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이더뉴스 / 대선주자들이 강화하라는 LTV·DTI 규제 심층분석 ◆
박근혜정부 부동산 정책의 핵심은 집권 2년차인 2014년 8월 1일 이른바 '초이노믹스' 결과물인 담보인정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 완화로 요약된다.
LTV는 50%에서 70%로, DTI는 50%에서 60%로 각각 상향 조정됐다. 이를 통해 집값의 70%, 연소득 대비 원리금상환액 60% 범위까지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있게 됐다. 게다가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조치까지 겹치면서 집값은 고공행진했다. 높아진 전셋값에 떠밀려 너도나도 초저금리 상황을 활용해 집을 사면서 가계부채는 급증했다. 주택담보대출 폭증으로 가계부채 문제가 심각해지자 집권 4년차인 지난해부터 고정금리에다 원금도 나눠 갚게 하는 '여신심사 선진화 가이드라인'이 도입됐다. 지난해 은행과 보험에 적용한 데 이어 올 들어 지난 3월부터 상호금융회사, 새마을금고로 적용 대상이 확대됐다. 올해 1월 1일 이후 입주자 모집공고가 나온 신규 분양 아파트도 대상이다.
여신심사 가이드라인 도입으로 가계부채 질(質)은 나아질 것으로 기대되지만 양(量)은 좀처럼 꺾이지 않고 있다. 가계부채(한국은행 집계 가계신용 기준)는 2014년 9월 말 1056조원에서 지난해 말 1344조원으로 뛰어올랐다.
가계부채 증가세를 소득 증가세가 따라잡지 못하니 정권 교체기 금융당국은 노심초사하고 있다. 지난 15일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기준금리를 인상했고 연내 두 차례 더 올린다니 이자 부담이 갈수록 커질 전망이다. 금융당국이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를 불러 직간접적인 대출 총량 규제에 나선 배경이다. 이제 쓸 수 있는 카드는 얼추 다 쓴 것 같으니 남은 것은 LTV와 DTI다. 두 지표의 운명에 직접적인 이해당사자인 부동산시장도 초미의 관심을 쏟고 있다. 일단 대선후보 지지율 1·2위를 달리고 있는 문재인·안희정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캠프는 현행 LTV·DTI 체제를 비판적으로 보고 있다.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도 지표규제 강화를 지지하는 입장이다. LTV와 DTI를 바짝 조여 가계부채 증가세를 잡겠다는 복안이다. 그렇다면 이들 대선주자의 주장처럼 LTV·DTI 규제를 강화해야 할까, 아니면 더 완화해야 할까. 현 수준을 그대로 유지할 수도 있다. 조기 대선으로 5월 들어설 신정부의 주택·부채 정책 키워드가 될 LTV와 DTI의 개념과 취지를 집중 분석했다.
빚은 그 자체로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다. 갚을 수 있는 빚은 좋은 빚이고, 갚을 수 없는 빚은 나쁜 빚이다. 금융당국은 좋은 빚과 나쁜 빚을 구분하기 위해 LTV(Loan To Value·담보인정비율)와 DTI(Debt To Income·총부채상환비율)라는 지표에 맞춰 금융회사들이 주택담보대출 대출한도를 산정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2000년대 들어 서울을 중심으로 부동산 과열 양상이 심각해지자 2002년 9월 투기과열지구를 시작으로 LTV가 처음으로 도입됐고 참여정부 시절인 2005년 8월에는 DTI 시행에 들어갔다.
집값 대비 대출한도를 뜻하는 LTV의 규제비율은 주택 유형이나 지역과 무관하게 일률적으로 70%다. 주택담보대출금 한도가 집값의 70% 이하로 제한된다는 뜻이다. DTI는 해당 주택담보대출 연간 원리금 상환액을 연간 소득으로 나눈 비율로 수도권 아파트에 한해 60%가 적용된다. 연간 원리금상환액이 소득의 60%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은행들이 주택 구입자에게 돈을 빌려줄 수 있다는 얘기다. LTV, DTI 모두 최저 50%였다가 2014년 8월 1일부터 각각 70%(전국 모든 주택), 60%(수도권 아파트)로 완화됐다. 1년 단위의 한시적 완화 조치가 거듭 연장돼 2017년 7월 31일까지 완화된 비율이 적용된다.
