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무한경쟁·중앙집권 사회가 위험한 까닭, 과학이 답했다
입력 2017-02-24 12:21  | 수정 2017-02-25 12:38

'지쳤다. 사회는 빠르게 앞으로 나아가지만, 이를 헤쳐나갈 여력이 없다. 사회는 끝없는 경쟁을 요구한다. 하지만 경쟁만이 능사일까?'
김필원 울산과기원(UNIST) 수학과 교수가 이를 증명하는 재미있는 사고실험을 진행했다. 초등학교 시절 배웠던 전기 저항을 이용해 사회가 영속할 수 있는 '팁'을 제시했다. 이 실험 결과, 사회가 지속가능하게 나아가려면 모두가 '잘 나갈' 필요는 없다. 우리 사회에게 필요한 것은 무한 경쟁보다는 개인의 개성과 게으름을 이해할 수 있는, 다양성이 보장된 사회라는 것이다.
한정된 자원을 두고 경쟁만을 추구하는 이기적 개인이 모인 집단은 번영할 수 있을까. 현재까지 나온 수많은 이론들은 "많은 난관이 있다"는 결론을 제시했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공유지의 비극'이라 부른다. 이익만을 쫓는 개인들에게 시장에 자원을 맡기면 결국 자원은 고갈된다는 의미다. 김 교수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사회적 자원과 에너지의 배분 문제를 '전기회로'라는 최소한의 물리적 모형을 통해 구현한 뒤 '게임이론'을 적용했다. 게임이론이란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개인들이 일정한 전략을 갖고 최고의 보상을 얻기 위해 벌이는 행위를 말한다.
김 교수는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뒤 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수학으로 다양한 사회 현상을 설명해보려는 연구를 기획하던 중, 어렸을 적 고민했던 전기난로의 열과 저항의 관계를 떠올렸다. 저항이 커지면 열이 많이 발생해 전기난로는 따뜻해진다. 하지만 저항이 더 커지면 결국 전기가 흐르지 않는 '부도체'가 되어 전기난로는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된다. 김 교수는 "전기회로에서 저항은 더 많은 전력 소모를 위해 노력하는데 이는 사회에서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 경쟁하는 개인과 같다"며 "이를 통해 사회를 저항과 전압으로 이루어진 회로로 단순화했다"고 설명했다. 단순화했지만 본질적인 부분을 찾기 위한 수학적 모델로 고전적인 일대일 게임을 자원분배에 관한 유기적인 다대다 게임으로 확장시킨 것이다. 김 교수는 이를 '최대전력게임'이라고 명명했다. 연구결과 최대전력게임은 고전적 게임이론의 물리적 확장일 뿐 아니라 사회적 자원배분 문제를 다룰 때 유의미한 연구 방법임이 확인됐다.
모두가 경쟁? '중재'하는 존재 필요
전기회로에 저항을 직렬이나, 병렬로 연결하면 어떻게 될까. 저항의 직렬, 병렬 연결은 어떠한 간섭 없이 이기적인 개개인이 마음껏 경쟁하는 사회를 모델링한 것이다. 직렬로 연결할 경우 많은 전력을 가져가기 위해 각 저항은 저항값을 경쟁적으로 올린다. 결국 경쟁 상황이 계속되면서 저항은 부도체가 된다. 병렬로 연결되어 있을 때도 마찬가지. 각각의 저항이 더 많은 전력을 쓰기 위해 경쟁하고 결국 회로는 고장난다. 사회가 작동을 멈추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이는 죄수의 딜레마, 공공재 게임과 유사하며 물리적인 확장 버전"이라며 "사회의 구조가 단순할 때 개인 간의 경쟁은 결국 모두의 패배를 낳고 사회적으로 낭비가 극대화됨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파국을 막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단순한 회로를 벗어나 저항을 마름모 꼴로 배치하자 각 저항값이 균형을 이뤄 회로가 멈추지 않고 작동됐다. 한 가지 조건이 있다. 마름모 형태의 가운데 놓인 저항은 전력생산을 하지 못한다. 