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건국 이래 최다' 평화로운 집회…朴대통령 업적은 국민대통합?
입력 2016-11-13 16:58 
평화로운 집회 / 사진=MBN
'건국 이래 최다' 평화로운 집회…朴대통령 업적은 국민대통합?


'비선 실세 국정농단'의 책임을 물어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한 3차 주말 촛불집회에 무려 100만명에 달하는 시민이 몰렸습니다.

이는 100만명이 모인 것으로 알려진 1987년 6·10 항쟁과 맞먹는 규모입니다. 건국 이래 최다 인파일 것이라는 얘기도 나옵니다.

이처럼 민심이 폭발한 배경으로는 당연히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의 '비선 실세 국정농단' 사태가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엄청난 규모의 인파를 설명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 6월항쟁 이후 최다 시민 모여…민심 '핵폭발'

세월호 사건, 백남기 농민 사망, 위안부 한일합의, 노동시장개혁, 쌀값 폭락, 금수저·흙수저론 등으로 쌓이던 무력감에 비선 실세 사태가 더해지며 분노로 폭발한 것으로 보입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옆 사람과 비교하는 데서 오는 박탈감과 계급론, 헬조선으로 상징되는 우리 사회에서 느끼는 무력감이 분노를 넘어 절망의 단계까지 간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이어 "이런 상황에서도 시민들이 '뭔가 바꿔보겠다'며 이번 집회에서 분노를 긍정적으로 승화시켰다"면서 "정치적 이슈를 떠나 이대로 우리나라 가면 정말 망하겠다는 절박감과 나라를 향한 충성심이 100만명이라는 숫자로 표현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정치적 성향에 따라 평가가 갈리기 힘들 정도로 박 대통령이 '완전한 실정'을 했다는 점도 이번 집회가 절대다수 시민들의 지지를 얻은 이유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습니다.

예를 들어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 때는 광우병에 대한 당시 일부 언론의 보도를 얼마나 신뢰하는지, 이 병을 얼마나 위험하게 받아들이는지, 또 정치적 성향이 어떤 쪽인지에 따라 사안에 대한 의견이 다양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누구나 큰 틀에서 '박근혜 퇴진'이라는 한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광우병 집회는 네티즌과 중고생 등 젊은층이 주축이 됐지만, 이번 집회에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거리로 몰려나오는 양상입니다. 즉, 박 대통령이 역설적으로 국민 대통합을 이뤄냈다는 얘기입니다.

노진철 경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번 이슈는 정부나 검찰이 뭘 감추려고 한다든가 이런 내용이 아니라 문제가 명확히 드러난 상황"이라면서 "명확하다 보니 '박근혜 퇴진'이라는 목표도 분명하다"고 봤습니다.

안진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심지어 박 대통령을 지지했던 사람들까지도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본다. 집회가 100%에 가까운 공감을 얻고 있다"면서 "광우병 때와 달리 이번에는 민주주의 국가의 기본과 관련한 문제여서 폭발력이 훨씬 큰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 '젠틀'했던 시민들…폭력 아닌 촛불과 풍자 선택해

거리로 나온 시민들은 놀라울 정도로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줬습니다. 집회는 차분하면서도 즐거운 '축제'와 같은 분위기 속에서 치러졌습니다.

일부 시민이 과격한 행동을 할 때면 다른 시민들이 자제를 촉구하는 등 극한 상황을 스스로 차단하려는 분위기가 강했습니다. 험악한 구호보다는 박 대통령과 최씨를 풍자하는 피켓들이 훨씬 많은 호응을 얻었습니다. 참가자들은 바닥에 버려진 쓰레기를 치우는 모습도 보여줬습니다.

과거처럼 집회가 폭력적인 양상으로 흐르지 않은 가장 큰 이유 역시 다양한 계층의 시민이 참석했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습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과거 집회에는 특정 단체나 노조원만 참여했지만, 이번에는 다양한 연령에 가족 단위 참가자들도 있었다"면서 "이 때문에 훨씬 다양한 방법과 수단으로 의사를 표현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누군가는 행진, 누군가는 구호 외치기, 또 누군가는 문화 공연을 즐기는 식으로 목소리를 내는 방식이 다양해지면서 폭력적인 분위기는 희석돼버렸다는 것입니다.

