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디로 ‘패닉이다. 한국 경제 관료와 전문가들은 설마했던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이 현실화하자 우리 경제에 ‘퍼펙트 스톰이 불어닥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미 수출·소비·투자·고용의 ‘쿼드러플 악재에 빠진 데 더해 트럼프 집권 이후 보호무역 강화와 환율 불확실성까지 커지면서 한국 경제는 앞으로 수년 간 그야말로 살얼음판을 걸을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공약의 핵심은 자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다. 집권 이후 전방위적인 보호무역주의 강화 정책이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가장 큰 변화는 무역 분야에서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대선 과정에서 한국과 맺은 자유무역협정(FTA)은 물론 북미 자유무역협정(NAFTA)을 재검토하고, 환태평양동반자협정(TPP)을 전면 철회해 미국의 이익을 우선할 수 있도록 무역질서를 개편하겠다고 밝혔다.
윤우진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미 FTA 철회나 재협상 같은 극단적인 조치가 아니더라도 반덤핑이나 상계관세 같은 무역제한조치가 한층 강화될 전망”이라고 밝혔다. 김원기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도 슈퍼 301조 같이 의회 동의 없이 할 수 있는 행정명령을 통해 세이프가드를 발동하거나 높은 세율의 상계관세를 매길 수 있다”며 대미 수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만큼 정부 차원의 대응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트럼프는 또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지침에 따르지 않고 중국과 멕시코 등에 관세장벽을 세우겠다고 했다. 중국에 대해서는 집권 이후 환율조작국으로 선포하는 한편 지식재산권 침해 인정, 수출보조금 중단을 요구할 것을 예고했다. 미국과 중국 간 관계가 악화되면 중국을 거쳐 미국에 수출하는 한국의 중간재 수출이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중국마저 자국 산업보호에 나설 경우 글로벌 교역과 소비, 투자 등이 크게 위축되면서 세계 경제가 장기침체 국면에 빠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달러 약세 용인도 결국 글로벌 환율전쟁을 촉발해 중국 경제에 타격이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트럼프가 중국과 통상마찰이나 무역전쟁 내지는 환율 문제를 계속 제기하고 있어 그 유탄을 한국이 맞을 가능성이 있다”며 미·중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 빠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하지만 이같은 극단적인 조치는 미국 의회의 반대에 직면할 가능성과 .함께 세계 경제에 미치는 파장이 워낙 크기 때문에 현실화하기 힘들다는 분석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저성장 가능성과 공격적인 통상정책이 국내 주력산업의 대미 수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 확실한 만큼 대응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환율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점도 한국 경제에 큰 부담이다. 트럼프가 ‘환율 조작국(심층분석대상국) 카드를 무기로 대미 수출규모가 큰 나라들에게 환율 절상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환율조작국에 지정되면 다양한 경로의 무역제재를 받게된다. 한국은 이미 환율조작국 지정 요건 3개 가운데 2개에 해당돼 ‘관찰대상국으로 지정돼 있다. 또 주한미군 주둔용 방위비 분담을 늘리고, 대북 강경 노선을 걸을 때도 환율 불안을 야기할 수 있다. 환율불안은 외국인 자본 유출로 이어질 수 있는 악재다. 박미정 국제금융센터 연구원은 동맹국에 대한 안보비용 지불 요구 등으로 해당국들의 재정부담이 늘어나고, 안보정책 변화의 소지가 있기 때문에 신흥국 자본시장에서 외국자본이 유출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 경제 정책 불확실성이 가중돼 있기 때문에 당장 다음달로 예상되는 미국 금리 인상에 따른 글로벌 충격파도 더욱 커질 전망이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원화를 비롯해 중국 위안화, 멕시코 페소화 등 신흥국 통화가 약세를 보일 전망”이라며 미국과 중국의 통상마찰로 주요국 간 갈등과 환율 변동성이 확대되면서 국제 교역이 위축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산업통상자원부는 9일 한미 통상현안 긴급점검회의를 갖고 대미 통상환경 불확실성이 증대될 것이라는데 인식을 같이 하고, 향후 미국 동향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대응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관계부처 회의를 수시로 개최할 것”이라고 밝혔다.
[조시영 기자 / 고재만 기자 / 정의현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