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11일)은 정월대보름이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정원대보름에 '1년동안 무사태평하고 만사가 뜻대로 되며 부스럼이 나지 말라'고 기원하면서 부럼을 깬다. 밤, 호두, 잣, 은행 등 딱딱한 열매를 나이만큼 깨무는데, 치아가 약한 어린이와 노인들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호두나 밤을 깨물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치아가 깨지거나 임플란트가 손상당한다.
이성복 강동경희대 치과병원장(보철과 교수)은 "정상적으로 깨무는 힘이 아닌, 최선을 다한 악력으로 부럼을 깨물어 절단내버리는 동안 치아는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받게 된다"면서 "실제로 정월대보름 부럼 깨기로 인해 치아가 손상돼 병원을 찾는 환자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마른 오징어, 쥐포과 같이 질기고 단단한 음식을 강력한 힘으로 잡아당겨 끊어서 먹기를 즐겨한다. 김치, 깍두기를 비롯해 우리 주변에 있는 일반적인 음식물들을 씹기 위해서는 최소한 70~100kg이상의 힘이 필요하다. 사탕은 혀로 잘 달래가며 단물이 나오도록 하여 즐기는 음식이지만, 한국인들은 유독 입에 넣자마자 '빠드득'깨뜨려서 '서걱서걱'씹어 먹어야 제 맛을 느낀다.
한국인의 치아는 이미 20대에 서양인들의 30대에 해당하는 치아면 마모를 나타내고 있다. 치아마모 속도는 더욱 빨라져 40대 중반쯤에는 이미 서양인들의 60대에 해당하는 치아수준까지 닳아서 음식 씹을 때 '시큰 새큰하다'는 불편함을 호소하게 된다.
이성복 병원장은 "40대 이후에 치과병원을 찾는 환자들의 대부분은 보기에도 멀쩡한 치아가 씹을 때 자꾸 아프다는 호소를 많이 한다"며 "그 아픈 정도는 이루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한 것이어서 극심한 경우 생활의욕까지 감퇴된다고들 한다"고 말했다.
한국인이 식사를 할 때 턱을 악무는 힘은 200㎏이상을 기록할 때가 많다. 치아가 바스러지고 깨져 나가는 것은 물론이고, 금 등의 치아보철물까지도 쓸려서 파손되기에 충분한 힘이다. 40대이상의 환자들 가운에 음식을 씹을 때 예리한 치통을 호소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치아에 특수한 약물을 이용해 검사하면 치표면에 살짝 금(crack line)이 간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육안으로 발견하기 힘든 미세한 균열이지만, 음식 씹을 때마다 떨어졌다가 붙기를 반복하며 치아 신경관까지 자극하게 된다.
치아는 활동 중에 90%이상 사이가 자연스럽게 떨어져 있어야 치아와 주위근육에 무리를 주지 않게 되어있다. 힘들거나 초조할 때마다 치아를 악물고 30초만 있어도 금방 안면근육에 피로가 오며 저작근통이나 두통을 유발하게 된다. 이때 유발된 근육통은 쉽게 해소시킬 수 있겠지만, 치아 자체에는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줄 수 있다. 부작용으로 씹을 때마다 치아가 새큰거리고, 치아뿌리까지 충격이 파급되어 치아신경을 죽이는 치료(근관치료·canal treatment)를 받기도 하며 치아를 깎아서 금관을 씌워줘야 한다. 심한 경우 치아가 쪼개지는 일도 가끔 발생하며, 이럴 경우 치아를 뽑아서 제거하는 수 밖에 없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이병문 의료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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