박 대통령에 대한 헌법적·도덕적 우위를 유지하려면 폭력집회를 해서는 안 된다고 시민들의 집단지성이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도 있었습니다.

곽 교수는 "원래 사람이 모이면 훨씬 과격해지는 게 자연스러운 군중심리인데 100만명의 시민들이 사전에 계획 없이도 끝까지 평화적인 집회를 추구하는 모습을 보였다"면서 "이는 서로 단합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인식을 다들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교수는 "정권이 반헌법적인 행태를 보인 가운데 시민들이 불법행위를 하면 순수성이 왜곡되고 동력이 약해질 것이라는 데에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다"면서 "'우리는 합법적이다. 그래서 더 우월하다'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 "비폭력" 구호 외치고 "여러분 이해합니다" 방송도…경찰도 유연하게 대응

경찰도 유연한 대응으로 극단적인 상황을 막으려 노력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집회 막판 경찰의 '최후 저지선'이던 내자동로터리에서는 장시간 대치 상황이 이어졌습니다. 청와대 쪽으로 전진하려는 시민들과 경력이 서로 맞서 몸싸움을 벌였습니다.

경찰은 검거나 해산 시도는 최대한 자제했습니다. '비폭력' 구호를 외치며 시민들에게 준법을 호소했습니다.

계속된 압박에 탈진해 쓰러지는 의경이 속출하자 경찰은 무리하게 버티지 않고 병력을 후방으로 빼기도 했습니다.

경찰은 1차 촛불집회 때는 "나라를 사랑하는 여러분의 마음을 이해합니다"라며 시위대를 설득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이 같은 경찰의 대응 방식은 우선 '명분'이 시민들에게 있다는 점을 인정하기 때문으로 풀이됩니다.

이 교수는 "집회에 나온 시민들에게 명분이 있다는 점을 공무원들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라면서 "과거처럼 물리력을 사용하기에는 정당성이 취약하다는 점을 경찰 스스로 인지하기 때문에 집회에 대응하는 방식이 달라졌다"고 말했습니다.

노 교수도 "과거 폭력적인 양상을 보인 집회를 보면 경찰이 강하게 방어해 폭력을 유도했다"면서 "지금은 정부가 신뢰를 상실해 경찰이 시위를 막을 명분을 갖고 있지 않아 과거처럼 과하게 밀어붙일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안 처장은 "그냥 해산시키지 않고 23명을 연행한 점은 유감"이라면서도 "어찌 됐건 경찰이 평소와 달리 굉장히 합리적으로 대응했다"고 평가했습니다.

◇ "평화로운 시민들·경찰도 잘 대처…이제 정치권만 잘하면 된다"

전문가들은 기적과 같은 평화로운 집회로 역사의 한 장면을 연출한 시민들에게 이제 정치권이 화답할 때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이번 사태로 인한 정국 난맥상을 풀어내야 하는 것은 기본이며, 나아가 이번 집회에서 나타난 대로 한 단계 성숙한 시민의식에 걸맞은 정치를 펼쳐야 한다고 주문했습니다.

곽 교수는 "국민이 매우 성숙해져 버렸다. 국민은 행복과 신뢰, 배려가 있는 국가를 만들 준비가 됐다"면서 "이제 정치인들이 이를 간과하거나 무시하면 안 되고 국민의 수준에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노 교수는 "시민은 항의할 수는 있어도 직접 시스템을 만들어내지는 못한다"면서 "우리가 기대하는 변화와 개혁을 정치권에서 해 줘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어 "박 대통령과 최씨의 개인 문제로 끝나서는 안 되며 대통령이 국정을 농단해도 국민이 알지 못하는 집중화된 권력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면서 "그러나 현 정치권은 이를 논의할 능력이 안 되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MBN 뉴스센터 / mbnreporter01@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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