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된 지 사흘째인 12일 박 전 대통령의 서울 삼성동 사저 주변은 분주한 모습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이사준비'를 위한 차량들에 더해 박 전 대통령들 지지자 수십 여 명이 몰리며 하루종일 혼잡했다.
이날 새벽 5시 반께부터 청와대 경호팀으로 보이는 차량들이 짐을 옮기기 위해 사저를 드나들었다. 잠시 뒤인 오전 7시께는 장판을 뒷좌석에 실은 차량이 사저 내로 들어갔고, 청소업체 직원들로 보이는 인부 3명도 사저로 들어가 집 안 청소를 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오전에는 KT 직원들이 사저에 인터넷을 설치하러 왔다가 경찰과 취재진, 시위대 등으로 입구 주변이 붐비자 발길을 돌리기도 했다. 이들은 약 한 시간 뒤 다시 사저로 들어가 작업을 마쳤다. 현장에서 만난 KT 직원은 "집 안에는 못 들어가고 밖에서만 (인터넷을) 설치했다"고 말했다. 냉장고, 텔레비젼, 세탁기 등 가전제품을 싣고 온 하이마트 차량도 사저 앞에 잠시 서있다 이내 되돌아갔다. 차량에 탑승해 있던 관계자는 "사저 측에서 잠시 뒤 다시 오라는 전화를 받아서 돌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저 인근엔 태극기와 성조기, 박 전 대통령 얼굴을 담은 대형 피켓 등을 든 박 전 대통령 지지자 수십여 명도 모습을 나타냈다. 이들은 이틀 전 헌법재판소의 박 대통령 파면결정에 분개하며 '고영태·손석희를 구속하라' '쓰레기 언론 꺼져라' '박근혜 대통령 만세' 등 구호를 외쳤다. 일부는 취재진을 향해 욕설을 내뱉고 시비가 붙는 등 한 때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그동안 탄핵반대 집회에 지속적으로 나왔다는 문명주 씨(63)는 흐느끼는 듯한 목소리로 "오늘 친구들이 다 모이기로 했다"며 "너무 억울해서 어젯밤 잠을 설쳤다. 마음이 풀릴 때까지 계속 이 곳을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이지나 씨(61)는 "8대 0이 말이나 되느냐"며 "한국 사람은 이런 훌륭한 대통령 가질 자격이 없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사저 앞 집회신고를 했다고 밝힌 보수단체 자유통일 유권자본부 관계자는 "앞으로 4개월 간 매일 집회를 신고해 놨다"며 "집회 취소가 되지 않도록 매일 한 명씩 나와 있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이날 사저 인근에 3개 중대 병력을 투입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사저 인근이 붐비자 동네 주민들 또한 밖으로 나와 상황을 유심히 지켜보는 모습이었다. 인근 주민 박중호 씨(67)는 "4년 전 이곳에서 '희망찬 대한민국을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했던 박 전 대통령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며 "4·19 혁명부터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이런 일들이 반복된다는 현실이 정말 슬프다"고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그는 "일부 노인들이 '옛날엔 이보다 더 심한 경우도 있었는데 액수도 얼마 안 되는 걸 갖고 왜 유독 박 전 대통령만 못살게 구느냐'고 말하기도 하는데, 이런 매너리즘을 빨리 고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전 대통령 사저 앞에서 10년 째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는 이 모씨는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하고 하루 빨리 경제를 살리는데 국가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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