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기업이 미래다] 불 꺼지는 구미에서 사람들이 떠난다
입력 2017-01-03 16:01 

지난달 찾은 경북 구미시 최대 번화가인 인동. 이곳은 삼성전자 구미 2공장 맞은편에 위치한 곳으로 음식점과 술집 의류매장 영화관 등 500여 개의 상가가 밀집되어 있다. 불과 5~6년 전만 해도 줄을 서서 먹어야 하는 식당들이 많았는데도 최근에는 '임대'를 붙여 놓은 빈 점포들이 속출하고 있다. 삼성전자 구미공장 직원들이 줄어든데다 경기마저 좋지 않아 지갑을 굳게 닫았기 때문이다.
구미산단 1단지는 곳곳에서 공장 임대와 매매를 알리는 현수막을 찾을 수 있었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대기업의 하도급 물량이 줄어들면서 조업을 중단한 중소기업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구미 1산단에는 기업 1206곳이 입주해 있지만 준공 45년째가 되면서 노후화와 영세화로 활력을 잃은 모습이다.
백승주 새누리당 국회의원(경북 구미시갑)은 "불과 20~30년 전만 해도 '구미로 가라, 그러면 밥은 먹고 산다'는 얘기가 있었다"며 "지금은 '구미는 뭘해도 안 된다"는 패배의식이 구미 공단 사람들 마음 속에 자리잡았다"고 안타까워했다.
사정이 안 좋다 보니 구미공단 근로자 수는 지난해 9월 9만4792명으로 1년새 7% 이상 줄어들며 10만명이 붕괴됐다. 전체 인구도 2014년 42만명을 기점으로 감소 추세로 돌아섰다. 구미 지역 수출액도 2014년 325억 달러, 2015년 273억, 지난해는 204억5600만 달러(10월 기준)로 전년 동기(234억900만 달러)에 비해 12%나 줄어든 상황이다.

구미의 지역 경제가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기업이 떠나갔기 때문이다. 삼성 LG 등 대형 가전 제조업체에서 발주한 물량이 중견·중소기업을 거쳐 가내공업에까지 온기를 불어넣어줬는데 이들중 일부가 해외로 떠나면서 상생고리가 끊겨버린 것이다.
김석호 금오산맥 대표는 "도레이첨단소재나 LIG넥스원 LG디스플레이 등은 남아 있지만 이들은 부품 업체여서 공단에 입주한 업체에 줄 수 있는 일감이 많지 않다"며 "산업의 빠른 변화를 구미 산단이 놓친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의 규제와 지원 의지 부족도 구미를 병들게 하고 있다. 산단에 입주할 수 있는 업종을 까다롭게 지정해 놓아서 다른 업종의 업체가 들어오기가 어렵다. 또 기존 회사가 업종을 변경해서 새로운 영역에 진출하는 것도 쉽지 않다.
이승희 금오공대 교수는 "정부가 노후공단을 활성화하려고 하지만 부처별로 분리해서 지원하다 보니 실효성이 떨어진다"며 "법과 제도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노후 공단이지만 해외에서는 경쟁력을 되찾은 사례가 많다. 스페인의 포블레노우 산단은 100년간 방직·섬유 산업 중심으로 활성화된 지역이었지만 공해와 공간부족으로 점점 쇠퇴하기 시작, 1990년대에는 1300여개의 공장이 이탈하는 등 황폐화가 지속됐다. 서효동 한국산업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은 "스페인 정부가 앞장서 ICT와 에너지 메드테크 미디어 등 4개 분야를 중심으로 공단을 변화시켰다"며 "재정비가 시작되면서 1063개의 기업이 입주했고 신규 일자리가 3만1982명이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다양한 ICT(정보통신기술) 부품업체가 많은 구미도 정부가 산단의 자유도를 높여주면 새롭게 변신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 볼 수 있다. 김석호 전 경상북도 도의원은 "레이더 카메라와 배터리 모터 등 드론에서 사용되는 부품 대부분을 생산할 수 있는 곳은 전국에서 구미가 유일하다"며 "우리나라에서 사용되는 드론의 90%가 중국산인데 이를 충분히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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