일종의 '희생'을 택한 것이다. 김 교수는 "사회, 국가가 지속적으로 존속해 나가려면 이처럼 누군가의 희생, 중재가 필요함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정부의 존재를 이곳에서 찾을 수도 있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보이지 않는 손'을 강조했지만, 이보다 앞서 출판한 '도덕감정론'에서 '이타심'을 강조한바 있다. 인간의 이기심이 적절히 제어되고 관리될 경우 사회의 이익 증진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누구나 최고가 되어야 할까… 게으른 사람 없다면 경쟁은 존재하지 않아
전기회로 실험은 모든 저항값이 같아야 한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즉 모든 사람이 공평한 자원을 배분 받아야 사회가 영속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적절한 경쟁과 이에 따른 순위는 사회가 도약할 수 있는 힘으로 작용한다. 경쟁은 있지만 누구나 1등이 될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다. 김 교수는 각 저항에 서로 다른 '고정저항'을 붙여봤다. 이는 개인이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지만 손실되는 에너지를 의미한다. 부지런한 사람은 고정저항이 작고, 게으른 사람은 고정저항이 크다. 각 저항에 서로 다른 고정 저항을 넣은 뒤, 게임이론에 적용하자 직렬, 병렬로 연결되어 있어도 회로는 파국으로 치닫지 않았다. 고정저항값의 차이는 개인이 갖고 있는 능력과 개성의 차이로 볼 수 있다. 김 교수는 "이는 뒤처지는 사람도 쓸모가 있음을 보여주는 모형 "이라며 "서로 다른 사람들의 능력 차이는 경쟁을 의미있게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높은 성과를 내는 부지런한 경쟁자와 겨루는 경우에는 차라리 게으른 사람이 되는 것이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이다. 조직에서 업무 효율이 떨어진다 하더라도(고정저항이 큰 저항을 의미) 이를 내치면 안 되는 이유다. 모두가 1등의 위치에 오를 수 없기 때문에 사회는 존속할 수 있다. 지나치게 높은 효율을 갖는 사람만을 찾는 경쟁 사회는 오히려 효율이 떨어진다는 역설이다.
강력한 중앙집권? NO… 융통성 있는 경쟁사회
강력한 중앙정부가 각 개인에게 정밀하게 할당된 자원만을 주는 사회는 어떨까. 옛 소련, 북한과 마찬가지로 공산주의 체제는 지속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 이미 입증됐다. 전기회로도 마찬가지다. 김 교수는 수많은 전압과 저항을 연결한 뒤 개인의 경쟁을 통하지 않고 중앙집권 방식으로 최적의 분배를 조율하는 회로를 제안했다. 각 저항은 바뀔 필요가 없다. 경쟁이 없는 셈이다. 이 경우 회로 전체의 에너지는 7.25 값으로 계산된다. 이번에는 적절한 구조 하에서 각 저항이 서로 경쟁을 하도록 회로를 구성했다. 회로 전체의 에너지는 5.95를 가리켰다. 중앙집권 방식보다 사회 전체가 갖고 있는 에너지는 적을지 모른다. 하지만 중앙집권 방식의 경우 작은 외부의 변화에도 7.25의 에너지는 순식간에 무너져 버린다. 현실성이 없는 회로인 셈이다. 반면 경쟁사회에 놓인 회로는 값을 수시로 변화시키거나 외부에서 다른 충격이 가해져도 적절한 에너지를 유지했다. 김 교수는 "경쟁사회는 중앙집권과 비교했을 때 전체 에너지도 크게 차이가 나지 않으면서도 존속이 가능했다"며 "개인의 경쟁은 사회의 생산성으로 연결될 수 있음을 보였다"고 말했다. 전기회로에 대한 사고실험을 통하여 사회적 자원배분을 수학적으로 분석한 김 교수의 논문은 최근 국제학술지 게재 승인이 확정됐다.
[원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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