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의 제사상에 옥수수죽 밖에 없었습니다. 나중에라도 동생한테 제대로 된 음식을 만들어 주겠다고 그때 생각했어요.”
14일 일본식 라면 가게를 개업한 이성진(26)씨의 목소리엔 떨림이 묻어났다. 북한에서 굶주림으로 11살 여동생을 잃었다고 했다.
그로부터 4년 뒤인 2004년 성진 씨는 함경북도 청진에서 조부모·부모와 함께 탈북했다. 15살 때 일이다. 한국에 와서는 요리사를 꿈꾸며 경기대 외식조리학과를 다녔고 이젠 음식점 사장님이 됐다. 성진 씨는 사단법인 PPL재단과 현대자동차·남북하나재단이 후원하는 ‘백사장 만들기 프로젝트의 1호 창업자다.
100명의 탈북민 출신 사장을 만들겠다는 백사장 프로젝트는 기존 지원 중심의 탈북민 사업에서 벗어나 탈북민의 창업과 자립 역량 강화에 중점을 둔 프로젝트다. PPL재단은 작년 11월 1·2차 면접을 거쳐 탈북민 교육생 20명을 선발했고, 이들에게 7개월간 요리·창업 및 현장 실습 교육을 지원했다. 이중 최종 창업 대상자로 성진 씨와 송아람(가명·41)씨가 선발됐다. 성진 씨가 이날 1호 사장님으로 스타트를 끊었고 아람 씨도 이달 중 세종대학교 근처에 2번째 가게를 열 계획이다.
창업자금은 ‘자립 역량 강화에 초점을 맞춘 사업답게 대부분이 대출이다. 성진 씨가 가게를 운영하며 갚아 나가야 한다. 김동호 PPL 재단 이사장은 지원이 지나치면 지원받는 사람을 무너뜨리게 된다”며 자립에 성공하는 탈북자 모델을 만들어 탈북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앞으로 3년간 북한이탈주민 100명에게 창업자금과 교육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성진 씨는 가게를 가오픈해 운영해왔는데 아침 7시에 출근해 저녁 11시쯤 들어간다”며 몸은 피곤하지만 줄 서있는 손님을 보면 힘이 난다”고 말했다.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53㎡(16평) 라면 가게에는 성진 씨와 탈북 청년, 한국인 아르바이트생 등 모두 3명이 일하고 있다. 성진 씨는 남·북한 청년이 함께 일하는 마을 같은 가게를 만드는 게 꿈”이라며 매출이 증가하면 직원도 늘릴 것”이라고 포부를 전했다. 이날 오픈 행사에는 홍용표 통일부 장관, 현대자동차그룹 박광식 부사장 등이 참석해 성진 씨의 새로운 시작을 응원했다.
[박태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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