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27일 시행했던 제1차 반(反)이민 행정명령이 법원에서 제동이 걸리자 트럼프 행정부가 법망을 우회하고 여론과 타협한 제2차 반이민 행정명령을 강행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6일(현지시간) 입국금지 대상을 축소하고 시행 유예기간을 둔 수정 반이민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새 행정명령은 90일간 입국을 금지하고 비자발급을 중단했던 기존 7개국에서 이라크를 제외해 이란 시리아 리비아 예멘 소말리아 수단 6개국으로 축소됐다. 미국의 이슬람국가(IS) 테러 위협 대처에 이라크 정부가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는 점이 감안됐다. 국무부는 미국의 비자심사에 이라크 정부가 적극 협력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새 행정명령은 또 입국금지 대상 6개국 국적을 갖고 있더라도 미국 영주권을 소지한 경우에는 입국을 허용하기로 했다.
기존에 발급받은 비자에 대해서도 효력을 인정했다. 사전 예고없이 시행됐다는 이유로 1차 반이민 행정명령이 법원에서 제동이 걸린 점을 감안해 이번에는 10일의 유예기간을 뒀다. 이에 따라 새 행정명령 발동은 오는 16일부터 시작된다. 무기한 중단했던 시리아 난민 수용에 대해서는 120일간 난민 입국을 유보하기로 시한을 정했다.
반이민 정책에 대한 여론의 반발을 우려해 대국민 설득전에도 총력을 기울였다.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 서명 직후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제프 세션스 법무장관, 존 켈리 국토안보장관이 잇따라 기자회견을 자청해 미국의 안보를 위해 일부 이슬람 국적자 입국금지가 불가피함을 역설했다.
틸러슨 장관은 "행정명령은 해외 테러리스트들의 미국 입국을 막기 위한 조치"라며 "국민의 안전을 보호하는 것은 대통령의 피할 수 없는 의무"라고 강조했다.
세션스 장관은 "입국금지 대상이 된 6개국 중 3개국은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된 나라고, 나머지는 테러리스트들의 피난처가 된 나라"라며 "이들 국적자에 대한 첨단 검색과 심사 시스템이 완성될 때까지 일시적으로 입국을 제한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켈리 장관은 "합법적인 영주권자나 이미 비자를 받은 사람들은 자유롭게 미국을 드나들 수 있다"며 "예상치 못한 피해의 범위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역설했다.
연방수사국(FBI)는 때마침 미국에 입국한 난민 300여명이 테러에 연루된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고 밝혀 반이민 행정명령의 정당성에 힘을 실었다. FBI는 그러나 테러 연루 의혹을 받고 있는 300여명 난민의 국적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수정 행정명령이 법과 여론을 상당히 의식했지만 여전히 여론의 반발이 작지 않고, 종교의 자유 침해라는 위헌 논란을 비켜가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무슬림계 하원의원인 안드레 카슨 민주당 의원은 "수정 명령은 첫 행정명령의 반복에 불과하다"며 "무슬림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달라진 것이 거의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하원 정보위 간사인 애덤 시프 의원은 "테러 가능성을 근거로 입국금지 대상국을 선정한다면 파키스탄이 리스트의 첫머리에 올라야 할 것"이라며 "수정 명령도 첫 행정명령과 마찬가지로 근본적인 결함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시민단체인 시민자유연맹(ACLU)은 성명을 통해 "범위가 축소되기는 했지만 위헌 소지는 그대로"라며 "필요한 법적 대응을 진행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당장 버지니아 매사추세츠 워싱턴 등 일부 주 법무부는 수정 행정명령 시행을 중단시키기 위한 법적조치 검토에 착수했다.
제1차 행정명령 당시 가장 먼저 소송을 제기해 법원의 금지명령을 끌어냈던 밥 퍼거슨 워싱턴 법무장관은 이번 주 내에 법적 조치에 나설 방침이라고 밝혔다.
마크 헤링 버지니아 법무장관은 "수정 행정명령이 보내는 메시지 역시 종교적 차별과 자유 침해라는 지난 번 행정명령과 동일하다"면서 법적 대응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마우리 힐리 매사추세츠 법무장관도 성명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 정책에 대한 반대 입장을 그대로 유지한다"고 선언했다.
[워싱턴 = 이진명 특파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