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시 최대 큰손인 국민연금이 올 들어 주식 투자전략을 개별 종목 중심인 액티브(Active)에서 코스피200, 코스닥150 등 인덱스 중심 패시브(Passive)로 전환하고 중소형주 대량 매도에 나서면서 거래소 소형주와 코스닥 시장 소외가 심화되고 있다.
7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 들어 삼성전자 네이버 등의 약진에 코스피 지수는 7.6% 상승했지만 코스닥 지수 상승률은 1%에 그쳤다. 전세계적 유동성 랠리가 전개되면서 홍콩H(6.8%) 미국 나스닥(8.2%) 중국 항셍(12.3%) 등 해외 증시가 강세를 보였지만 코스닥 상승률은 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미국 금리 인상 가능성 제기에 신성장주 주가 변동성이 높아진 탓도 있지만 국민연금 전략 변화로 기관투자가들이 대형주를 사들이고 중소형주를 내다판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다.
올 초 국민연금은 수익률 제고를 위해 주식 투자 전략을 개별 종목 중심에서 시장 등락을 따라가는 패시브로 전환한다고 밝혔다. 지난 6월에는 자금을 위탁하는 운용사들에게 유형별로 순수주식형과 장기투자형, 대형주형은 벤치마크 지수 50% 이상을, 사회책임투자와 가치주형은 60% 이상, 중소형주는 20% 이상 복제하라는 새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그간 중소형 성장주 발굴에 주력했던 펀드매니저들은 국민연금의 가이드라인을 맞추기 위해 중소형주 비중을 줄이고 대형주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연말까지 벤치마크 지수 비율을 맞추기 위해 ‘울며 겨자먹기로 지난해 많이 담았던 제약 바이오나 화장품 같은 중소형주를 내다팔고 있다”고 말했다.
올 들어 지난 8월말까지 국민연금은 거래소 소형주 968억원어치, 코스닥 주식 3615억원어치를 내다팔았다.
국민연금 뿐만 아니라 중소형주 시장 수급 악화를 예상한 다른 연기금과 운용사들도 보유 주식을 대거 내다팔고 있다.
지난 2007년 이후 10년간 코스닥 시장을 순매수하던 연기금은 올 들어 처음 매도세로 돌아섰다. 올 들어 지난 6일까지 코스닥 시장에서 연기금 매도 규모는 4430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연기금은 코스닥 시장에서 7000억원 이상 주식을 순매수했다.
운용사들도 국내 주식형 펀드 설정액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삼성전자 독주 장세가 펼쳐지자 삼성전자를 추가로 담기 위해 코스닥을 비롯한 중소형주를 대거 매도하고 있다. 국내 기관이 삼성전자 지분을 1%포인트 늘릴리면 중소형주를 무려 2조원어치 이상 내다팔아야 한다.
연기금 투신 등 기관 투자가들의 대규모 매도세에 중소형주 주가는 약세를 보이고 있다. 코스피가 박스권 상단에 도달하자 개인투자자들이 펀드에 넣었던 자금까지 빼내기 시작하면서 중소형주 펀드 수익률도 악화됐다. 올 들어 국내 중소형주 펀드 평균 수익률은 -7.04%로 액티브 주식형 펀드 통틀어 꼴찌를 기록했다. 지난해까지 2년 새 중소형주 펀드로 2조원 가까운 거액이 순유입됐으나 올 들어 2600억원이 빠져나갔다.
중소형주 부진은 IPO 시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중소형주 활황이었던 지난해 상반기 코스닥시장에서는 43건의 IPO가 이루어졌으나 올 상반기 IPO 건수는 반 토막 난 24건에 불과했다.
국민연금이 대형주 중심으로 구성돼 있는 인덱스 위주의 투자 패턴으로 바꾼 것은 성장잠재력이 높은 개별 종목을 발굴해 투자하던 옛 투자 방식이 별 효과를 내지 못했다는 판단에서다. 국민연금은 국내 주식에서 2014년 -5.5%, 지난해 1.3%의 저조한 성과를 기록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안정적 운용을 위해 인덱스 투자를 늘리는 것도 나름 일리가 있다”면서도 다만 코스피 지수가 박스권에 갇힌 상황에서 인덱스 투자로 큰 수익을 벌기 어려운 만큼 경쟁력 있는 중소기업 발굴을 통해 수익률 상승을 꾀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의 코스닥, 중소형주 투자비율은 다른 글로벌 연기금에 비해서도 현저히 떨어지는 수준이다. 지난 연말 기준 코스닥 투자금액은 3조6000억원으로 전체 주식 투자액 95조원 대비 4%에도 못 미친다.
[오수현 기자 / 김혜순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