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설 연휴 극장가 풍성하게 만드는 다양성 영화 3편
입력 2017-01-26 14:21 
영화 '단지 세상의 끝'

올해 설 연휴 오락영화들이 줄줄이 개봉한 가운데 작가성 짙은 다양성 영화 세 편이 관객을 맞는다. 칸이 사랑한 남자 자비에 돌란의 '단지 세상의 끝'(18일 개봉), 레베카 밀러의 '매기스 플랜'(25일 개봉), 파블로 라라인의 '재키'(25일 개봉)다. 적당한 깊이에 한움큼의 사유 거리를 안겨주는, 시네필이라면 놓쳐서는 안 될 '필람'(필수관람) 리스트다.
'단지 세상의 끝'은 퀘벡 출신 감독 자비에 돌란의 6번째 영화다. 19세 때 첫 장편 '아이 킬드 마이 파더'(2009)로 칸에 입성하며 연출자로서 재능을 인정받은 그는 차기작 '하트비트'(2010) '로렌스 애니웨이'(2012) 모두 연이어 칸의 부름을 받았다. 그리고 2년 뒤 '마미'(2014)로 최연소 심사위원상을 거머쥐며 단숨에 '칸의 총아'로 올라섰다. 지난해 칸 심사위원 대상작인 '단지 세상의 끝'은 그런 그의 독특한 연출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작품 중 하나다.
영화는 시한부 선고를 받은 작가 루이(가스파르 울리엘)가 12년 만에 가족을 찾아가면서 출발한다. 루이 어머니(나탈리 바예)와 여동생 수잔(레아 세이두)은 그의 귀환을 반기나, 형 앙투안(뱅상 카셀)은 오랜 기간 가족과 연을 끊고 살아온 루이가 영 마뜩잖다. 앙투안의 아내이자 낯가림이 심한 형수 카트린(마리옹 코티야르)는 그런 그를 어떻게 대할 지 몰라 당황스럽다.
카메라는 한 지붕 아래 모인 다섯 인물을 빠른 교차편집으로 담아낸다. 풀숏으로 전신을 찍기보다 과감한 클로즈업으로 화면 가득 얼굴들을 채워나간다. 숏 전환이 워낙 숨가쁜지라 배우들의 미세한 감정선을 따라잡기가 벅찬 감이 없진 않다. 하지만 자비에 돌란 특유의 강한 자의식과 젊음에서 오는 포부를 느껴보는 것도 신선한 경험일 것이다.

레베카 밀러의 '메기스 플렌'은 여러모로 우디 앨런을 떠오르게 한다. 영화적 스타일이 비슷해서인데 그렇다고 아류작은 아니다. 롱스커트 타이츠 차림의 매기(그레타 거윅)가 사뿐히 뉴욕 거리를 활보하는 도입부는 앨런 식의 경쾌한 속도감이 느껴지고, 지식인 위주 인물들이 나오는 데다, 재치와 유머 가득한 언어들이 가득한 것도 빼닮았다.
제목처럼 영화는 주인공 매기의 '플랜'을 다룬다. 아이는 갖고 싶은데 결혼은 원치 않는 매기(그레타 거윅)는 정자은행을 수소문하다 머리 좋은 대학 동창 가이(트래비스 핌멜)에게서 정자를 기증받는다. 그러나 이 와중에 유부남 인류학자 존(에단 호크)에게 사랑에 빠지는 건 또 뭔지. 존도 스타 교수이자 기센 아내 조젯(줄리언 무어)의 그늘에서 지쳐가던 차에 자신이 집필 중인 소설을 좋아하는 매기에게 금새 빠진다.
'플랜2'는 그런 둘이 함께 살면서 진행된다. 몇 년 지나보니 존은 제 자신만 아는 이기주의자, 거기에다 나잇값 못하는 애 중의 애다. 가사와 양육은 오로지 매기 몫이며 존은 오로지 소설 집필에만 몰두 할 뿐이다. 그래서 참다 못한 매기는 존을 전처 조젯에게 '반품'하고자 한다. 줄리안 무어와 에단 호크의 연기는 말할 것도 없고, 매기 특유의 낙천성은 정말 닮고 싶을 정도다. 히피 청년 핌멜은 조연임에도 그 우수어린 눈빛에 금방이라도 빠져들 것 같다.
영화 '재키'는 존 F. 케네디의 부인 재클린 케네디가 멀쑥한 정장 차림의 기자와 인터뷰하는 신에서 출발한다. 현재 시점과 그의 과거 회상 시퀀스가 교차하며 선형적으로 흘러가는 이 영화는 그간 케네디의 후광에 가려진 퍼스트레이디의 내면 세계를 오롯이 비춘다. 미국 35대 대통령 케네디가 암살당한 1963년 11월 22일 낮 12시 30분부터 알링턴 국립묘지에 묻히게 된 25일까지, 그 4일 간의 시간이 중심이다.
세간의 오해와 달리 '재키'는 전기영화는 아니다. 파블로 라라인이 재클린의 케네디의 내면 세계를 상상해본 픽션에 가깝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재키가 어떤 사람인지 온전히 알지는 못하겠지만 그녀가 겪은 아픔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영화는 기품 있는 퍼스트레이디로서 모습 뿐 아니라 사랑하는 남편을 잃고 충격에 잠긴 아내, 때때로 아이같고 이기적이기도 한 재클린 캐네디의 다양한 면모를 잘 살려낸다.
[김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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