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태풍피해 복구 시급한 대안마을…400명 고립, 물·전기 끊긴 '극한상황'
입력 2016-10-11 20:56 
태풍피해 복구/사진=연합뉴스
태풍피해 복구 시급한 대안마을…400명 고립, 물·전기 끊긴 '극한상황'


지난 5일 태풍 '차바'가 울산 전역을 할퀴고 간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북구 대안마을 주민 400여 명은 아직도 고립돼 있습니다.

북구의 동쪽 끝 산자락에 있는 이 마을은 태풍으로 호우가 내리면서 하천이 범람해 진입도로가 완전히 파손됐습니다.

이 때문에 마을로 가려면 1㎞ 넘게 떨어져 있는 도로 입구에 차를 세워두고 무너진 도로를 따라 걸어가거나, 차를 타고 멀고 험한 맞은편 산 길로 우회해야 합니다.

주민 통행로 확보 등 기본적인 복구와 지원이 이뤄지긴 했지만, 물에 잠겨 쓰러진 벼는 복구의 손길이 못 미쳐 방치됐고, 집 안은 아직도 흙이 가득해 일상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엎친 데 덮쳐 10일 밤에는 가까운 경주에서 규모 3.3의 지진까지 발생해 주민들은 불안과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마을 진입로는 11일에도 콘크리트와 아스팔트가 조각난 채 토사에 뒤덮혀 있었습니다.

이리저리 경사가 진 콘크리트와 아스팔트 위를 곡예 하듯 힘겹게 걸어 도착한 대안마을에는 수마가 할퀴고 간 흔적이 역력했습니다.

포크레인과 덤프트럭이 임시 도로를 부지런히 오가며 하천 주변 복구에 나서고 있었지만 부서진 도로까지 복구의 손길이 미치지 못했습니다.

도로 옆 산은 폭격을 맞은 것처럼 산사태가 심했다. 산허리에서부터 흙이 무너져 내려 온갖 바위와 돌이 산 아래에 널브러져 있었습니다.

하천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작은 물줄기가 잔잔하게 흐르고 있었지만, 주변 수풀·잡목이 진흙 덩어리와 이리저리 뭉쳐져 나뒹굴고 있어 수마가 준 상처의 깊이를 짐작하게 했습니다.

작은 논에 심어진 벼들은 낱알이 채 무르익기도 전에 물에 잠겨 모두 옆으로 누워버렸습니다.

마을 어귀로 들어서자 골목 앞에 버려진 흙 묻은 가재도구들이 산처럼 쌓여 있는 게 보였습니다.

경운기 등 각종 농기계는 흙투성이가 된 채 방치돼 있었습니다.

하천에서 멀리 떨어져 산에 가까운 몇몇 집을 제외하고는 주민 대부분 침수 피해를 입었습니다.

태풍이 물러가고 며칠 동안은 물도 끓기고 전기도 들어오지 않아 주민들은 씻지도 못하고 암흑 속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대안마을에는 전체 120여 가구에 400여 명이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민 대부분 고령자여서 스스로 피해를 복구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고령자 홀로 사는 집은 방에 쌓인 흙을 치우는 것도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이 마을에 사는 권선례(85) 할머니는 태풍이 온 날만 생각하면 아직도 아찔합니다.

폭우로 삽시간에 불어난 하천이 논을 덮치더니 누런 흙물이 집까지 몰려들었습니다.

당시 집 안에 피신해 있던 권 할머니는 허리까지 물이 차올랐지만 온통 물바다에서 대피하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굴러야 했습니다.

권 할머니는 "이러다 정말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다행히 딸의 연락을 받은 마을 주민이 할머니를 데리러 와서 무사히 높은 지대로 피할 수 있었지만, 놀란 가슴은 며칠이 지나도 진정되지 않았습니다.

권 할머니는 "하천이 얼마나 불어났는지 마을 가장 위쪽에 있는 축사에서 소들이 떠내려오는 걸 봤다"며 "이렇게 살아난 것만으로도 다행이다"고 말했습니다.

할머니의 집은 엉망이 됐습니다.

온통 흙 범벅이고 몇 마지기나 되는 논은 전부 물에 잠겼습니다.

집 안의 장독은 다 깨져 끼니를 해결하기에도 쉽지 않습니다.

주민 안해선(63·여)씨의 집은 물에 잠겼을 뿐만 아니라 산사태가 일어나는 바람에 집 벽이 통째로 무너졌습니다.

당시 집에 사람이 없어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집이 그야말로 초토화돼 도저히 살 수 없게 됐습니다.

안씨는 "지금은 시내에 있는 작은아들 집에 가서 잠을 자고 있다"며 "태풍이 올 때 집에 없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죽었을지도 모른다"며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마을 텃밭에 쪼그려 앉아 있던 한 할머니는 고구마를 보이며 "물에 다 젖어서 썩어버렸다"며 허탈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집 마당에 쌓인 잡목과 쓰레기를 쓸어내던 주민은 "진입도로가 아직 복구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마을은 여전히 고립된 상황"이라며 "먹을 것을 가지고 오기도 쉽지 않아 집에 조금 남아 있는 쌀로 대충 끼니를 때우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10일 밤 경주에서 발생한 규모 3.3의 지진도 주민들의 가슴을 철렁하게 만들었습니다.

한 마을 주민은 "잠을 자고 있는데 흔들리는 느낌이 들어 놀라서 깼다"면서 "태풍으로 이렇게 피해가 났는데 이 와중에 또 큰 지진이 오지 않을까 두렵다"며 걱정했습니다.

북구는 지난 5일 태풍이 물러가자마자 대안마을에 생수와 컵라면, 즉석밥 등을 매일 공급하고 있습니다.

또 대안마을을 비롯한 강동동 전역에 공무원, 군부대, 자생단체 등 700여 명이 투입돼 복구 작업을 벌였습니다.

하지만 끊어진 도로는 빨라도 이달 말은 되어야 복구가 완료될 전망입니다.

북구 관계자는 "침수된 집마다 공무원과 자원봉사자들을 배정해 흙을 퍼내는 등 복구 지원을 하고 있다"며 "대안마을 주민이 다시 예전처럼 일상생활을 할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MBN 뉴스센터 / mbnreporter01@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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