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쪼개진 광장의 중심에서 쓰레기를 줍다…파란눈의 홍익인간 전도사
입력 2017-03-05 16:52 
<연규욱 기자>

"대한민국은 하나입니다. 촛불과 태극기로 쪼개진 광장의 화합을 '홍익(弘益) 정신'으로 이뤄냅시다."
서울 도심 광장이 탄핵을 찬성하는 '촛불'과 탄핵을 반대하는 '태극기'로 갈라진 지난 3월 1일. 경찰차벽으로 둘러쌓인 세종대로 사이에서 쓰레기 봉지와 집계를 든 파란 눈의 외국인이 눈에 띄었다. 미국인 팀 버드송(63) 전 한양대 교수다.
버드송 씨는 지난 2001년 방한했다가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 정신에 푹 빠져 그 이후부터 홍익정신 '전도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모두를 이롭게 한다'는 홍익정신을 스스로 실천하기 위해 집회가 열리는 주말마다 도심에 나와 쓰레기를 줍고 있다.
외국인이 바라보는 광장의 집회는 어떤 모습일까. 이날 매일경제와 만난 버드송 씨는 "태극기 집회쪽 참가자들은 '안보'를 걱정해 탄핵을 반대하는 것이고, 촛불 쪽 참가자들은 '깨끗한 정치'를 원하는 것"이라며 "탄핵에 대한 의견이 다를 뿐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은 본질적으로 같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버드송 씨는 "수개월 동안 평화적 시위를 이어지는 모습을 보고 한국 시민의 성숙함에 놀랐다"고 엄지를 지켜세웠다. 이어 "미국에서 백만명 가량 모이는 시위가 일어났으면 결과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며 "장기간 평화집회가 이어질 수 있는 것은 한국인 마음에 '평화'를 사랑하는 홍익정신이 살아있다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파란 눈을 가진 홍익정신 전도사는 "물질 만능주의와 인간의 이기심이 판치는 세상에 서로를 도와 널리 이롭게 한다는 홍익정신은 일종의 '공생 민주주의'로 볼 수 있다"며 "대한민국의 건국 이념인 홍익정신을 회복하는 것만이 분열되는 한국 사회를 화합으로 이끌 수 있는 길"이라고 조언했다. 서로 '다름'은 인정하고 '같음'은 다시 발견하는 것. 그가 말하는 '홍익 민주주의'다.
버드송씨는 "한국 대통령과 정치인, 관료, 그리고 기업들이 '널리 이롭게 한다'는 건국 정신만 새기고 있었어도 이런 사태는 없었을 것"이라며 "다음 한국의 지도자는 꼭 '홍익인간' 정신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서울 도심 광장에 사람이 몰릴 때 마다 광장에 나와 쓰레기를 줍는 선행을 이어오고 있다.
버드송씨는 "기쁠 때나 슬플 때 광장에 한국인을 하나로 단결시켜 모은 에너지가 바로 '홍익인간' 정신"이라며 "한·일 월드컵 응원전 때나 미군 장갑차에 깔려 숨진 '미순이·효순이 사건'때 촛불이 광화문 광장을 가득 메운 사례가 대표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서울 도심 광장이 '홍익인간' 정신을 담고 있는 그릇이라고 평가갰다. 그가 광장 청소를 시작한 곳도 이 때문이다. 광장에서 추한 것은 주워담고 귀중한 사람들을 만나며 '홍익인간' 정신을 되찾자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버드송씨는 "이건 쓰레기를 줍는 게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한국의 건국 이념인 '홍익인간' 정신을 증명하기 위한 것"라고 말했다.
그는 광장에 나올 때 마다 배낭에 태극기와 성조기를 꽃는다. 그러다 보니 매번 촛불집회에 나올 때 마다 '황당한 오해'를 받기도 했다.
버드송씨는 "3·1절 날 촛불집회 현장에서는 경찰이 그림자처럼 그를 붙어 다니면서 도로 바깥으로 자꾸 밀어냈다"는 일화를 소개하며 "알고 보니 경찰이 버드송씨를 태극기 집회 참가자로 오해하고 촛불집회가 열리는 구역 밖으로 내보내려한 거였다"며 웃었다.
인터뷰를 하는 와중에도 그는 수시로 쓰레기를 주워담았다. 쓰레기를 담는 비닐봉투에는 '홍익인간 KOREA 만세'라고 쓰인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홍익정신에 대판 그의 깊은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버드송씨는 조교수로 있던 한양대에서 3년 전 퇴직했고 올해 1월 한국전통문화 연구기관인 국학원 홍보대사로 위촉돼 활동하고 있다.
[연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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