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디플레이션에 손든 일본은행 총재의 굴욕
입력 2016-11-01 15:34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BOJ) 총재가 임기 중 디플레이션에서 탈출하겠다는 목표를 사실상 포기했다. 취임 직후인 2013년 4월 대규모 양적완화를 단행한 후 ‘2년 내 물가 2% 달성을 공언했으나 5년 임기 내에도 목표 달성이 어렵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BOJ의 신뢰에 큰 타격이 불가피하게 됐다.
BOJ는 1일 경제·물가정세전망 보고서를 통해 물가상승률 2% 달성시기를 당초 ‘2017년도(2017년 4월~2018년 3월) 중에서 ‘2018년도(2018년 4월~2019년 3월)로 늦추기로 했다. 아울러 올해 물가 전망치도 지난 7월 0.1%에서 -0.1%로 낮췄고, 2017년도 전망치도 1.7%에서 1.5%로 하향조정했다. BOJ가 디플레 탈출 기준으로 삼고 있는 물가 2% 달성시기를 2018년도로 늦추면서 구로다 총재 임기 내 디플레 탈출은 어렵게 됐다. 구로다 총재 임기는 2018년 4월까지다.
아베노믹스 버팀목을 자처해왔던 구로다 총재가 전무후무한 대담한 양적완화에도 불구하고 임기 내 물가 2% 달성을 사실상 포기함에 따라 아베노믹스의 신뢰 추락 우려도 커지고 있다. 구로다 총재는 2014년 4월 연 60조~70조엔의 대규모 양적완화를 단행하며 ‘2년 내 물가 2% 달성을 내걸었다. 급격한 엔저를 통한 수입물가 상승 등으로 초기에는 구로다 총재의 의도대로 진행되는 듯했지만 유가하락과 경기불안에 따른 국내 소비 부진과 함께 목표달성 시기는 차일피일 미뤄져왔다.
물가 2% 목표 달성시기를 늦춘 것은 올해 들어서만 벌써 3번째다. 당초 ‘2016년도 후반쯤이었던 목표달성 시기를 올해 1월에 ‘2017년도 전반쯤으로 늦춘 데 이어 4월에는 ‘2017년도 중으로 미뤘다. 그런데 불과 반 년만에 또다시 ‘2018년도로 늦추면서 BOJ의 신뢰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물가목표 달성시기를 늦춘 것은 지난 9월 물가상승률이 -0.5%로 7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등 소비가 좀처럼 살아날 조짐이 없는 점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현 추세가 지속되면 올해 물가는 4년 만에 마이너스에 빠져들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BOJ의 정책수단이 한계에 다다르고 있어 분위기를 반전시킬 카드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이날 BOJ는 금융정책결정회의를 통해 기존 -0.1%의 마이너스 금리를 유지하고, 종래의 대규모 양적완화를 지속하기로 결정했다. 시장에서는 연내에 BOJ가 추가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낮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BOJ의 국채 매입량이 한계에 이르고 있고, 마이너스 금리도 먹히지 않는 분위기라 선뜻 추가 조치를 꺼내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구로다 총재가 임기 내 디플레 탈출 목표를 사실상 포기하면서 아베노믹스도 큰 타격이 불가피하게 됐다. 아베노믹스는 통화·재정·성장전략 등 3개의 화살로 이뤄져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BOJ의 금융완화가 이끌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2차 정권 들어 디플레 탈출을 내건 아베노믹스를 무기로 아베 총리의 장기집권 길을 닦아왔던 점을 감안할 때, 물가 2% 달성목표의 잇단 연기는 아베 총리 장기집권의 최대 복병으로 등장할 가능성도 있다는 분석이다.
[도쿄 = 황형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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