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지구를 돌아돌아’ 최장수총리 노리는 아베의 외교질주
입력 2016-12-13 15:36 

아베 신조 총리는 지난달 10일 오전(미국시간)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와 약 20분간 전화통화을 가졌다. 세계 정상 중 4번째로 통화를 성사시켜 트럼프 인맥이 없다”는 우려를 불식시킨 아베 총리는 즉석에서 만남을 제안했고, 일주일 후인 17일 통역만 대동한 채 홀로 뉴욕 트럼프타워를 찾았다. 전세계 미디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트럼프 당선인을 만난 아베 총리는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긴 약 90분간 면담을 가졌다.
뉴욕 회담을 마치자마자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위해 페루 수도 리마로 날아간 아베 총리는 현지에서 현직 미국 대통령인 오락 오바마와 만났다. 뉴욕에서 이례적으로 대통령 당선인과 회담을 가진 것에 대해 현직 대통령에 대한 외교적 결례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터였다. 뒤늦게 알려졌지만 아베 총리는 이 자리에서 연말 진주만 답방”을 전격 제안했고, 오바마 대통령은 흔쾌히 이를 수락했다. 아베 총리의 전격적인 진주만 방문은 일석이조 이상의 효과를 노린 것이었다.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오바마 정권에 대한 예우와 이를 통한 변함없는 미일 동맹 강화, 아울러 트럼프 신정권의 미일동맹 재정립 압박에 대한 재반박 효과에 이르기까지... 성탄절 직후 아베 총리와 오바마 대통령이 함께 진주만에 등장하는 모습이 전세계에 타전되면 미일 동맹을 과시하는 극적인 효과를 낼 것이라는 분석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현직과 차기 미국 대통령을 잇따라 만나며 국익을 챙기려 동분서주하는 아베 총리의 행보를 지켜본 한 외교소식통은 다른 건 모르겠지만 아베의 외교전술 하나 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혀를 내둘렀다. 실제로 한국 외교가 탄핵정국으로 멈춘 지난 두 달새 아베 총리는 특유의 ‘지구본 외교를 풀가동하며 격변기 국익챙기기에 올인하고 있다.

불과 두 달 사이 단독회담이든, 다자회의장에서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등 전세계를 주무르는 리더들은 물론 아웅산 수지 미얀마 국가고문,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 등 새롭게 떠오르는 동남아 주변국 정상에 이르기까지 무려 15명 이상의 정상들과 만남을 가졌다. 지난 9월 이후 임시국회가 열려있어 평일 주요 위원회에 총리가 직접 출석해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전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외교 총력전을 펴고 있는 셈이다. 외교가에서는 주요국 정상 중 가장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아베 총리는 국익을 위해서는 격식을 따지지 않고 저돌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연말까지 두 달 새 회담장소는 뉴욕트럼프타워에서 지역구 야마구치현 료칸(온천여관), 하와이 진주만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이다. 상대국 정상과 개인적인 친분을 강조하며 최대한 유리하게 자국의 입지를 다지려는 전술의 일환이다.
지난달 모디 총리 방문 때는 정상회담 외에도 토요일 아침부터 오후까지 약 5시간을 동행하며 신칸센 공장 견학에 나서기도 했다. 최대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는 인도 철도·인프라 시장에 대한 공략을 위해 하루를 풀 베팅한 것이다. 푸틴 대통령과는 15~16일 지역구 야마구현에 이어 도쿄에서 연이틀 정상회담을 갖는 모습을 연출할 예정이다. 북방영토 귀속이라는 극적인 합의를 이루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자원개발이나 공동경제활동 등 진일보한 협력방안이 나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아베 총리는 2012년 말 2차 정권 수립 이후 푸틴 대통령과는 10차례 이상 만나며 끈질기게 영토 문제를 설득해왔다.
물론 트럼프 당선인이 아베 총리와의 회담 이후 TPP 폐기 선언을 재확인하고, 영토분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 등 주변국과는 별다른 외교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내실이 없다는 지적도 일부에서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외교 총력전은 리더가 자국 안보와 국익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인식을 국민들에게 심어주는 효과를 내고 있는 분석이다.
실제로 아베 총리의 광폭외교는 지지율을 지탱하는 가장 큰 힘이 되고 있다. 아베 2차 정권 발족 이후 오랜 디플레이션에 빠진 일본 경제에 희망을 주겠다며 내놓은 아베노믹스가 초기 지지율의 원천이었다면 최근에는 특유의 ‘지구본 외교가 가세했다는 분석이다. 트럼프 효과가 반영된 지난달 말 교도통신 여론조사에서 아베 내각 지지율은 전달 조사보다 무려 6.8%나 올라 60.7%를 기록한 것이 단적인 사례다. 아베 내각 지지율이 60%를 넘어선 것은 아베노믹스 대규모 양적완화로 급격한 엔저와 주가 부양을 가져와 디플레 탈출 기대감이 한창 고조됐던 2013년 10월 이후 3년 만이다. NHK의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연말에 예정돼 있는 진주만 방문에 대해 무려 82%가 ‘어느 정도 또는 ‘크게 평가한다고 답변하기도 했다.
아베 총리는 이런 높은 지지율을 토대로 전후 최장수 총리를 향해 질주하고 있다. 일본 정계에서 경쟁자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1강 체제를 구축해 이달 초 재임기간이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를 넘어 역대 4위에 올라선 아베 총리가 2020년 도쿄올림픽 이후까지 총리직을 맡아 역대 최장수 총리에 등극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도쿄 = 황형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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