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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보·기보 합쳐도 모자랄 판에…"공사로 바꾸고 사업영역 확대"
입력 2017-03-02 18:00  | 수정 2017-03-03 08:56
조기 대선 가능성이 높아진 가운데 일부 금융공기업에서 정치권의 혼란을 틈타 조직을 확대하거나 낙하산 인사를 단행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사진은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산업은행 본사 전경. [김호영 기자]
금융공기업들이 조직확대개편을 위한 연구용역을 경쟁적으로 쏟아내고 있다. 신용보증기금은 보험사업과 컨설팅을 강화하고 공사 체제로 전환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컨설팅 용역을 발주했다. 주택도시보증공사는 지자체 분양승인 업무를 공사로 일원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하는 등 정권 교체기를 앞두고 금융공기업들이 몸집 불리기에 나서는 모양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정책금융기관별로 조직확대개편에 나서기보다는 전방위적인 업무 중첩 문제를 해소하는 방향으로 범정부 차원의 업무통합 조정이 필요하다는 주문이 흘러나오고 있다.
신용보증기금은 '정책금융기관으로서 신보의 역할 재정립방안'에 대한 연구용역을 발주하고 이달 중 컨설팅업체를 선정해 6월까지 조직개편 용역을 진행하기로 했다. 신용보증기금은 정책금융 역할을 강화하기 위해 보험사업, 컨설팅 등에서 사업영역을 강화하는 한편 공사 전환을 통한 종합적인 중소기업 지원기관으로 거듭나겠다는 내용을 연구용역 제안요청서에 담았다. 신보 관계자는 "(조직개편을 앞두고) 향후 주무부처인 금융위원회나 국회와 논의를 하기에 앞서 미리 준비하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신보와 유사한 기능을 갖고 있는 정부 출연기관인 기술보증기금 역시 김규옥 신임 이사장이 직접 나서 공사 전환 필요성을 언급하고 있다. 김규옥 기보 이사장은 취임 직후 "단순히 보증서만 발급하는 데 그치지 않고 창업전담기관으로 거듭나기 위해 이름까지 바꾸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이사장은 "기술 창업과 재기 창업을 지원하기 위해 기업에 대한 직접 투자액을 대폭 늘리겠다"며 "기보를 창업 전담 기관으로 만들기 위해 법을 바꿔 금융공사로 전환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국토교통부 산하 공기업 주택도시보증공사(HUG)도 업무영역 확장을 추진하고 있다. 주택도시보증공사가 지난달 발주한 '주거복지 향상을 위한 주택금융시장 발전방안 연구용역'에는 주택시장 변동성 완화 차원의 분양보증과 분양승인 업무 주체 통합에 대한 연구가 포함돼 있다. 사업자가 파산 등의 이유로 분양계약을 이행할 수 없게 되면 이를 보증기관이 대신 이행 또는 환급하도록 책임지는 분양보증은 주택도시보증공사의 업무다. 여기에다 지방자체단체 업무인 분양승인 업무도 함께하겠다는 게 주택도시보증공사의 생각이다.
주택도시보증공사 관계자는 "분양보증을 심사하는 기관에서 분양승인 업무도 같이 하면 효율적이지 않겠냐는 의견이 있어서 타당성을 검토해 보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분양보증은 분양승인을 받기 위해 제출해야 하는 서류 중 하나로 분양보증이 없으면 분양승인이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분양보증과 분양승인을 일원화할 수 있다면 행정력 낭비를 막을 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게 시장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한 중견건설사 사업부장은 "분양승인을 받으려면 분양보증 외에도 분양가 적정성 평가 등 복잡한 절차가 많기 때문에 일원화를 하려면 상당한 업무 간소화가 선행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주택도시보증공사는 이번 연구용역에서 가칭 '분양권거래소' 설치 타당성도 검토하기로 해 주목된다. 하지만 향후 주택정책 개편방안이 불확실한 상태에서 민간 기관이 이미 수행하고 있는 분양권거래소 역할을 정책금융기관에서 수행하는 게 적절한지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진단이다. 산업은행 역시 신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정책금융 추진체계 확립을 위한 연구용역을, 무역보험공사는 통상·국제금융 환경 변화에 발맞춘 역할 강화 방안 연구용역을 각각 추진하고 있다.
이처럼 금융공기업들이 조직확대개편을 추진하는 것과 관련해 정책금융기관로서 환경 변화에 적합한 역할 정립 방안을 검토할 수는 있지만 제각각 이뤄지는 기관별 조직개편 움직임이 무분별한 조직 확장으로 이어지고 기관별 업무 중첩을 초래해 업무 비효율성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당장 신보와 기보는 창업금융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황록 신보 이사장은 지난달 27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일자리 창출과 성장동력 발굴을 위한 창업기업 정책지원 확대"라며 "창업 시작 전부터 출구전략 때까지 원스톱으로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신보는 4.0창업부와 창업성장지점을 통해 보증부터 투자, 컨설팅 등 융·복합 형태의 원스톱 서비스를 창업기업에 제공할 예정이다. 김규옥 기보 이사장도 "지금까지는 기술을 가져오면 단순히 보증서를 발급하는 수준이었지만 앞으로 특허를 가지고 오면 우리가 사주고 직접 옆에서 컨설팅해 주면서 사업화시키고 발전시켜줄 수 있는 '액셀러레이터' 역할을 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이전에도 신보와 기보는 업무중첩 문제 때문에 정권이 바뀔 때마다 '통합' 이슈로 몸살을 앓아왔다. 2008년 금융당국은 보증기관을 양대 기관으로 나눠 운영하는 것 자체가 비효율적이라 보고 통합을 추진했지만 정치권 반대에 무산됐다. 당시 금융당국이 업무 중복 분야에 대해 교통정리를 해주는 선에서 마무리했지만 이후 창업기업 지원을 두고 기싸움이 계속되고 있다. 서민 대상 정책모기지인 보금자리론과 디딤돌대출을 각각 전담하는 주택금융공사와 주택도시보증공사 역시 효율적인 정책모기지 운영을 위해 업무 조정이 필요하다는 진단이 적지 않다.
산업은행(금융위원회)과 수출입은행(기획재정부), 주택금융공사(금융위원회)와 주택도시보증공사(국토교통부)는 각기 주무부처가 달라 부처 간 밥그릇 싸움이 반복된다는 비판적인 시각이 많다. 박근혜정부 초기의 대표적인 국정 어젠더였던 '부처 간 엇박자 방지' 정책이 정권 말기에 접어들면서 사실상 표류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정석우 기자 / 정순우 기자 / 노승환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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