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김주하의 1월 6일 뉴스초점-9만 9천 원 vs 150만 원
입력 2017-01-06 20:17  | 수정 2017-01-06 20:45
'염치가 없어 마음만 받겠습니다'

지난달, 광주에서 절도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한 아버지의 말입니다.

일용직으로 힘겹게 살아온 아버지는 아들의 결혼을 앞두고 상견례 때 입고 갈 새 옷을 사러 마트에 갔습니다.

고심 끝에 고른 옷은 9만 9천 원.

아들이 새 옷을 사라며 준 돈이 있었지만, 한 푼이 아쉬웠던 아버지는 그 돈을 쓰지 못하고, 그만 나쁜 선택을 하고 말았습니다.

옷을 훔친거죠.

아버지는 절도범으로 체포됐고, 죄를 뉘우치며 옷값을 전부 변상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건 사연이 알려지고 난 뒤였습니다. '옷을 사주겠다', '축의금이라도 전하고 싶다'며 경찰서에 전화가 빗발친 겁니다. 하지만, 그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염치가 없다며 극구 사양했죠.


'난 모른다. 엄마가 다 했다…'

국정농단의 주범인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가 한 말입니다.

앞선 아버지의 사연이 알려졌을 때쯤, 공교롭게도 인터넷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 순위엔 '정유라 패딩'이 올라 있었습니다. 유명 연예인이 입어 알려지기도 한 이 패딩 코트의 가격은 150만 원이었죠.

9만 9천 원과 150만 원짜리 외투, 어떤 생각이 드셨습니까?

'정유라의 옷을 뺏어주고 싶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 인터넷에서는 이런 글들이 무수히도 많이 올라왔지요.

단순한 금액 차이가 아닌 '염치와 거짓말'·'온정과 비난', 모두가 느꼈던 감정 아닐까요.

도망을 가서도 150만 원짜리 고가의 옷을 입고, 수백만 원의 월세를 내며, 일류 변호사를 선임하고도 모든 죄를 엄마에게 미루며 거짓말을 하는 딸.

그리고, 그런 딸을 수억 원짜리 말에 태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과 권력을 탐했던 삐뚤어진 모정의 주인공 최순실.

아들이 준 돈을 쓰기 아까워 옷을 훔칠 수 밖에 없었던, 그럼에도 염치가 없다며 주변의 도움을 거절한 아버지.

이렇게 서로 다른 이들의 모습은 우리가 예상은 했으면서도 애써 피하고 눈감아 왔던, 그래서 지금은 고칠래야 고칠 수 없는 '양극화'라는 비극으로 와닿고 있습니다.

돈이 많다고 나쁜 사람은 절대 아닙니다. 또, 이들이 다 부정을 저지른다는 말도 절대 아닙니다.

다만, 액수조차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부정을 저지른 사람과 고작 십만 원에 양심을 판 게 염치 없다는 사람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왜 이 모양이 됐고, 큰 부정을 저지른 사람에게 국민의 법감정 만큼 법이 죗값을 치르게 하지 못할 것이라는 게 화가 치밀 따름입니다.

그럼에도 범법자에게 온정의 손을 내민 이들이 있으니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봐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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