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김영란법 시행 첫 주말…매출 곤두박질에 화훼농가 '울상'
입력 2016-10-03 09:15 
김영란법 시행 첫 주말/사진=MBN
김영란법 시행 첫 주말…매출 곤두박질에 화훼농가 '울상'



"꽃이 잘 크면 뭐합니까? 찾는 사람이 없는데..."

충북 음성군 대소면에서 만난 화훼농 박한흥(81)씨는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 등에 관한 법)' 얘기를 꺼내자 금세 얼굴의 주름이 더욱 깊어졌습니다.

박씨는 23년째 이곳에서 난(蘭)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그의 1천300㎡규모 하우스 안에는 지난 1년간 공들여 키운 서양란이 가득합니다.

하지만 연보라색의 화사한 자태를 뽐내는 난들을 바라보는 박씨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어두웠습니다.


박씨는 "3달 전 1본에 5천원 하던 덴파레 품종 경매가 이달 들어서 3천500원까지 떨어졌다"며 "여든 평생 이렇게 힘이 든 적은 처음"이라고 운을 뗐습니다.

덴파레 등 3∼4종의 난을 연평균 5만여본씩 생산하던 그였지만 올해는 찾는 이가 없어 출하량이 절반으로 줄었습니다. 그러니 매출도 당연히 반 토막 났습니다.

그는 매출 감소 이유를 지난달 28일부터 시행된 '김영란법' 때문이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박씨는 "주문이 들어와 5만원 이하 가격이 찍힌 영수증을 첨부해서 배송하지만, 선물 자체가 부담스러워 반송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전했습니다.

통상 관상용 난은 재배량의 90% 이상이 관공서나 기업의 승진·인사 선물용으로 팔려 나갑니다.

'김영란법'에서도 사교나 의례 목적으로 5만원 이하의 선물 제공은 허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으려고 선물 자체를 기피하면서, 화훼농가도 직격탄을 맞은 것입니다.

현재 음성군 대소·삼성면에서 난을 재배하는 농가는 3곳입니다. '김영란법' 시행을 앞둔 6개월 사이 2곳이 문을 닫았습니다.

박씨를 제외한 나머지 농가 2곳은 내년부터 다른 작물을 키우기로 했습니다.

박씨 역시 내년 2∼4월을 제대로 넘기지 못하면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난과 같은 화훼 작물은 연초 인사철이나 학교 졸업·입학 시즌이 최대 대목으로 한해 농사의 성공 여부를 가름한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박씨는 "이런 분위기면 내년 인사철에는 1년 넘게 애써 키운 난을 모두 폐기 처분해야 할지도 모른다"며 "퇴직 후 자식에게 손 벌리지 않으려고 시작한 농사인데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느냐"고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박씨의 농장에서 약 1㎞ 떨어진 곳에서 고무나무, 금전수, 산세비에리아 등 나무 5만본을 키우는 한경표(55)씨도 사정이 비슷합니다.

그의 시설 하우스 안에는 가을 인사철을 맞아 좋은 가격에 팔려 나갔어야 할 상품들이 가득했습니다.

선물용 나무 상품 하나를 만들려면 나무 원가 외에 화분 1만원, 흙과 자갈 5천원, 리본 5천원, 배달비 1만원이 듭니다. 씨를 뿌려 출하까지는 평균 1년이 걸립니다.

그러나 김영란법 시행 이후 경조사나 개업식에서 화환이 사라지면서 한씨도 한파를 피해가지 못했습니다.

'김영란법' 시행 이후 마진율을 줄여 5만원에 훨씬 못 미치는 일명 '김영란 화분'을 내놓기도 했지만, 소용이 없다고 한씨는 하소연했습니다.

그는 "김영란법 시행 이후 소비 심리가 위축돼 음성화훼유통센터 거래량이 6개월 전보다 40%가량 떨어졌다"며 "이대로라면 화훼업계는 희망이 없다"고 토로했습니다.

결국 한씨 역시 포도나 감으로 재배 작물을 바꾸는 방안을 진지하게 고민 중이라고 전했습니다.

3일 국내 화훼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총 1조2천억원이었던 업계 매출이 올해는 8천억원 수준에 머물 것으로 추정됩니다.

'김영란법' 시행에 따라 하반기 매출이 곤두박질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화훼농협 관계자는 "소비 위축으로 국내 원예산업 근간까지 흔들리는 상황"이라며 "저렴한 가격의 꽃 소비 활성화 방안을 찾고 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MBN 뉴스센터 / mbnreporter01@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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