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을 할수록 쭉 길어지는 ‘피노키오의 코.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을 낳고 어느 순간 자신도 제어할 수 없는 수준의 거짓말 천지에 빠지고 만다. 그 과학적 근거가 밝혀졌다. 거짓말은 하면 할수록 늘고 갈수록 그 범위와 대상도 더 커진다는 게 뇌과학적 연구 결과로 입증된 것이다.
26일 학술지 ‘네이처 신경과학에는 탤리 샤롯 영국 런던대 심리학과 교수팀의 실험 결과 논문이 게재됐다. 인간의 뇌에는 부정직한 행동을 하면 이를 꺼리게 하는 일종의 제동장치 역할을 하는 부위가 있는데 거짓말을 반복할 수록 그 제동력이 줄어든다는 점이 뇌 자기공명 영상(fMRI) 촬영을 통해 확인됐다.
연구팀은 18~65세 실험 대상자 80명에게 ‘거짓말 보상 게임을 실험했다. 일정 거짓말을 반복하게 하고 그에 따른 득실을 따지게 한 것이다. 그 결과 실험자들의 뇌 측두엽 안쪽에 있는 편도체가 거짓말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원래 편도체는 정서적인 정보를 통합 처리하는 일에 관여해 공포감이나 불쾌감 등을 인지하고 그에 대한 대응을 지시하는 역할을 한다.
실험자들이 초반에 하찮은 거짓말이나 부정직한 행동을 하면 처음엔 이 편도체 활동이 급증하는 것으로 뇌영상 촬영 결과 밝혀졌다. 하찮더라도 거짓말을 처음 하게 되면 상대방에게 미안하거나 자기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감정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것이 다음 거짓말을 하는 데 망설이게끔 한다. 일종의 제동을 거는 셈이다.
하지만 그 다음에 다시 거짓말을 거듭할수록 편도체 활동량은 서서히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거짓말을 제동할 힘이 줄어들기 때문에 이후엔 더 큰 거짓말을 하더라도 스스로 부끄러운 감정을 모르는 것이다.
연구팀은 거짓말과 그에 따른 보상 게임을 각자에게 60회가량 실시했다. 실험을 통해 자신에겐 득이 되고 상대방에겐 손해일 때보다 두 사람 모두에게 득이 될 때 거짓말을 하는 폭이 훨씬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서로 득이 된다고 믿는 거짓말을 전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편도체 활동이 점차 줄어드는 상황에선 상대방에게 손해가 가더라도 거짓말을 쉽게 제어하지 못한다는 게 연구진 결론이다.
다만 그 편도체 활동량을 줄어들지 않고 다시금 끌어올려 거짓말을 더 제어할 수 있는 가능성도 열려 있다. 샤롯 교수는 제멋대로 말하는 정치인이나 부패한 금융업자, 연구 결과를 조작하는 과학자, 불륜을 저지르는 배우자 등이 왜 엄청난 거짓말을 서슴없이 하는지 이번 실험을 통해 과학적으로 입증됐다”며 거짓말을 확대하지 않도록 하는 다른 요인은 없는지 추가 연구를 통해 밝혀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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