부동산 경기 과열 때 DTI와 LTV를 강화함으로써 가계부채나 집값 급등세를 진정시키고 은행 부실 가능성과 차주의 연체 가능성을 동시에 차단할 수 있다. 반면 집값 폭락 조짐이 보이는 등 부동산 경기 침체 조짐이 뚜렷할 때 지표규제를 완화함으로써 부동산 경기를 부양할 수 있는 강력한 부동산 경기조절 카드다.
부동산 가격은 정부의 경제 성적표라고 할 수 있는 국내총생산(GDP)에 영향을 미치고 집값 폭락은 주택 보유자들의 반발로 이어진다. 이 때문에 정권마다 적정 수준의 부동산 가격 유지에 신경을 써왔다. 여기까지는 모두 정책결정자나 부동산 전문가들의 관심사다.
하지만 빚을 내서 집을 사야 하는 실수요자 입장에서 두 지표의 의미는 다르게 다가온다. 우선 LTV는 은행 재무건전성을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만든 지표다. 정부가 LTV 규제 비율을 70% 이하로 설정했다는 것은 집값이 최대 30% 떨어지는 상황까지 대비하자는 뜻이다.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주택 구입자가 대출금을 갚지 못하더라도 집값 하락폭이 30% 미만일 경우 은행은 손해 볼 일이 없다. 집을 경매에 부쳐 대출금을 상환할 수 있기 때문이다.
DTI는 돈을 빌리는 주택구입자가 원리금 상환에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다. 연간 원리금 상환액이 연간 소득의 60%를 웃도는 대출을 제한함으로써 주택구입자의 무분별한 대출을 억제한다. LTV는 은행을 보호하고, DTI는 차주를 보호하는 셈이다. 다만 이면을 들여다보면 은행을 보호하는 LTV가 때론 차주를 제약하고 차주를 보호한다는 DTI는 은행을 구속하기도 한다.
갚을 수 있는 범위의 빚을 내서 집을 사는 보통사람들에게 LTV는 제약이자 의무다. 주택가격 상승률이 소비자물가 상승률과 정기 예·적금 금리를 꾸준히 웃돌 것이라고 보고 갚을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돈을 빌릴 수 있는 이들에게는 LTV가 커다란 제약이 될 수 있다. 금융감독원과 한국은행, 통계청이 지난해 발표한 '가계금융조사'에 따르면 2015년 기준으로 30대 가구 평균소득은 5148만원이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올해 2월 기준 서울의 평균 주택가격은 5억1000만원이다. 수중에 1000만원밖에 없는 30대 A씨가 5억원을 빌려 집을 산다면 이 빚은 좋은 빚일까, 나쁜 빚일까.
시중은행에서 5년 고정혼합형 주택담보대출을 금리 연 3.42%(1월 KB국민은행 만기 10년 이상 주택담보대출 평균 금리), 30년 원리금균등 분할상환 조건으로 받으면 월 원리금 상환액은 222만2954원, 연간 원리금 상환액은 2667만5448원이다. A씨의 DTI는 51.8% 수준으로 금융당국이 정한 규제비율을 충족한다. A씨가 이 빚을 갚을 수 있다고 금융당국이 인정한 셈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A씨는 5억원을 빌릴 수 없다. LTV 때문이다. 은행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 때문에 주택 실수요자가 제약을 받는 셈이다. LTV가 70%라는 얘기는 바꿔 말하면 집을 사기 위해 필요한 돈이 30%라는 뜻이다. 집값이 폭등하면서 이 30%에 상응하는 금액이 날로 커지고 있다.
경기도의 한 시중은행 A지점장은 "상환 능력이 있는 젊은 사람들이 LTV 때문에 집을 못 사고 전혀 소득도 없는 중장년들이 약간의 여윳돈을 갖고 투자를 반복하고 있다"며 "현 DTI, LTV 규제가 이를 묵인하거나 허용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A지점장은 "소득이 있는 젊은 사람들이 집을 사줘야 집값 하락이나 세금 부담을 걱정하는 다주택자나 은퇴를 앞두고 주택을 되팔려는 중장년 역시 집을 팔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량 차주만 억울한 게 아니다. 때로는 은행도 억울하다. DTI는 주택 실수요자의 부실 가능성을 예방하기 위한 규제지만 은행에 일종의 '의무'를 부과한다. DTI를 꽉 채우는 대출이 일종의 권리로 인식될 수 있기 때문이다. "DTI 범위 내 대출인데 왜 대출을 안 해주냐"며 고객이 은행 직원에게 따져 물을 경우 은행이 대출을 거절할 방법이 현재로선 없다. 특히 한국은 전 세계적으로 DTI 규제 수준이 낮기 때문에 이 같은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DTI 기본규제비율은 60%이지만 원금분할 상환과 고정금리 대출을 선택할 경우 각각 5%포인트씩 상승해 최대 70%의 DTI 적용도 가능하다. 또 지난해 이전 분양아파트나 지방 주택처럼 DTI 규제가 아예 없는 경우 금융회사는 속수무책이다.
