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뉴스&분석] `35층 규제` 궁색한 변명
입력 2017-02-09 18:02  | 수정 2017-02-09 23:23
서울시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강남 재건축 35층 층수 제한을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그 이유에 대한 해명에 설득력이 부족해 궁색한 변명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동안 서울시는 법이나 조례가 아닌 가이드라인을 근거로 한강변에 획일적 경관을 만드는 '35층의 덫'에 빠졌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9일 기자회견을 자청한 서울시는 "일부 왜곡된 주장과 잘못된 인식으로 기준이 흔들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35층 층수 제한에 대한 비판을 하나하나 반박했다. 김학진 서울시 도시계획국장은 35층이라는 숫자가 나온 근거에 대해 "용도별 용적률의 비례성을 분석했을 때 35층이 수용 가능한 숫자"라며 "경험적으로 봐도 적절한 층수"라고 설명했다.
용적률이 150%인 '1종일반주거지역'은 4층, 200~250%인 '2종주거지역'이 최고 25층이니 용적률이 최대 300%인 3종주거지역은 35층이 적합하다는 논리다. 또 층수 규제가 없었던 과거 사례를 봐도 300% 용적률 제한 때문에 평균 35층을 넘는 아파트가 많지 않았다는 것이 서울시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서울시 주장에 대해 여전히 "어떻게 '35층'이라는 숫자가 나왔는지 이해가 안 간다"며 "오히려 궁금증만 늘었다"고 비판했다. 서울시는 이날 과거 사례를 언급하면서 용적률 300% 기준 아파트 층수의 분포나 평균 높이 등 구체적인 통계를 제시하지 않았다. 특히 경험상 적합하다는 얘기는 과거에도 되풀이했던 입장이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여전히 과학적인 근거가 없고 납득이 안 간다"며 "기술과 환경은 계속 변하고 있는데 과거 사례를 근거로 규제를 한다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했다.
특히 이미 용적률이라는 규제가 있는 상황에서 층수를 또 제한하는 것이 '이중 규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 10대 건설사 임원은 "현실적으로 용적률과 층수를 모두 규제하면 '박스형' 건물을 지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서울 한강변에 답답한 '성냥갑' 스카이라인을 만든 주범이 바로 용적률과 높이 제한 중복 규제라는 지적이다.
서울시는 2009년 마련한 한강공공성 재편계획을 소개하며 당시에는 25% 기부채납을 조건으로 50층 이상 초고층 단지를 허용했지만 지금은 기부채납 비율이 15%로 내려갔으니 층수도 조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아파트 재건축의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해 땅·도로·임대주택 등을 기부채납 받는 것과 층수를 제한하는 규제는 무관하다는 지적이다.
이날 서울시는 현 높이 제한에서도 얼마든지 다양한 층수 구성이 가능하다며 획일적 경관 형성 비판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김 국장은 "한남3구역 사례를 보면 주어진 개발 밀도를 충족하면서 다양한 스카이라인을 구현했다"고 소개했다.
전문가들은 오히려 한남3구역이 층수 규제의 피해 지역이라며 "왜 하필 한남3구역을 사례로 제시했는지 모르겠다"는 분위기다. 심 교수는 "한남3구역은 남산 앞에 위치해 있으니 남산을 보존하기 위한 특수한 사례"라고 설명했다. 이번 35층 규제 논란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이다. 한남뉴타운 일대는 층수 등 각종 이견으로 15년 가까이 개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 한남3구역은 우선 대다수 강남권이나 한강변 재건축 단지와 다르게 산 주변 단지라 평지가 아니다. 단지마다 환경이 다른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부적적한 사례라는 평가다.
