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 정상들이 모인 자리에서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영국이 미국과 유럽의 가교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가 망신을 당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의 4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전날 몰타 수도 발레타에서 열린 EU 정상회의에 참석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가교가 되겠다"는 메이 총리에게 돌아온 것은 EU 정상들의 싸늘한 반응 뿐이었다. 메이 총리는 지난 달 27일 유럽 정상 중에서 가장 먼저 트럼프 대통령과 만났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유럽의 운명은 유럽의 손에 달려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 문제에 관여하지 말라"며 메이 총리의 '가교' 제안을 거부했다. 이들은 트럼프 대통령을 겨냥해 한 목소리로 비판하며 EU의 단합을 강조했다.
도널드 투스크 EU 정상회담 상임의장도 "영국이 (가교)역할을 하면 유럽이 트럼프 대통령과 '딜(deal)' 할때 도움이 되긴 하겠지만 EU는 (영국마저 빠진) 27개국끼리만 의존해야 할 것"이라고 메이 총리의 제안이 의미가 없음을 시사했다.
달리아 그리바우스카이테 리투아니아 대통령은 BBC 방송과 인터뷰하며 "미국과는 트위터를 통해 소통하면 되니 우리에게 가교가 필요할 것 같진 않다"고 비꼬았다.
FT는 EU 정상들은 메이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과 EU의 관계 개선 역할을 맡는 것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표현했다. 브렉시트(영국의 EU탈퇴) 이후 신뢰도가 확 떨어졌기 때문이다.
메이 총리는 원래 이날 메르켈 총리와도 양자회담을 가질 계획이었으나 메르켈 총리가 직전에 이를 취소하는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이 둘은 대신 EU정상회담 장소로 걸어가며 짧은 대화만을 나눴다.
한편 이날 EU 정상회담은 '트럼프 대통령 성토장'이 됐다. 메르켈 총리와 올랑드 대통령은 물론 크리스티안 케른 오스트리아 총리, 자이에르 베텔 룩셈베르크 총리도 "요즘 일어나는 일들은 우리가 지키고자 싸웠던 가치들이 정말로 아니다"라며 트럼프 대통령의 반(反) 이민 행정 명령을 강력 비판했다.
[김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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