A씨와 같은 금액의 아파트를 구입하고자 하는 60대 B씨. 100만원의 연금소득을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소득이 없다. 수도권 외곽에 집을 한 채 갖고 있는데 '친구 따라 강남 가는' 격으로 서울의 아파트를 지난해 분양받았다. B씨는 1억5300만원의 보유 현금이 있기 때문에 LTV 한도를 꽉 채워 입주 시점인 내년 초 집단대출을 받을 수 있다. 집단대출은 DTI를 보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1월 1일 이전 입주자모집공고 아파트라 원금분할상환 의무도 없다. 10년까지 거치기간을 설정하고 대출을 받을 수 있다. 거치에 따라 가산금리가 붙은 이자는 연 4%. 월 이자액은 119만원에 달하지만 보증부 월세로 받은 임대료로 이자를 충당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이처럼 무리한 투자를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2년간 보유하고 집값이 오르면 되팔아 이익을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집값이 하락해도 하락폭이 30% 이내라면 은행은 손해를 보지 않기 때문에 이 같은 관행이 되풀이되고 있다.
은행 건전성과 주택 시장 활성화에 무게를 둔 그간 주택·부채 정책이 정작 집이 필요하고 상환능력이 있는 이들의 주택 구입을 제약하고 반면 상환능력이 불투명한 투자자들에게 주택 구입 유인을 제공하는 불합리한 결과를 낳고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한국의 LTV와 DTI 제도는 금융규제이기에 앞서 주택 정책을 위한 수단에 가까웠기 때문에 갚을 수 있는 범위에서 돈을 빌리고 은행이 건전성 관리를 하는 금융규제의 목적과 다소 괴리가 있다"며 "단순히 LTV·DTI를 냉온탕식으로 올리고 내리는 관행에서 벗어나 새로운 여신심사 모형을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 <용어 설명>
▷ LTV :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때 담보가치 대비 대출이 가능한 한도. 예를 들어 LTV가 70%면 5억원짜리 아파트 소유자는 최대 3억5000만원까지 빌릴 수 있다.
▷ DTI : 소득 기준으로 총부채 상환능력을 따져 대출 한도를 정하는 비율. 예를 들어 DTI가 60%면 연소득 1억원인 대출자는 연간 원리금 상환액이 6000만원을 넘지 않도록 대출이 제한된다.
[정석우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박근혜정부 부동산 정책의 핵심은 집권 2년차인 2014년 8월 1일 이른바 '초이노믹스' 결과물인 담보인정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 완화로 요약된다.
LTV는 50%에서 70%로, DTI는 50%에서 60%로 각각 상향 조정됐다. 이를 통해 집값의 70%, 연소득 대비 원리금상환액 60% 범위까지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있게 됐다. 게다가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조치까지 겹치면서 집값은 고공행진했다. 높아진 전셋값에 떠밀려 너도나도 초저금리 상황을 활용해 집을 사면서 가계부채는 급증했다. 주택담보대출 폭증으로 가계부채 문제가 심각해지자 집권 4년차인 지난해부터 고정금리에다 원금도 나눠 갚게 하는 '여신심사 선진화 가이드라인'이 도입됐다. 지난해 은행과 보험에 적용한 데 이어 올 들어 지난 3월부터 상호금융회사, 새마을금고로 적용 대상이 확대됐다. 올해 1월 1일 이후 입주자 모집공고가 나온 신규 분양 아파트도 대상이다.
