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24일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개헌을 본격적으로 제안한 것을 놓고 각계 전문가들은 청와대·대선 후보·정치권이 빠지고 이해관계가 없는 인사들이 개헌 논의의 주체가 돼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동시에 국민이 원하는 개헌 논의가 이뤄져야 하는데 개헌을 원하는 국민이 많다고 장담할 수 없는 만큼 임기 내 개헌을 이루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드러냈다.
양승함 전 연세대 교수는 24일 매일경제와의 통화에서 개헌 찬반에 관계없이 대통령이 이야기를 꺼냈으니 개헌 논의가 시작될 것이다”며 개헌 논의에서는 이해관계가 걸린 청와대, 유력 대선 후보, 정치권은 빠지고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들이 논의의 주체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적어도 개헌 문제만큼은 범국민적 대표성을 지니는 위원회를 만들고 거기에서 논의를 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 전 교수는 정부 기관이나 특정 대선 후보 집단이 관여해 개헌이 이뤄지면 헌법이 ‘누더기가 된다”며 정치권력 중심의 포괄적인 개헌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여야 원외유력인사가 포함된 ‘나라살리는 헌법개정 국민주권회의도 이날 국민이 참여하고 주도하는 개헌이 돼야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주권회의에 참여한 이상수 전 노동부 장관, 이각범 전 청와대 정책기획수석, 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 등은 이날 국회 정론관에서 회견을 열고 뒤늦게나마 국민의 여망을 받아들여 헌법을 개정하겠다는 박 대통령의 결단을 환영한다”며 이번 개헌만은 과거와 같은 정치권만의 개헌, 밀실개헌을 뛰어넘어 주권자인 국민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국민의 의사가 담기는 개헌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또 박 대통령이 임기 내 헌법 개정을 완수할 것”이라며 시기를 못박은 언급하며 임기내 개헌이 쉽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개헌 논의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개헌 시기를 못박는 것은 말이 안된다”며 박 대통령이 ‘임기 내에 개헌을 할 것이라고 했는데 이러면 원포인트 개헌 밖에 되지 않는다. 1987년과 달라질 것이 없다”고 주장했다. 김민전 경희대 교수 역시 집권 기간 내라는 시기를 한정했는데 그 안에서는 ‘원포인트 개헌 이상이 어렵다”며 국민 기본권 등을 논의하려면 그런 제한없이 충분한 논의를 해야하지만 결국 정치권력의 문제다보니 (기본권 논의가) 중요하게 다뤄질 가능성이 낮다”고 지적했다.
차기 대선 주자 후보군이 추려졌다는 점 역시 개헌 논의를 어렵게 한다는 분석이다. 김형준 교수는 생산적인 개헌 논의가 진행돼야 하는데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민주당) 대표,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 공동대표의 반대가 뻔하다”며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개헌에 대한 입장이 없다. 개헌은 힘들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민전 교수 역시 개헌을 하자고 하는 대선주자들도 방식에 대해서는 생각이 많이 다르다”며 합의가 이뤄지기 어려우니 대선을 치르기 이전에 개헌이 이뤄지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들이 지금 개헌을 진정으로 원하느냐는 지적도 나왔다. 허영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는 매일경제와의 통화에서 나는 개헌을 하자는 국민이 별로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지금 국민들은 개헌을 원하는게 아니고 불거진 여러가지 의혹들을 법에 따라 엄정하게 처리하고 먹고 사는 문제부터 해결해달라고 한다”며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미국 대선 결과와 북한의 움직임을 검토해 경제부터 살리는 것이지, 임기 말에 갑자기 개헌을 이야기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다만 허 교수는 ‘5년 단임제가 적절치 않다는 박 대통령의 인식에는 공감을 표했다. 허 교수는 현행 제도에는 (정권을) 심판할 기회가 없다. 5년 단임제는 시대정신과 맞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면서도 그러나 지금 개헌을 논의할 때는 아니다”고 개헌 추진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법조계에서는 정치권이 이원집정부제·대통령 연임제 등 권력구조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비판을 쏟아냈다. 정극원 한국헌법학회장은 사실 국민 기본권과 관련된 부분은 꼭 개헌이 아니어도 헌법재판소에서 내용을 확장하고 발전시켜뒀다”며 개헌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도 정치권에만 있고 국민들, 그리고 학계에서는 별로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현행 5년 단임제가 이미 수명이 다한만큼 개헌이 시급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석연 전 법제처장은 현행 5년 단임제를 30년째 시행하는데 이 제도는 사실상 후퇴한 제도다”며 정략적으로 이용한다고 볼 수 있겠지만 많은 국민들이 개헌을 원한다. 권력구조에 대한 대대적 수술도 필요하지만 통일과 관련된 잠정적 조항도 반드시 들어가야 하고, 우리 헌법에 전혀 나와있지 않은 현대형 기본권에 대한 내용도 시급하게 손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석환 기자 / 김효성 기자 / 김윤진 기자 / 추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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