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직무정지됨에 따라 외교에도 중대한 영향을 줄 것으로 관측된다. 적극적 외교보다는 ‘상황 관리에 방점이 찍힐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에서, 한국 외교는 ‘현상유지에 주력하게 될 전망이다.
정상외교 일정은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나오기까지 ‘180일 이내의 기간 중 사실상 보류되며 필요불가결한 외교 협의는 윤병세 외교부 장관을 필두로 한 외교부 중심으로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연내 일본에서 개최 예정이었던 한중일 정상회담이 무기한 보류된다.
루캉 중국 외교부 대변인도 지난 8일 정례 브리핑에서 이달 중 도쿄에서 개최 예정이었던 한중일 정상회담 연내 개최는 어려울 것”이라며 알다시피 한중일 정상회담은 현재 최종적으로 확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요미우리신문은 9일 탄핵소추안이 이날 국회에서 통과돼 박 대통령이 직무정지를 당할 경우, 일본 정부는 한중일 정상회의를 연내 개최하기로 한 방침을 보류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권한대행인 황교안 총리의 대리출석도 검토되었으나 이에 중국 정부가 난색을 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이니치신문 역시 여러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박 대통령의 일본 방문이 어렵다고 판단했다”며 계획 보류 이유를 밝혔다. 일본 정부는 19~20일 양일간 정상회담을 개최할 것을 중국과 한국에 요청했으나, 중국이 한국의 내정혼란을 이유로 조기개최에 신중해졌다는 것이다.
더욱이 내년 1월 20일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의 새 대통령으로 취임한 뒤 조기에 한미정상회담을 개최하기는 어렵다는 게 가장 큰 우려로 꼽힌다. 미국 새 행정부의 대한반도 외교 라인이 정비되고 대북정책이 수립되기 전에 한미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것은 우리 정부의 입장이 미국 정책에 반영되도록 하기위해서다.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출범한 2001년에는 3월 초 김대중 당시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 간에,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출범한 2009년에는 4월 초 이명박 당시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 간에 첫 한미 정상회담이 각각 열린 바 있다. 그러나 한미 정상외교가 앞으로 수개월 이상 공백으로 남을 것이 불가피해 큰 우려를 낳고 있다. 미국 트럼프 정부가 대북 정책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북한도 사태를 관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우리 정부의 공백은 시기적으로 최악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 북한의 최선희 외무성 미국국장이 북한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정책을 파악하기 전에는 양국 관계를 해칠 수 있는 행동을 취하지 않겠다”고 미측과의 반관반민 접촉에서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 국장의 이런 발언과 관련,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은 북한 측이 트럼프 행정부가 초기 대북 정책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악영향을 끼치지 않으려고 핵실험이나 미사일 도발 등 도발을 자제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고 전했다.
이외에 내년으로 잡힌 대통령의 순방이나 해외 정상들의 방한 일정은 상당부분 연기되거나 보류되는 방향으로 조정될 것으로 보인다. 불가피한 정상회담의 경우 황 권한대행이 대참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상당히 제한적인 양자회담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외교정책 추진 면에서도 고도의 정치적 판단이 필요한 결정은 그 시급성이 인정되지 않는 한 탄핵 심리가 진행되는 동안은 내려지기 쉽지 않아 보인다. 다만, 서명 절차를 앞둔 조약 체결이나 외국 대사 접수와 같은 일상적인 외교 업무는 정상적으로 이뤄질 것이라는 게 정부 관계자들의 반응이다.
2004년 노무현 당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됐을 때 고건 대행 체제에서 정부는 9건의 조약을 체결하고, 외국 대사의 신임장을 제정받았던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내년 2월께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재외공관장 정기 인사의 경우 정년을 맞아 귀임해야 할 대사들이 있는 만큼 최소한 소폭으로나마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안두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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