가계부채 증가세를 소득 증가세가 따라잡지 못하니 정권 교체기 금융당국은 노심초사하고 있다. 지난 15일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기준금리를 인상했고 연내 두 차례 더 올린다니 이자 부담이 갈수록 커질 전망이다. 금융당국이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를 불러 직간접적인 대출 총량 규제에 나선 배경이다. 이제 쓸 수 있는 카드는 얼추 다 쓴 것 같으니 남은 것은 LTV와 DTI다. 두 지표의 운명에 직접적인 이해당사자인 부동산시장도 초미의 관심을 쏟고 있다. 일단 대선후보 지지율 1·2위를 달리고 있는 문재인·안희정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캠프는 현행 LTV·DTI 체제를 비판적으로 보고 있다.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도 지표규제 강화를 지지하는 입장이다. LTV와 DTI를 바짝 조여 가계부채 증가세를 잡겠다는 복안이다. 그렇다면 이들 대선주자의 주장처럼 LTV·DTI 규제를 강화해야 할까, 아니면 더 완화해야 할까. 현 수준을 그대로 유지할 수도 있다. 조기 대선으로 5월 들어설 신정부의 주택·부채 정책 키워드가 될 LTV와 DTI의 개념과 취지를 집중 분석했다.
집값 대비 대출한도를 뜻하는 LTV의 규제비율은 주택 유형이나 지역과 무관하게 일률적으로 70%다. 주택담보대출금 한도가 집값의 70% 이하로 제한된다는 뜻이다. DTI는 해당 주택담보대출 연간 원리금 상환액을 연간 소득으로 나눈 비율로 수도권 아파트에 한해 60%가 적용된다. 연간 원리금상환액이 소득의 60%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은행들이 주택 구입자에게 돈을 빌려줄 수 있다는 얘기다. LTV, DTI 모두 최저 50%였다가 2014년 8월 1일부터 각각 70%(전국 모든 주택), 60%(수도권 아파트)로 완화됐다. 1년 단위의 한시적 완화 조치가 거듭 연장돼 2017년 7월 31일까지 완화된 비율이 적용된다.
부동산 경기 과열 때 DTI와 LTV를 강화함으로써 가계부채나 집값 급등세를 진정시키고 은행 부실 가능성과 차주의 연체 가능성을 동시에 차단할 수 있다. 반면 집값 폭락 조짐이 보이는 등 부동산 경기 침체 조짐이 뚜렷할 때 지표규제를 완화함으로써 부동산 경기를 부양할 수 있는 강력한 부동산 경기조절 카드다.
부동산 가격은 정부의 경제 성적표라고 할 수 있는 국내총생산(GDP)에 영향을 미치고 집값 폭락은 주택 보유자들의 반발로 이어진다. 이 때문에 정권마다 적정 수준의 부동산 가격 유지에 신경을 써왔다. 여기까지는 모두 정책결정자나 부동산 전문가들의 관심사다.
하지만 빚을 내서 집을 사야 하는 실수요자 입장에서 두 지표의 의미는 다르게 다가온다. 우선 LTV는 은행 재무건전성을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만든 지표다. 정부가 LTV 규제 비율을 70% 이하로 설정했다는 것은 집값이 최대 30% 떨어지는 상황까지 대비하자는 뜻이다.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주택 구입자가 대출금을 갚지 못하더라도 집값 하락폭이 30% 미만일 경우 은행은 손해 볼 일이 없다. 집을 경매에 부쳐 대출금을 상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갚을 수 있는 범위의 빚을 내서 집을 사는 보통사람들에게 LTV는 제약이자 의무다. 주택가격 상승률이 소비자물가 상승률과 정기 예·적금 금리를 꾸준히 웃돌 것이라고 보고 갚을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돈을 빌릴 수 있는 이들에게는 LTV가 커다란 제약이 될 수 있다. 금융감독원과 한국은행, 통계청이 지난해 발표한 '가계금융조사'에 따르면 2015년 기준으로 30대 가구 평균소득은 5148만원이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올해 2월 기준 서울의 평균 주택가격은 5억1000만원이다. 수중에 1000만원밖에 없는 30대 A씨가 5억원을 빌려 집을 산다면 이 빚은 좋은 빚일까, 나쁜 빚일까.