특히 한남3구역은 최고 22층으로 층수를 낮추는 대신 건폐율이 43%로 올라가 건물과 건물 사이 공간이 없어 답답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처럼 용적률 제한이 있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층수를 낮추면 건폐율(건물이 용지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상승해 단지 사이 간격이 줄어든다. 박 위원은 "건폐율이 20%를 넘는 단지를 실제 가보면 건물 사이 거리가 너무 짧아서 주거 쾌적성이 다소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서울시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용적률 300% 기준으로 건폐율 20%의 건물을 짓는다면 평균 높이가 15층에 불과하다는 논리로 35층 규제를 정당화했다.
서울시는 35층 규제는 이미 시민들과 전문가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만든 정책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석주 서울시의원은 "당시 상황을 보면 시민 의견 192건 중 높이에 대한 얘기는 한 건도 없다"고 밝혔다. 충분한 공론화가 안 돼 시민들이 의견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내용은 서울시의 획일적인 규제다. 서울시는 이날 기자회견 중 높이관리 기준의 주요 정책 방향이 '서울 모든 지역의 예측 가능한 관리'라고 규정했다. 김 국장도 "서울시는 개별 단지 차원이 아닌 도시 차원에서 관리하고 하는 만큼 일관성 있게 기준을 적용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심 교수는 "서울시가 모든 지역을 똑같이 바라보고 규제를 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말했다. 심 교수는 "각 단지나 지역별로 자연 환경과 여건이 다른데 어떻게 35층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활용하나"라며 "그렇다면 남산 바로 앞에 35층을 지어도 된다는 뜻인가"라고 쓴소리를 쏟아냈다.
일각에서는 각 단지나 지역별로 기존의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가 아닌 별도의 '특별위원회'를 꾸려서 층수 등 규정을 결정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한 전문가는 "서울시가 기자회견에서 언급한 뉴욕 맨해튼 배터리 파크의 경우에도 특별위원회를 별도로 꾸려서 심사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날 서울시는 잠실과 대치동 높이 규제에 대한 뚜렷한 입장 차이를 표명했다. 김 국장은 "잠실 주공5단지는 잠실이라는 지역적 특성 때문에 광역중심에 해당하는 공공기능이 도입된다면 용도를 준주거로 변경해 최고 50층까지도 논의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치동 은마아파트에 대해서는 김 국장은 "35층 이상 논의를 할 수 있는 지역 자체가 아니다"고 못 박았다. 현재 은마아파트는 최고 49층의 재건축 심의안을 준비해 구청 공람을 거치고 있다.
이에 대해 잠실주공 5단지는 잠실역과 인접한 준주거지역에 들어설 4개 동뿐 아니라 주거지역인 단지 중앙에 들어서게 될 4개 동도 50층 재건축을 허용해야 한다며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잠실동에 있는 한 공인중개소 관계자는 "서울시가 허용하겠다고 밝힌 부분이 잠실역과 인접한 지역을 준주거지역으로 용도 상향해 최고 50층짜리 4개 동을 짓는 것인데 이미 재건축 계획안에 담겨 있다"며 "종상향에 따른 50층 재건축이 가능할 것으로 보여 다행"이라고 환영했다.
대치동 은마아파트 인근 한 중개업소 대표는 "잠실주공5단지에 50층 재건축을 허용하고 은마나 압구정 현대는 불허할 경우 주민 불만이 극에 달할 것"이라며 "최고 50층 재건축을 불허할 거라면 모든 단지에 불허해야지 일부는 허용하고 일부는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문제"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압구정 현대아파트 인근 A공인 대표는 "압구정 현대는 주민 의견도 아직 수렴되지 않은 상황이어서 재건축이 제대로 시작되려면 최소 3∼5년은 기다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며 "주민들은 일단 35층이든 50층이든 지켜보자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인근 다른 중개업소 관계자는 "주민들은 몇 년 뒤 재건축이 본격 추진될 때 정책이 또 어떻게 바뀔지 모르니 그때 가서 고민하겠다는 입장"이라면서도 "잠실주공5단지에 50층 재건축을 허용한다면 다른 단지들도 허용해야 하는 것 아니냐 주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기정 기자 / 김강래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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