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과 친받 맏형격인 서청원 의원이 새누리당 인적 청산 문제를 놓고 치킨게임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인 비대위원장은 친박(박근혜)계 중진 의원들까지 거취를 위임받으며 세를 넓혀가는 한편 사실상 정계은퇴 압박을 받고 있는 서 의원은 당 쇄신 주도권을 놓고 인 비대위원장에 항명하는 모양새다.
5일 인 비대위원장은 여의도 새누리당사 출근길에서 기자들과 만나 "새누리당이 정치하는 곳인 줄 알았는데 와서 보니까 교회더라. 서청원 집사님이 계신 교회이다"면서 "내가 손 들고서 비대위원장을 하겠다고 온 것이 아닌데 잘못 왔다는 생각이 확 난다"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이어 "집에서 나오는데 집 사람이 '당신은 입이 헤픈 게 문제다'라며 잔소리를 하더라"면서 "'웬만한 사람만 보면 훌륭한 사람이다. 국회의원감, 국회의장감이라고 덕담하는데, 혹시 착각해 진담으로 알아듣고 나중에 안 되면 거짓말쟁이라고 할지 모르니까 입 좀 꼭 다물고 덕담 하지 말라'고 했다"고 밝혔다. 서 의원의 '복당 후 국회의장직을 보장했다'는 주장에 대해 일부 시인하면서도 그런 의도가 아니었음을 해명한 것이다.
친박의 지지로 선출된 정우택 원내대표도 이날 열린 주요당직자 회의에서 "누구보다 앞서 책임을 통감해야 할 일부 분들이 아직도 기득권에 연연하거나 당원의 염원을 알지 못하고 결단하지 못하는 모습이 너무 안타깝다"며 인 비대위원장에 힘을 실어줬다.
아울러 정 원내대표는 서청원·최경환 의원을 직접 겨냥해 "도둑이 제발 저린 식으로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드러났다"면서 "친박의 맏형이나 좌장이라고 했던 분들이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겠다고 하는 것을 국민들이 어떻게 볼지, 그건 본인들이 더 잘 알 것"이라고 밝혔다.
당내에서는 인 비대위원장이 인적청산 시한으로 밝힌 6일이 코 앞으로 다가오면서 '핀 포인트'식 인적 쇄신에 대해 수긍하는 분위기로 돌아섰다. 정 원내대표는 "중도성향 의원들을 리드한 이주영 의원도 어저께 의사표시를 한 것으로 알고 초선 의원들에게도 그런 얘기가 들어왔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충청 출신인 인명진·정우택 투톱이 당내에 대권후보가 없는 상황에서 유일한 대안인 반기문 전 UN사무총장을 포섭하기 위한 사전작업으로 껄끄러운 '진박' 핵심을 잘라내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새누리당은 인적쇄신 외에도 재창당 혁신 추진 태스크포스(TF)를 통해 정책과 당 기구, 국회의원 특권 쇄신을 위한 대안도 마련하기로 했다. 특히 당명 교체에 대해서는 TF에서 검토하기로 했으며 당 해산은 물리적으로 어렵다는데 공감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서 의원을 비롯한 친박들의 저항도 거세다. 이날 열릴 예정이었던 인 비대위원장과 새누리당 상임고문단과의 오찬은 무기한 연기됐다.
정용기 원내수석대변인은 "많은 상임고문들이 당이 좀 안정되고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전해왔다"며 해명했지만 일부 친박 성향 상임고문들이 인 비대위원장 '힘빼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서 의원은 이날도 "성직자는 사람의 생명을 보호해줄 의무가 있는데, 죽음을 강요하는 성직자는 대한민국에 그 분밖에 없고 비대위원장의 자격이 없다"며 인 비대위원장에 대한 비난의 수위를 높였다.
서 의원은 이날 새누리당 경기도당 신년인사회에서 "국민이 성직자를 신뢰해서 성직자를 모셨는데 잘못 모셔왔다"면서 "저는 당을 정비하고 개혁해서 올해 대선과 어려운 정국을 끝내겠다"고 밝혔다. 서 의원이 당 쇄신 주도권을 놓고 인 비대위원장과 정면 대결을 선포한 셈이다.
서 의원은 또 인 비대위원장의 위장탈당 권유에 대해 "어제 덕담으로 말했다고 했으면 끝나는데 아니라고 해서 제가 거짓말쟁이가 됐다"면서 "당직자들의 탈당은 (인 비대위원장에) 꼬여서 한 건데 그건 원천 무효다"라고 말했다.
서 의원과 함께 인적 청산 대상 중 유력한 한명인 최경환 의원은 자신의 지역구인 경북 경산시에 머물며 최대한 입장표명을 자제하고 있지만 '탈당 불가' 방침에는 변화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안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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