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가를 보면 자신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가 보인다. 나는 비교적 책을 처분하지 않는 인간에 속한다. 고교 시절에 산 책이 지금도 여러 권 있고, 대학 시절에 산 책은 수백 권, 아니 수 천 권은 아직도 보유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그 책의 책등을 보기만 해도 내가 그 책을 사서 읽었던 시기의 추억이 되살아난다. 그 무렵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고뇌했으며 또 무엇을 기뻐했던가, 책과 함께 그런 추억들이 되살아온다."
일본의 대표 지성 다치바나 다카시(76)가 건물 전체가 서재로 구성된 자신의 '고양이 빌딩'을 해설한다. 무려 20만여권에 달하는 그의 장서가 쌓인 곳이다. 이 압도적인 지식의 보고에서 그는 언제 어디서 왜 그 책을 구해 읽었는지, 어떤 책이 도움이 되었는지 소상히 풀어놓는다. 철학, 신학, 인류학, 물리학, 생물학, 민속학 등 세상의 온갖 지식을 망라하며, 자신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드러내는데, 그 해설이 자못 경이로울 정도다.
지(知)의 거인 다카시는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일본 저술가다. 젊은 시절 다나카 가쿠에이 전 수상의 미국 록히드사 뇌물 수수 사건을 파헤치면서 그는 언론인으로서 먼저 이름을 알렸다. 철저한 조사와 과학적 분석에 기반한 탐사 정신과 삼라만상을 향한 그침없는 호기심은 세월이 흘러 그를 일본의 대표 지성으로 올라서게 했다.
그런 다카시를 만들어 준 건 팔할이 독서였다. 그는 끊임없이 읽고 또 읽었다. 무시무시한 독서광이자 애서가인 그는 20년 전부터 자신만의 서재 '고양이 빌딩'을 만들어 지식의 만리장성을 쌓아갔다. 이 넓은 빌딩의 지하 2층부터 옥상까지 보관해둔 책들만 무려 20만여권. 이 모든 책들은 그가 학창시절부터 차곡차곡 모은 것들로, 문학 사회학 언어학 수학 생물학 미술사 천체물리학 등 세간의 상상을 뛰어넘을만큼 관심사가 전방위적이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문학동네)는 저명인사들의 서가를 촬영해 책으로 출간하는 시리즈물 중 한 권으로 기획된 것이다. 사진작가 와이다 준이치가 자신이 개발한 서가 정밀촬영술로 서재 구석구석을 선명하고 정밀하게 촬영해놨다. 감탄에 감탄을 자아내는 장서들의 진풍경이 다카시의 해설과 함께 펼쳐진다. 그런데 다카시 스스로가 밝히듯 처음에는 서재 전체를 찰칵 찰칵 찍는다는 게 그리 기분 내키는 일이 아니었다고 한다. "나의 빈약한 머릿속을 엿보이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다지 아름답지 못한 몸인데 누드 사진을 찍히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이것이 지나친 겸양의 표현일 뿐임을.
책에서 다카시는 독서와 공부법에 대해 여러 차례 논한다. 앎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지식이란 어떻게 축적되는지에 대한 설명이 친절히 이어진다. "경솔하게 읽어내지 않고, 경솔하게 쓰지 않으며, 무언가에 대해 안다고 쉽게 자부하지 않아야 한다"는 조언이 울림깊다.
[김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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