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이 한치 앞을 분간하기 어려운 혼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세 차례 TV토론에 이어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의 성추문이 폭로된 이후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의 압승으로 굳어지는 듯했으나 FBI 이메일 재수사 발표와 오바마케어 보험료 인상 통보 등 돌발변수가 발생하면서 판세는 ‘오리무중 상태다.
선거인단 270명 이상을 확보하는 후보가 백악관의 주인이 되는 미국 선거제도 하에서 힐러리와 트럼프 어느 쪽도 현재까지 270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하지 못한 상황이다. 따라서 올해 대선의 승부처는 최대 경합지로 꼽히는 동부 5개 주로 좁혀졌다. 남단 플로리다부터 노스캐롤라이나 오하이오 펜실베니아를 거쳐 뉴햄프셔까지다.
플로리다는 트럼프가 지난 2~3일 이틀에 걸쳐 3개 도시를 돌며 유세를 하고 대선 하루 전인 오는 7일 다시 유세를 위해 현장을 찾는 지역이다. 힐러리 역시 지난 2일 플로리다 탬파에서 유세했으며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3일에 이어 6일 다시 찾는 곳이 플로리다다. 이는 플로리다가 그만큼 ‘피말리는 접전지라는 것을 방증한다.
플로리다는 선거인단 55명이 배정된 민주당 성향의 캘리포니아와 선거인단 38명의 공화당 성향 텍사스에 이어 선거인단 29명이 배정된 초대형 경합주여서 대선 승리를 위해서는 반드시 이겨야 하는 곳이다. 힐러리가 지난 달까지 1~2%포인트 앞섰다가 이메일 재수사 방침이 공개되면서 트럼프가 4%까지 격차를 벌였으나 오바마 대통령의 지원유세로 다시 힐러리가 역전한 접전지다.
노스캐롤라이나는 2008년 대선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승리했으나 2012년 중간선거에서는 밋 롬니에게 오바마가 패배한 지역이다. 남북전쟁 당시 남부군의 요충지로 공화당 성향이 강하지만 흑인 인구비율이 23.5%로 높은 지역이어서 미국의 주요 선거 때마다 경합지로 분류되는 곳이다. 배정된 선거인단이 15명으로 적지 않다.
지난달 말과 이달 초에 걸쳐 퀴니피액대학과 CBS뉴스 여론조사에서는 힐러리가 3%포인트 앞섰으나 레밍턴리서치와 서베이USA 조사에서는 트럼프가 각각 2%포인트와 7%포인트 앞선 것으로 나타나 혼전이 지속되고 있다.
오하이오와 펜실베니아는 쇠락한 공장지대를 일컫는 ‘러스트벨트의 중심지역이다. 백인 노동자 비율이 높아 경기여건과 경제정책에 민감한 유권자들 거주 비율이 높다. 백인은 트럼프의 핵심 지지층이고 노조는 전통적으로 민주당을 지지해왔기 때문에 힐러리와 트럼프가 팽팽한 대결을 펼칠 수밖에 없는 곳이다.
특히 FTA(자유무역협정)을 놓고 힐러리와 트럼프가 상이한 입장을 보이면서 표심이 요동치기도 했다. 무엇보다 오하이오와 펜실베니아 표심은 인근 미시건 위스콘신 미네소타 등 5대호 연안 지역 표심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선거인단 수와 무관하게 양쪽 캠프에서 각별히 신경쓰는 곳이다.
올해 공화당 전당대회를 오하이오에서, 민주당 전당대회는 펜실베니아에서 개최한 것은 이들의 지역 표심을 잡으려는 전략에서 비롯됐다.
뉴햄프셔는 선거인단이 4명에 불과하지만 메인과 버몬트 등 미국 동북부 표심을 좌우하는 지역이어서 소홀히할 수 없다.
인종이나 학력을 분석한 측면에서도 이 경합주들은 힐러리와 트럼프의 표심이 한쪽으로 쏠리지 않고 엎치락뒤치락 부딪힌다. 예를 들어 펜실베니아의 경우 힐러리 지지가 우세한 대졸 이상 백인유권자가 44.2%로 대졸미만 백인의 33%에 비해 높지만, 유색인종 비율은 22.8%여서 미국 전체(29.8%)에 비해 낮아 인종적으론 트럼프가 유리한 편이다.
블룸버그가 지난 3일 조사에서 힐러리는 백인 대졸자 지지에서 트럼프를 12.3% 앞서가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한 바 있듯이 학력이나 인종별로 두 후보 지지율이 크게 차이나는 것도 관전포인트다.
지난 달까지만 해도 힐러리가 확보한 선거인단 수가 ‘매직넘버인 270명을 넘어섰다고 보도해 온 CNN이 5일(현지시간) 이를 268명으로 낮춰 잡았다. 트럼프가 확보한 선거인단 수는 204명으로 예상했다. 경합주 판세에 따라 얼마든지 뒤집힐 수 있다는 얘기다.
미국의 정치전문 인터넷매체인 리얼클리어폴리틱스는 힐러리가 확보한 선거인단을 208명으로 집계했다. 트럼프는 164명으로 분석했다. 지난 주까지 리얼클리어폴리틱스는 힐러리 선거인단을 263명으로 집계했었다. 힐러리가 우세했던 일부 지역가 경합지로 재분류되면서 일어난 현상이다.
전국 지지율에서도 힐러리와 트럼프는 최근 일주일동안 역전에 재역전을 거듭하는 등 혼전양상을 띄고 있다.
매일 전국 여론 추적조사를 진행 중인 워싱턴포스트(WP)와 ABC방송 공동 조사에 따르면 FBI 이메일 재수사 방침이 전해진 직후인 지난 달 29일(현지시간) 힐러리가 2%포인트 우세했다가 30일에는 1%포인트 차이로 좁혀지고 이달 1일에는 트럼프가 1%포인트 역전했다. 2일에는 다시 같은 지지율을 기록했다가 3일 2%포인트 힐러리 우세, 4일 3%포인트 힐러리 우세로 변모했다.
[워싱턴 = 이진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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