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민심청취'의 첫 일정으로 글로벌 경기 침체의 직격탄을 맞은 경상남도 거제시의 조선산업 현장을 찾았다.
반 전 총장은 이날 열린 대우조선해양 노조 간담회에서 "귀국 이후 첫 지방 일정 방문지를 거제로 잡은 것은 그만큼 조선 산업의 심각성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또 "외교관으로 외국에 다니면서 국내 조선산업의 발전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고 홍보를 많이 했다"면서 "UN 사무총장하면서는 한국 조선산업에 대해 직접적으로 홍보를 하지 못했지만 사석에서 늘 자랑스럽게 얘기했다"며 각별한 애착을 보였다.
반 전 총장은 "정상외교 등 외교적 채널을 통해 얼마든지 (선박 수출을) 촉진할 수 있다"며 조선산업의 돌파구를 제안하기도 했다. 이어 "제가 전 세계적 지도자들과 네트워크가 많다"면서 자신의 강점인 외교적 역량을 통해 침체에 빠진 조선산업의 활로를 뚫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외교 전문가'라는 이미지가 강한 반 전 총장이 이번 대선의 주요 화두인 경제 분야에 대해서는 인식이 부족할 것이란 세간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반 전 총장은 또 "그동안 정부 당국의 크고 작은 여러 가지 정책적 잘못이라든지 적폐, 이런 것도 이 기회에 확실히 고쳐야 한다"면서 "우리끼리 경쟁하면서 저가 출혈 수주를 하는데 중동 등 다른나라만 이를 즐긴다"며 정부와 업계의 변화를 촉구하기도 했다.
노사 문제 관련해서는 "외교관으로 46년을 보냈는데 외교에서 승리라는 것은 50대 50이다. 어느 나라도 100% 승리라는게 거의 없다"면서 노사 상생을 주문했다.
반 전 총장은 조선산업 현장 시찰에 이어 부산 유엔 기념공원과 국제시장을 잇달아 방문하며 부산·경남(PK) 민심에 구애의 손길을 보냈다.
이처럼 반 전 총장이 첫 지방일정으로 PK를 택해 대선 흥행몰이의 시동을 건 것과 관련해 정치적 해석이 분분하다.
대선 국면이 반 전 총장과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의 양강 구도로 흘러가고 있는 가운데 여권의 전통적 텃밭인 PK에서 부는 야권 바람을 잠재우기 위한 행보라는 것이다. 문 전 대표는 거제에서 출생해 학창 시절은 물론 인권변호사로서 정치 입문을 한 곳이 부산이다.
이에 대해 반 전 총장은 "지역적 개념은 없고 오게 된 것은 유엔묘지가 있으니까 전직 사무총장으로서 한국전에서 산화한 유엔군에 대한 경의를 표하고자 했고 대우조선해양은 구조조정에 있어 어려움이 있다고 해서 들어보기 위해 갔다"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아울러 반 전 총장은 17일에는 경상남도 김해 봉하마을을 찾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역에 참배하고 권양숙 여사를 예방할 예정이며 전라남도 진도 패목항과 광주에서 민심 청취를 이어가며 '대통합'의 광폭행보를 이어간다.
한편 문 전 대표가 자신을 '양지에서 자란 사람'이라고 언급한 것에 대해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한국전쟁 때 땅바닥에서 공부하는 등 나름대로 노력했다"면서 "제가 문 전 대표보다 더 오래 살았고 한국의 많은 변혁을 더 겪었다고 생각한다"며 반박했다. 또 "세계를 다니면서 자기를 대변할 수 없는 사람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데 그렇게 말씀하시는 건 (적절치 않다)"라며 불쾌한 기색도 드러냈다.
부산 일본 소녀상 설치 문제 관련해서는 "수십년간 정체되었던 것을 박근혜 대통령이 처음으로 합의를 이룬 것은 평가할만하다"면서도 "위안부 할머니의 한을 풀어 줄 수 있는 내용이 합의에 담겨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면 잘못된 일이다"고 밝혔다.
[거제·부산 = 안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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