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크림반도·시리아·美해킹…푸틴이 흔드는 세계질서
입력 2016-12-21 16:46 

‘회색의 추기경이 세계질서를 뒤흔들고 있다.
회색의 추기경은 뒤에서 모든 것을 조종하는 ‘암투가를 일컫는다. 속내를 알 수 없는 냉혹한 승부사 기질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별명이다.
지난 19일(현지시간) 터키의 수도 앙카라에선 안드레이 카를로프 러시아 대사가 백주에 공개행사에서 저격당하는 초유의 사건이 발생했다. 전세계가 경악한 이 사건에 대해 정작 푸틴 대통령은 냉정했다.
푸틴은 사건 직후 러시아·터키 양국 관계에 대한 도발이자 비열한 범죄”라며 전 세계가 테러리즘과 전쟁을 강화해야 할 필요성을 보여준 또 하나의 증거”라고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러시아 정부의 핵심인물인 카를로프 대사가 사망했지만 ‘테러와의 전쟁이 우선이라는 냉정한 반응이었다.

푸틴의 내심은 하루 지나 모스크바에서 열린 러시아-터키-이란 외무장관 회담에서 드러났다. 이들 3개국은 러시아와 이란과, 터키는 시리아 정부와 반군 사이에서 진행 중인 합의를 추진하는 것을 지원하고, 보증인이 될 준비가 돼 있다”고 선언했다. 5년여나 계속된 참혹한 전쟁인 시리아전을 세 나라가 ‘지분을 나눠먹고 정리한 셈이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이 전쟁의 참여자였던 미국과 유엔을 위시한 서방은 완전히 배제됐다. 지난 2015년 10월 테러와의 전쟁을 명분으로 시리아 내전에 개입한 러시아가 ‘승전국으로서 모든 권리를 행사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미국이 중동 분쟁에서 머뭇거리는 틈을 타 확실한 실익을 챙긴 셈이다.
푸틴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 등 전통적인 ‘스트롱맨(상남자)들의 표상이 되고 있다. 이들은 ‘-이즘(주의)을 버리고 철저하게 국익을 추구하는 실용주의를 택하는 공통점도 있다.
푸틴 대통령에게 있어 ‘외교적 결례는 문제도 되지 않는다. 그는 16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에 4시간여 늦게 도착해 ‘지각 대장이라는 명성을 재입증했다. 푸틴의 지각에 대해 외신들은 ‘급한 것은 일본이지 우리가 아니다며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한 고도의 전략이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회담에서 푸틴은 일본으로부터 3000억엔(약 3조원)대 경제협력을 이끌어낸 반면 일본은 원했던 사안을 협의조차 못했다.
푸틴 대통령의 무서움은 치밀한 세계 전략에 있다. 2014년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크림반도를 합병한 이후 러시아는 외교무대에서 ‘왕따가 됐다. 하지만 재빨리 시리아 내전에 개입하며 전세를 역전시키는 전략을 구사했다.
트럼프의 취임 전 미국 정가를 뒤흔들고 있는 해킹 사건도 이의 연장선상으로 볼 수 있다. 푸틴 대통령의 영향력 확대는 한반도 정세에도 지대한 파장을 몰고 올 수 있다. 현재 대북제재 등 유엔 안보리 결의에 동참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지만 러시아의 행보에 따라 한반도 정세는 요동칠 수밖에 없다.
‘차르(제정 러시아 황제)의 재림으로 불리는 푸틴 대통령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친(親)러시아 인맥으로 구성된 트럼프 차기 정부의 외교라인을 볼 때 푸틴 대통령을 견제할 세력이 현재로서는 없는 상황이다.
[장원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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