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입맛을 상징해온 고추장·된장·간장 '3대 전통장' 시장이 급속히 위축되고 있다.
지난해 고추장·간장 소매시장 규모는 2000억원이 붕괴해 1000억원대로 내려앉은 것으로 확인됐다. 연 매출 500억원대로 규모가 작은 된장 시장 역시 하락세가 나타났다.
23일 aT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와 시장조사기관 링크아즈텍코리아에 따르면 소매점 매출액 기준 2016년 고추장 시장 규모는 1758억원, 간장은 1942억원 선으로 집계됐다. 전년 대비 각각 14%, 9.4%씩 감소한 수치다. 된장은 573억원에서 552억원으로 3.6% 하락했다.
특히 고추장의 하락세가 눈에 띈다. 2013년 2176억원으로 정점을 찍었던 고추장 시장은 2014~2015년 들어 2000억원대에 간신히 턱걸이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급기야 지난해 300억원 가까운 매출 감소를 보이며 1700억원대까지 시장이 쪼그라들었다.
상황이 안 좋은 것은 간장도 마찬가지다. 2013년 2180억원으로 최대 매출을 낸 간장은 꾸준히 2100억원대 시장을 유지해 비교적 선방하고 있는 분야로 인식됐다. 그러나 지난해 매출이 200억원이나 줄면서 급격한 하락세로 전환했다.
이같은 변화는 급격히 바뀐 한국인의 식습관이 근본 원인으로 분석된다. 서구식 식습관이 익숙해진데다 최근 1~2인 가구의 증가 추세와 맞물려 전통장을 활용한 요리 수요는 줄고, 완제품 형태로 나오는 가정간편식·도시락 시장이 빠르게 팽창하고 있다. 지난해 간편가정식 소매시장 규모가 전년 대비 22.6% 증가한 4825억원까지 성장한 것도 이같은 분석에 힘을 싣는다. 2013~2015년 3000억원 중후반대 규모였던 간편가정식 매출은 지난해에만 약 900억원 급격한 성장세를 보였다. 웰빙 바람 속에 한국 전통장은 나트륨 섭취를 높인다는 인식이 확산한 것도 소비를 줄인 이유로 꼽힌다.
농수산식품유통공사 관계자는 "서구식 소스·양념의 소비가 증가했고, 가정간편식의 품질 개선 및 다양화로 집에서 전통장을 사용하는 경우는 앞으로도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지난해 전통장 소비 감소가 특정 소비층에 국한하지 않았다는 점은 미래를 더욱 어둡게 한다. 백화점·편의점 등 판매처별로 분류한 매출 추이에서도 총체적 하락세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고추장의 경우 대형 할인점(-16.2%), 편의점(-15.3%), 체인슈퍼(-14.9%), 간장은 백화점(-10.7%), 할인점(-10.1%)의 하락세가 특히 컸지만, 다른 판매처 역시 엇비슷한 감소율이 나타났다. 연령·소득에 따른 편차가 크지 않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식품업계에서는 전통 장류 매출을 끌어올리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1~2인 가구 증가에 맞춰 '튜브형 고추장' 등 소포장 제품을 내놓는 한편 아예 전통장을 기본으로 만든 다양한 한식 양념으로 편의성을 높이고 있다. 대상·CJ제일제당 등이 내놓은 1인용 볶음 고추장, 된장에 다양한 육수·야채를 섞어 만든 간편 찌개 된장 제품 등이 대표적이다.
나트륨 함량을 줄인 저염 고추장을 출시하거나 산지·원료를 차별화하는 고급화 전략도 펼친다. 한화갤러리아는 경북 영주 종가집에서 6대째 전통방식으로 생산한 고추장을 자체 PB 상품으로 내놨다. 대상은 고추장 원료를 밀가루에서 쌀, 쌀에서 현미로 바꾸며 변화를 꾀하고 있다. 신송식품은 국산보리를 원료로 한 태양초 고추장을 선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위축되는 전통장 시장을 근본적으로 되살리기엔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업계 관계자는 "제품 개선은 결국 절대적인 소비량 자체를 늘린다기 보다 줄어든 수요에 맞춰 시장 전략을 재편하는 수준의 조치"라며 "농촌 인구 감소로 산업 통계에 잡히지 않는 가내 전통장 생산마저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전통장 산업의 고사를 막기 위한 정부 차원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백상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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