시중은행에서 5년 고정혼합형 주택담보대출을 금리 연 3.42%(1월 KB국민은행 만기 10년 이상 주택담보대출 평균 금리), 30년 원리금균등 분할상환 조건으로 받으면 월 원리금 상환액은 222만2954원, 연간 원리금 상환액은 2667만5448원이다. A씨의 DTI는 51.8% 수준으로 금융당국이 정한 규제비율을 충족한다. A씨가 이 빚을 갚을 수 있다고 금융당국이 인정한 셈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A씨는 5억원을 빌릴 수 없다. LTV 때문이다. 은행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 때문에 주택 실수요자가 제약을 받는 셈이다. LTV가 70%라는 얘기는 바꿔 말하면 집을 사기 위해 필요한 돈이 30%라는 뜻이다. 집값이 폭등하면서 이 30%에 상응하는 금액이 날로 커지고 있다.
경기도의 한 시중은행 A지점장은 "상환 능력이 있는 젊은 사람들이 LTV 때문에 집을 못 사고 전혀 소득도 없는 중장년들이 약간의 여윳돈을 갖고 투자를 반복하고 있다"며 "현 DTI, LTV 규제가 이를 묵인하거나 허용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A지점장은 "소득이 있는 젊은 사람들이 집을 사줘야 집값 하락이나 세금 부담을 걱정하는 다주택자나 은퇴를 앞두고 주택을 되팔려는 중장년 역시 집을 팔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량 차주만 억울한 게 아니다. 때로는 은행도 억울하다. DTI는 주택 실수요자의 부실 가능성을 예방하기 위한 규제지만 은행에 일종의 '의무'를 부과한다. DTI를 꽉 채우는 대출이 일종의 권리로 인식될 수 있기 때문이다. "DTI 범위 내 대출인데 왜 대출을 안 해주냐"며 고객이 은행 직원에게 따져 물을 경우 은행이 대출을 거절할 방법이 현재로선 없다. 특히 한국은 전 세계적으로 DTI 규제 수준이 낮기 때문에 이 같은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DTI 기본규제비율은 60%이지만 원금분할 상환과 고정금리 대출을 선택할 경우 각각 5%포인트씩 상승해 최대 70%의 DTI 적용도 가능하다. 또 지난해 이전 분양아파트나 지방 주택처럼 DTI 규제가 아예 없는 경우 금융회사는 속수무책이다.
A씨와 같은 금액의 아파트를 구입하고자 하는 60대 B씨. 100만원의 연금소득을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소득이 없다. 수도권 외곽에 집을 한 채 갖고 있는데 '친구 따라 강남 가는' 격으로 서울의 아파트를 지난해 분양받았다. B씨는 1억5300만원의 보유 현금이 있기 때문에 LTV 한도를 꽉 채워 입주 시점인 내년 초 집단대출을 받을 수 있다. 집단대출은 DTI를 보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1월 1일 이전 입주자모집공고 아파트라 원금분할상환 의무도 없다. 10년까지 거치기간을 설정하고 대출을 받을 수 있다. 거치에 따라 가산금리가 붙은 이자는 연 4%. 월 이자액은 119만원에 달하지만 보증부 월세로 받은 임대료로 이자를 충당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이처럼 무리한 투자를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2년간 보유하고 집값이 오르면 되팔아 이익을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집값이 하락해도 하락폭이 30% 이내라면 은행은 손해를 보지 않기 때문에 이 같은 관행이 되풀이되고 있다.
은행 건전성과 주택 시장 활성화에 무게를 둔 그간 주택·부채 정책이 정작 집이 필요하고 상환능력이 있는 이들의 주택 구입을 제약하고 반면 상환능력이 불투명한 투자자들에게 주택 구입 유인을 제공하는 불합리한 결과를 낳고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한국의 LTV와 DTI 제도는 금융규제이기에 앞서 주택 정책을 위한 수단에 가까웠기 때문에 갚을 수 있는 범위에서 돈을 빌리고 은행이 건전성 관리를 하는 금융규제의 목적과 다소 괴리가 있다"며 "단순히 LTV·DTI를 냉온탕식으로 올리고 내리는 관행에서 벗어나 새로운 여신심사 모형을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 <용어 설명>
▷ LTV :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때 담보가치 대비 대출이 가능한 한도. 예를 들어 LTV가 70%면 5억원짜리 아파트 소유자는 최대 3억5000만원까지 빌릴 수 있다.
▷ DTI : 소득 기준으로 총부채 상환능력을 따져 대출 한도를 정하는 비율. 예를 들어 DTI가 60%면 연소득 1억원인 대출자는 연간 원리금 상환액이 6000만원을 넘지 않도록 대출이 제한된다.
[정석우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