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서른번째 졸업생을 배출한 서울금융고등학교.
3학년 10반 교실은 선취업으로 헤어졌다 다시 만난 친구들과 담임 선생님의 화기애애한 목소리로 넘쳐났다. 친구들은 서로의 안부를 묻고 선생님은 번듯한 직장인이 된 제자를 보며 흐믓해했다.
앳된 얼굴에 곱게 화장을 한 김은지씨(19·부천)도 즐거운 수다에 시간가는 줄 몰랐다. 김씨는 이 학교 회계과 3학년 이던 지난해 11월 대학졸업자도 뚫기 힘들다는 금융권 문을 당당히 열어제친 은행원이다.
우리은행 특성화고졸 신입행원으로 조기 입사해 공항금융센터(인천공항)에서 환전 등의 업무를 하고 있다.
김씨는 "예전부터 돈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고, 사람 상대하는 것을 좋아해 은행원이 되고 싶었다"면서 "일반인 접촉이 일상인 업무가 낯설지 않고, 선배님들까지 잘 챙겨줘 즐겁다"고 했다.
이날도 직장 동료들은 학교까지 찾아와 꽃다발을 건네며 김씨의 졸업을 축하하고, 학교에 축하화환을 보내 주위로부터 부러움을 샀다.
김씨는 중학생 시절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 못한 집안을 돕기 위해 특성화고 입학을 결심했다. "대학에서 하고 싶은 공부를 하는게 낫지 않느냐"는 부모님의 걱정도 있었다.
김씨는 "배울수록 어려운 집안사정의 현실이 더 가깝게 다가와 기회비용 등을 따져 취업하기로 결정했고 부모님을 설득했다"고 했다.
서울금융고에 입학해서는 은행원의 꿈을 이루기 위해 전산회계 등 회계·컴퓨터 관련 자격증 5~6개를 취득했다. 어려운 가정 형편을 탓하며 주눅들지도 스스로 갇혀 지내지도 않았다.
댄스 등 활동성 강한 동아리에서 끼를 마음껏 발산하고, 대외활동을 자처하며 활발한 대인 관계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이러한 성격은 대민접촉이 많은 은행원 지원때도 큰 도움이 되었다.
은행원이 돼 받은 첫 월급의 80%는 부모님께 드렸다. "제가 형편이 좋아지면 꼭 하고 싶었던 일이다. 그동안 저를 키워주신데 대한 감사의 뜻도 있다"고 했다.
18살에 은행원의 꿈을 이룬 김씨는 앞으로 회사에서 제공하는 학업 기회를 활용해 전문지식을 넓히고, 외국인을 많이 상대하고 사람과의 소통을 좋하하는 만큼 외국어와 심리학 공부도 시작할 계획이다.
김씨는 '신(新)고졸 인재시대'에도 일부에서 여전히 병폐로 자리잡고 있는 고졸 직장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해소되기를 희망하기도 했다. 그는 "'너는 어느 대학에 가고 싶니'라는 질문보다 '너는 뭐가 되고 싶니'라고 묻는 사회, 누구보다 빨리 '나는 꿈을 향해 가고 있다'고 외치는 당당함이 인정받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씨가 근무하는 우리은행은 최근 5년 동안 특성화고 출신 600여명을 채용해 전국에 배치했다. 최현구 우리은행 공항영업본부장은 "공항금융센터에만 14명의 특성화고 출신이 본인의 적성에 따라 환전소, 영업점 등에서 근무하고 있다"면서 "이는 센터 전체근무자의 14%에 해당하는 수치인데 업무성과도 좋아 훌륭한 학생들을 보내준 전국 특성화고에 감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홍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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