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세월호·메르스·AI 앞 정부, ‘판에 박은 듯 5가지 실패’ 공통점
입력 2016-12-19 16:53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확산으로 살처분된 닭과 오리가 19일 기준으로 1900만마리를 넘어서면서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AI가 연례 행사처럼 발생하고 있지만, 유난히 올해 피해가 컸던 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바이러스 전파속도가 빠르고 독성이 강한 측면도 있지만, 초기대응이 부실하고 콘트롤타워가 부재했다는 점 등은 메르스사태와 세월호 참사 때와 ‘판박이이다. 이번 AI 사태가 예고된 인재였다는 분석이다.
◆ 초기대응 부실해 골든타임 놓쳐
메르스 사태와 세월호 참사때 처럼 이번 AI 대응에 있어 정부가 초기 대응에 실패해 골든 타임을 놓친 흔적이 곳곳에 나타나고 있다. 신고가 이뤄졌지만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해 사태를 키운 것이다.
충남 천안시 풍세면 봉강천에선 10월 28일에 H5N6형 고병원성 AI 바이러스가 야생조류의 분변으로부터 최초로 검출됐다. 그러나 11월17일에 전남 해남(산란계), 충북 음성(오리) 소재 2개 농장에서 H5N6형 고병원성 AI 바이러스로 확진될 때까지 농식품부는 시 단위로만 방역대를 설정하고 ‘철새 주의 문자를 인근 농가에 보내는 데 그쳤다. 19일동안 인근 지역에 대한 아무런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미 야생조류에서 AI바이러스가 나온 상황에서 지난달 3일 강원도 원주시에서 발견된 수리부엉이가 AI확진을 받는데도 무려 20일 가량이 소요됐다.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조짐이 나타난 것이었음에도 조기에 확진을 못해 방역 조치 강화할 타이밍을 놓친 것이다.

김현권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수리부엉이가 AI 확진을 받은 것은 이미 AI가 서해안에서 내륙을 관통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으로 조기 확진이 이뤄졌다면 조기 경계경보 발동, 이동제한조치 확대·강화 등 사태 확산을 막기 위해 다양한 대책을 추진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메르스 사태 때는 최초 발병자 이모씨가 지난해 5월11일 발열증세를 보였고, 9일 뒤인 20일 메르스 확정 판정을 받았다. 그 사이 병원 4곳을 전전했고 의료진이 메르스가 의심된다”며 보건복지부 산하 질병관리본부에 보고했다. 하지만 질병관리본부는 ‘만약 메르스가 아니면 해당 병원이 책임져라는 식으로 검사를 미뤄 메르스 확산방지 ‘골든타임을 놓쳐버렸다. 신고 초기에 해경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구조조치도 취하지 못하고 피해만 키웠던 세월호 참사때와도 같은 모습이다.
◆부실한 대응 메뉴얼
특정 상황에 대해 대응 메뉴얼이 부실하거나 존재하지 않아 사태를 악화시킨 점도 이번 AI사태가 메르스 사태와 세월호 참사 때와 비슷한 점이다.
10월이후 AI주의단계에 접어들어 철새가 AI에 감염돼도 소관 부처인 환경부와 방역당국인 농림축산검역본부와의 뚜렷와 업무 연계 메뉴얼이 없었다. 야생조류가 AI에 감염돼 야생동물구조센터에서 치료를 받게 되더라도 조기에 방역조치에 나설 수 가 없다. . 소관 부처인 환경부와 방역당국인 농림축산검역본부와의 뚜렷한 업무 연계 체계와 매뉴얼이 없기 때문이다.
농식품부가 AI 창궐에 대비해 매뉴얼 격인 ‘긴급 행동 지침(SOP)을 만들어뒀지만 명확한 대응 기준이 없다는 지적도 있다. 단계별 상황에 따라 정부가 취해야 할 조치가 나열돼 있지만 내용이 구체적이지 않아 어느 시점에 어떤 조치를 내려야 하는지 불명확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위기 단계가 ‘경계일 때 ‘전국 단위 이동 제한 조치(스탠드스틸·Standstill) 실시를 검토한다고 모호하게 적혀 있을 뿐이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설치도 ‘심각 단계에서 ‘필요시 건의로 돼 있어서 설치 여부가 불분명할 수밖에 없다
메르스 사태때 네 번째 메르스 환자는 세 번째 환자 증상 발생 후 자발적으로 유전자검사와 국가지정입원치료병상으로 격리를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체온 측정결과 36.3도로 정상이었고 호흡기 증상도 없었으며 증상이 없는 상황에서 유전자 검사는 의미 있는 결과를 얻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감염병 확산 방지에 도움이 된다면 애매한 메뉴얼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보다 유연하게 대처해야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세월호 참사 당시에는 안전행정부 실무자들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운영 매뉴얼이 없어 업무분장조차 모른채 세월호 침몰 사고 당일 중대본에 참여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콘트롤타워 부재로 관계부처 협력 안돼
메르스 사태와 세월호 참사 때처럼 이번 AI사태에도 콘트롤타워가 뒤늦게 구성됐다. 그러면서 관련부처와 지방자치단체 등이 제대로 협조하지 못하고 허둥지둥 하면서 사태가 확산됐다.
