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상하이 푸동신구에 위치한 완샹블록체인연구소.
20여명의 직원들이 컴퓨터 앞에 앉아 신도시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자동차 부품업체 완샹그룹이 설립한 이 연구소는 블록체인 기술에 특화한 비영리 연구기관이다. 제조업체가 블록체인 연구에 뛰어든 것은 블록체인 기반 스마트시티를 설립한다는 원대한 목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완샹그룹은 지난해 9월 상하이에서 열린 글로벌 블록체인콘퍼런스 현장에서 "블록체인 기술에 기반해 운영되는 도시를 건설하겠다"고 선언해 주목을 받았다. 이를 위해 앞으로 7년간 2000억 위안(33조4000억원)를 투자하겠다는 세부 목표도 제시했다. 가상화폐 이더리움(ETH) 창시자 중 한명인 비탈릭 부테린도 연구소 공동설립자로 참여하고 있다.
'분산형 공개 거래장부'로 불리는 블록체인은 비트코인을 비롯한 디지털화폐에 처음 적용된 기술이다. 최근에는 활용범위가 전방위적으로 확대되면서 4차 산업혁명을 이끌 금융분야 대표적인 신기술로 급부상했다. 완샹그룹이 추진중인 블록체인 도시건설 프로젝트는 항저우 인근에 전기차 배터리를 생산하는 인구 9만명 규모의 스마트시티(10㎢ 규모)를 건설하는 것이다. 스마트시티 곳곳에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 기존 신도시와 차별화된 부가가치를 높이겠다는게 완샹그룹의 전략적 목표다. 이 연구소의 아다 샤오 연구총괄 이사는 "짧게는 7년, 길게는 10년을 내다보고 사업을 추진중"이라며 "블록체인 기술을 IoT(사물인터넷)와 디지털월렛(전자지갑) 등에 적용해 모든게 온라인으로 연결된 도시를 건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도시내 모든 시설이 자동화되고 금융거래는 물론 출생·사망증명서 발급과 투표에 이르기까지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안전하게 기록하고 보관할 수 있는 페이퍼리스 사회를 구현할 방침이다. 샤오 이사는 "스마트 기계끼리 직접 소통하는 블록체인 기반 시스템을 구축해 생산공정을 효율화하고 회사가 제조한 전기차 배터리 관리에도 블록체인 기술이 적용될 것"이라고 밝혔다. 배터리를 블록체인 네트워크에 등록하면 배터리 사용량을 모니터링하면서 교환 시점을 정확하고 쉽게 예측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완샹그룹은 한발 더 나가 배터리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금융상품을 만들어 투자초기에 투자금의 유동성을 확보해 재투자하는 등의 계획도 가지고 있다. 사업에 필요한 자금은 완샹그룹과 비탈릭 부테린 등이 출자해 만든 블록체인 전문 벤쳐캐피탈인 펀부쉬캐피탈을 통해 조달한다. 펀부쉬캐피털은 지난 2015년 출범한 이후 전세계시장에서 30곳 이상의 블록체인 기업에 2000만 달러 이상을 투자할만큼 공격적으로 관련 기술을 사들이고 있다.
완샹그룹이 이처럼 위험성이 높은 대규모 프로젝트를 추진할 수 있는 배경에는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정책 지원이 자리잡고 있다. 규제 장벽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중국에서 4차 산업혁명 핵심기술중 하나인 블록체인과 관련해서는 블록체인 기반 도시건설 부지 선정부터 네트워크 연계업무, 자금조달 등에 걸림돌이 되는 모든 규제를 일거에 제거해줬다. 완샹블록체인연구소 주도로 중국 금융사들이 모여 만든 블록체인 연합체 '차이나레저 얼라이언스'에는 증권정책기관인 중국증권업협회도 참여하고 있다. 블록체인은 한거래단위로 분산돼 있는 거래자 거래 내용을 개인 네트워크상에서 거래당사자가 공동으로 관리하는 기술이다. 때문에 네트워크 구축이 가장 중요한 선결과제로 꼽힌다. 중국 정부는 지난 2015년 '중국제조 2025'와 '인터넷플러스'라는 프로젝트를 발표한 이후 인터넷과 금융, 제조업 융합 발전을 복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법과 규제를 대폭 완화해 원천기술을 보유한 글로벌 기업을 인수하거나 유치한 뒤 거대한 내수시장을 기반으로 산업 플랫폼과 국제 표준화를 선도해 나가겠다는 야심이다.
상하이 소재 국내 국책은행 관계자는 "중국은 공산주의 국가지만 신기술을 도입하고 적용하는데는 한국보다 오히려 더 시장친화적이고 더 적극적"이라며 "4차 산업혁명 금융분야에서 앞서나가는 중국을 보면서 이미 따라잡을 기회를 놓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라며 우려했다. 올초 국내 16개 시중은행과 25개 증권회사가 참여하는 금융권 공동 블록체인 컨소시엄이 출범했지만 실제로 금융시장이나 금융상품에 적용될 수 있는 네트워크가 구축되려면 정부의 규제완화와 정책지원이 급선무라는 지적이다.
[중국 상하이 = 노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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