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정유년(丁酉年)을 앞두고 신년 경영 방향타를 맞춰야 할 재계 총수 발밑이 얼어붙었다.
통상 이 때쯤 재벌 오너들은 주력 계열사 경영현장을 챙기고 해외 출장길에 올라 경영 트렌드를 점검하는 등 왕성한 세밑 활동을 벌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올해에는 대부분 총수가 외부 활동을 끊고 뒤숭숭한 마음으로 자택에 박혀 신년 구상을 다듬는다.
10대 그룹의 한 고위 임원은 27일 "최순실 게이트 특검 수사 불똥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데 총수들이 마음놓고 해외에 나가겠느냐"며 "전경련 해체론으로 재계 구심점이 흩어졌다는 것도 분위기가 산만해진 원인"이라고 말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꼭 1년 전 연말연시 연휴를 모두 반납하고 평창동계올림픽 공사 현장으로 달려갈 정도로 행사에 애정을 쏟았다. 하지만 올해는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정부 외압을 받고 올림픽 위원장직에서 사퇴하며 분위기가 정반대로 바뀌었다. 조 회장은 연말 특별한 일정없이 한진해운 청산 이후 그룹 실적을 되살리기 위해 장고에 들어갔다.
특검 출국금지 조치를 받은 최태원 SK 회장은 다음달 계획했던 다보스포럼에 못가게 됐다. SK 관계자는 "최 회장이 연말 주력 사업장을 방문하며 직원들을 독려했지만 올해는 일정이 없다"며 "자택에서 SK하이닉스 등 대형 투자계획을 가다듬는다는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출국이 어려워지며 다음달 초 미국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가전쇼 CES 방문과 세계 최대 전장기업 하만 인수를 위한 해외 주주설득 작업에 제동이 걸렸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자택에 머물며 내년 사업계획과 특검 등으로 인해 미뤄진 임원 인사안을 짠다.
정 회장은 다음달 2일 그룹 시무식에 참석해 연간 판매대수 목표와 구체적인 사업전략을 밝힐 계획이다. 이웅렬 코오롱 회장도 자택에서 쉬면서 신년 구상에 들어갈 예정이다.
재계 관계자는 "내년에도 업황부진, 저성장 등 '경영 보릿고개'는 전혀 나아진 게 없다"며 "이런 가운데 정치 불안전성과 대선 변수까지 생각해야 하며 총수들 머릿속이 더 복잡해졌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개중에 가장 표정이 나은 것은 한화그룹이다. 김승연 한화 회장은 연말 휴식을 취하며 다음달 20일 참석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취임식 이후 사업 구상을 짤 예정이다. 김 회장 세 아들인 김동관 한화큐셀 전무·김동원 한화생명 상무·김동선 한화건설 팀장은 나란히 다보스포럼 참가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화그룹 3세가 나란히 다보스포럼에 참석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승훈 기자 / 김정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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