지난 2일 우포늪에서 AI 감염이 의심스러운 철새 폐사체가 발견됐으나 농림축산식품부와 환경부, 경남도는 이를 신속히 발표하지 않았다. 당시 폐사체 신고는 환경부 산하 낙동강유역청으로 신고됐고 환경부에서 검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지자체는 자기 소관이 아니라는 이유로 적극 대응하지 않았다.
이 같은 상황을 비롯해 지자체와도 유기적인 대응이 안되면서 AI방역대책본부내에 안전처, 행자부, 환경부 및 질병관리본부 등 관계부처 인력을 파견받아 범정부 지원반이 설치 된 것이 지난 12일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AI 관계장관회의를 개최한 직후였다. 지난달 16일 AI가 확진된 이후 26일 만에서야 제대로된 범정부체계가 갖춰진 것이었다.
앞서 메르스 사태 당시 콘트롤타워가 ‘질병관리본부→복지부→총리실 등으로 수시로 바뀌며 혼선을 빚었고 당시 질병관리본부, 지자체, 민간 병원 사이의 연계가 체계적이지 못해 검사가 늦어진 것과 유사한 상황인 것이다. 당시에 ‘메르스 정보 공개여부를 두고 청와대와 박원순 서울특별시장이 충돌하고, ‘메르스 휴교에 대해 복지부와 교육부가 각자 딴소리를 하는 등 혼란은 계속됐다.
‘세월호 참사 당시에도 선체가 기울고 있는 현장이 생중계 되고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상황을 장악하지 못했다. 해양수산부 장관도, 안전행정부 장관도, 국무총리도, 대통령도 없었다. 결국 현장 지휘관 어느 누구도 책임있게 대처하지 못했다.
◆정부 책임 회피에 몰두
농림축산식품부는 13년째 철새 탓만 합니다. 매년 대규모 살처분 사태가 반복되고 있지만 책임지는 부처나 공무원은 없습니다.”(환경운동연합 관계자). 사상 최악의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생했지만 정부는 예년처럼 말 못하는 철새에게 책임을 돌리며 책임회피에 급급한 모습이다.
김재수 농식품부 장관은 지난 16일 담화문에서 정부의 다각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AI가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며 방역에 최선을 다했다는 표현만 했을 뿐 정부 대응 부실에 대한 사과는 전혀 없었다.
지난해 5월 발생했던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 때도 정부는 비슷한 태도를 보여 빈축을 샀다. 초기 대응 실패가 여실히 드러났지만 정부는 최선을 다했다는 입장만 반복했다. 한국헬스커뮤니케이션학회가 메르스 사태 당시 정부가 발표한 자료를 분석한 결과, 전체 191건의 정부 보도자료 중 정부 책임을 명시한 자료는 단 7건에 불과했다. 오상화 미국 애팔래치아대학 교수는 정부는 메르스 사태가 예측 또는 통제할 수 없었던 재난 상황이란 말만 반복했다”며 책임을 부정·회피하는 위기관리 전략에만 집중했다”고 지적했다.
◆사후약방문식으로 담당 부처만 커져
사후약방문식으로 조직만 확대·개편 하려는 점도 비슷하다. 농식품부는 정부조직을 맡고 있는 행정자치부와 AI 예방센터를 정식 조직으로 만드는 방안을 협의중이다. 2015년 2월 26일부터 2017년 2월 28일까지 2년간 한시적으로 운영되는 AI 예방센터를 확대·개편하는 것이 골자다. AI 예방센터가 들어선 후 AI로 인한 방역·보상금이 연평균 100억대 초반으로 기존보다 3분의 1 이상 감소했다는 평가가 있다. 하지만 초동대응에 실패해 AI 확산을 자초한 농식품부가 자기 조직 늘리는데에만 급급하고 있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이같은 행태는 메르스 사태와 세월호 참사 직후에도 벌어졌다.
질병관리본부는 메르스 이후 차관급 기관으로 격상되면서 인사권과 예산권을 독립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국가 방역전담 기관이 됐다. 하지만 ‘청으로 별도 독립하기보다는 보건복지부 산하에 있어서 자율적이고 능동적으로 초동 대응을 할 능력을 갖추지 못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 역시 여전하다.
2014년 세월호 사태가 터진 후 정부는 당시 행정안전부 산하 중앙대책본부를 국민안전처로 확대개편했다.
[고재만 기자 / 서동철 기자 / 나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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