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탄핵인용] 안보전문가의 충언 "동북아 4강, 한국 고려치 않을 것"
입력 2017-03-10 12:49 

대통령 탄핵이라는 헌정 초유의 사태를 맞은 '선장 없는 한국호'가 마주할 60일간의 조기 대선 국면에서 한반도를 둘러싼 '미·중·일·러' 동북아 4강은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한반도에 관한 새롭고 밀도 있는 논의를 진행할 가능성이 높다. 전문가들은 스트롱맨이라 불리는 각국 지도자의 스타일과 새로 들어선 트럼프 행정부의 아시아 중시 정책을 고려할 때 각국은 한국을 배제한 채 한반도를 두고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숨가쁜 협상을 벌일 것이라 전망했다. 당장 미·중은 4월 중 트럼프 정부 출범 후 첫 정상회담을 예고하고 있다. 이 안에서 북핵을 둘러싼 G2간의 새로운 '빅 딜(big deal)'이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선장이 없는 한국호가 어떤 목소리를 낼 수 있을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한반도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 배치와 중국의 사드 보복, 상존하는 북한의 도발 가능성과 소녀상을 둘러싼 한·일 갈등 등 한국의 운명이 걸린 각종 외교·안보 현안이 '2개월 정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 앞에 즐비하게 놓여있다. 이런 대외적 환경과 함께 대선을 앞둔 대권 후보들이 쏟아낼 포퓰리즘적 정책과 탄핵심판 후 광장에 나설 분열된 국민,국정 운영 동력을 상실한 정부까지 대·내외적으로 한국 외교·안보는 깊은 수렁에 빠질 것으로 보인다.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원장은 "앞으로 한국 앞에 드리워진 외교 전망은 그다지 밝지가 않다. 사실 정말 어둡다"고 우려했다.
우선 당장 눈앞에 놓인 숙제는 17일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의 첫 방한이다. 5박 6일(15~19일)간의 일정으로 일본→한국→중국 순으로 아시아를 찾을 틸러슨 장관은 방한 기간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와 면담을 갖고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만찬을 포함해 3시간가량 심도 있는 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이 자리에서 북핵 위협에 대한 한·미 공동 대응 방안과, 사드 배치 후 가속화된 중국의 보복, 김정남 피살 사건 등 다양한 한반도 현안이 논의될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2개월 짜리' 정부라는 멍에를 짊어진 현 정부의 주장에 틸러슨 장관이 얼마나 비중을 실을지는 의문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미 측에서 우리 의견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우리 소관 밖의 일이다. 우린 현 정부의 입장을 최선을 다해 설명할 뿐이다"고 말했다. 3월 한·미 군사훈련 기간과 4월 15일 김정일 생일을 앞두고 예상되는 북한의 고강도 도발 역시 권한대행 기간 한·미 동맹의 공동 대응을 요구하는 주요 과제다. 신각수 전 주일 대사는 "안보 문제 만큼은 초당적 자세로 현 정부가 활동할 수 있는 운신의 폭을 넓혀줘야 한다"며 "북핵 위협에 대응하는 한·미 협력은 지속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사드 배치를 결정한 박근혜 정부가 막을 내린 상황에서 대선을 앞둔 국내 여론을 흔들기 위한 중국의 보복이 가속화될 가능성도 있다. 위안부 합의에 비판적인 야권 대선 주자들의 대통령 당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일본 역시 양국 관계 회복을 꾀하기보다 한국 정치를 관망하며 조기 대선 결과를 기다릴 것으로 보인다. 다만 신각수 전 주일대사는 4월 미·중 정상회담 조율을 위한 틸러슨 장관의 방중을 앞두고 "중국이 사드 보복의 템포를 조절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일본 역시 탄핵 인용 후 한국 정부와의 소통을 명분으로 나가미네 야스마스 주한 일본 대사를 귀국시킬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이런 상황에서 권한대행 정부가 '상황관리'에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사드 배치와 같이 돌이킬 수 없는 국가 간 합의는 지속 시행하면서도 중·일과의 관계 악화를 막아야 한다고 했다. 천 전 수석은 이와 함께 "표를 얻기 위한 주장과 국익을 고려한 외교·안보 정책은 차원이 다른 문제라며 정치권에서도 이 점을 유념해야 할 것"이라 조언했다.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대통령 탄핵이라는 헌청 초유의 사태에서 외교·안보 문제 만큼은 초당적인 자세로 여·야·정이 모두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북핵 위협이 고도화되고 중국의 사드 보복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국내 내부마저 분열한다면 한국의 주장을 귀담아들을 외국 정부는 아무도 없다는 것이 이들의 우려였다.
신각수 전 주일 대사는 "조기 대선 기간 북한의 도발이 있을 때 헌정위기를 겪는 정부가 어떻게 대처할 지 상당히 우려되는 상황"이라며 "사드문제, 한·일 위안부 문제 관련 여야 의견 대립이 심화돼 중국과 일본에 이용당하는 상황이 최악의 시나리오"라고 말했다. 박 원장은 "한반도를 둘러싸고 새로운 지도자들이 변화를 시도하는데 우리는 아직 내부 숙제도 풀지 못한 느낌이다"며 "국내 리더십 공백과 상관 없이 다른 국가들은 엄청난 속도로 달려갈 것이다. 내부적으로 갑론을박에 빠지면 어떠한 전략적 대응도 불가능하다"고 했다.
[박태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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