다. 수줍음이 많아 평소 낯선 이들과는 말도 잘 섞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경비원으로서는 달랐다. 지나가는 주민이 안색이라도 안 좋으면 늘 먼저 "아이고 오늘 얼굴이 안 좋으시네요. 무슨 일 있으세요라"고 안부를 묻곤 했다는 게 주민들의 설명이다.
양씨는 평소 남다른 성실함과 책임감도 주민들과 신뢰를 쌓아나갔다. 한 주민은 "집을 오다가다 보면 경비실에 앉아 있는 모습을 거의 못 볼 정도로 늘 할일을 찾아서 하시는 분"이라고 말했다.
양씨는 한 의류업체에서 30여년간 디자이너로 근무했다. 퇴직을 하시고도 일을 하고픈 마음에 의류수선업으로 사회활동을 이어갔다. 노안으로 더 이상 정교한 업무를 못하게 되자 그는 곧장 경비원 교육을 받은 후 아파트에서 근무를 하기 시작했다. 동생 양현승(58)씨는 "특별히 생활형편이 어렵진 않았으나 늘 책임감 있게 꾸준히 일을 해왔다. 정말 열심히 사셨던 분"이라며 형님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양씨는 평소에 심장질환을 앓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화재로 인해 엘레베이터가 멈춰선 아파트 15층 계단을 뛰어 오르내리며 주민들의 대피를 도왔다. 동생 양씨는 "본인 질환을 생각했으면 그렇게 무리하지는 않았을 텐데···"라며 "(질환을) 생각 않고 주민들 구호활동에 뛰어들다가 봉변을 당한 것 같다"고 말했다. 양씨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기 위해 빈소에는 수십여 명이 찾아왔고, 오지못한 동 주민들은 대표를 통해 조의금과 함께 애도의 뜻을 표했다.
주민들은 경비실에 놓인 헌화와 감사 편지를 사진으로 찍어 빈소에 있는 유족들에게 보여줬다. 유가족들은 유치원생 어린이가 삐뚤빼뚤 글씨로 "존경한다" 쓴 감사쪽지를 읽다가 눈물을 왈칵 쏟아냈다. 아파트 주민들은 이와는 별도로 성금을 모금 중이다. 온라인에도 수많은 추모 댓글이 달렸다. 주민들의 안위를 살핀 고인에 대한 존경심을 전하는 메시지가 주를 이뤘다.
[연규욱 기자 / 임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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