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한 한국콜마 회장의 ‘역사 사랑은 재계에서도 유명하다. 신입사원을 채용하거나 직원 승진 심사를 할 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합격자에 대해 가산점을 주고 있으며 지난 몇년간 이어진 ‘한국사 수능 필수과목 지정 서명운동도 주도했다.
윤 회장이 직접 사재를 털어 일본에 있는 우리 문화재를 구입한 뒤 이것을 아무 조건없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하려는 것도 이러한 ‘역사 사랑의 연장선상으로 평가된다. 한국콜마 관계자는 처음 고려불화 ‘수월관음도를 가진 일본 골동품상이 국내에서 구매자를 찾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때만 해도 ‘문화재청 같은 곳에서 사지 않겠나라는 반응이었다”며 하지만 국가 기관이 구입하려면 절차가 복잡해 시간이 오래 걸리고 중간에 개인한테 넘어가거나 최악의 경우 일본에서 구매자가 나타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직접 구매에 나서게 된 것”이라고 전했다.
윤 회장의 기증의사를 듣고 소유권은 갖고 전시와 관리만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하는 기탁을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권유하는 지인도 있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윤 회장은 그렇게 되면 나중에 이 고려불화의 가치가 높아질 것을 대비해 내가 투자를 한 것이라고 오해하지 않겠느냐”며 조건없는 영구기증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회장의 역사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학창시절부터 각별했다. 고등학교 때만 해도 역사학과에 진학해 역사 선생님이 되는 것이 꿈이었지만 고3 때 아버지를 여읜 후 5남매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경영학과에 지원했다. 농협중앙회, 대웅제약에서 최고의 샐러리맨으로 활약한 윤 회장은 1990년 국내 최초의 화장품 제조자개발생산(ODM) 전문기업 한국콜마를 창업했다. 한국콜마는 국내외 유명 브랜드의 화장품을 개발·생산하며 K뷰티를 선도하고 있다.
평소 윤 회장은 ‘사람은 세가지 거울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삼경론(三鏡論)을 강조한다. 그는 얼굴을 보는 동경(銅鏡), 마음을 보는 심경(心鏡), 그리고 또 하나가 역사를 비추어 오늘을 바라보고 미래를 준비하는 사경(史鏡)”이라며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우리 젊은이들이 역사를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 회장은 지난 8월초 숙명여대에서 열린 ‘매경CEO 특강에서 기업에서 원하는 인재란 무엇이냐”는 학생의 질문에 겸손한 사람이 무조건 최우선이고 역사의식까지 갖췄으면 더 볼 필요가 없다”고 대답하기도 했다.
윤 회장은 ‘공부하는 CEO로 유명하다. 한국사는 물론,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전반의 역사를 꿰뚫고 있어 웬만큼 역사에 조예가 깊다고 자부하는 사람들도 그와 대화를 나누면 감탄하곤 한다. 이처럼 인문학에 대한 깊은 조예도 윤 회장의 고려불화 구매와 기증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윤 회장은 아무리 기업 경영이 바빠도 틈틈이 책을 읽고 강의를 듣는다. 친분 있는 기업인들과 공부모임도 정기적으로 갖는다. 이 모임에서 다루는 주제 또한 철학, 종교, 동양고전, 미술사 등 영역이 무궁무진하다.
인문학에 탄탄한 지식을 갖췄기에 윤 회장은 처음 ‘수월관음도에 대해 들었을 때 그 가치를 누구보다 빠르게 알아차렸다. 한국콜마 관계자는 처음 이 작품의 가격이 25억원이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 주변 사람들이 모두 말도 안된다는 반응이었는데 윤 회장은 ‘이게 진짜 수월관음도라면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윤 회장은 수월관음도는 우리가 힘이 없어서, 또 우리 것의 가치를 알지 못해서 일본에 반출된 것”이라며 수월관음도 전시를 통해 많은 국민이 우리 것의 가치를 알고 역사에서 교훈을 얻는다면 내가 투자한 가치 이상을 하는 것”이라고 몇몇 지인들에게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회장은 지난 6월 ‘인문학이 경영 안으로 들어왔다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이 책은 윤 회장의 자서전이자 인문학 공부를 어떻게 경영에 접목했는지를 본인의 경험을 토대로 기술한 책이다. 이 책에서 윤 회장은 인문학은 사람에 대해 탐구하는 학문으로 한국콜마에서 말하는 인문학 정신은 협업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한국콜마의 모든 임직원들은 1년에 6권 이상 책을 읽고 독후감을 제출해야 한다. 윤 회장은 이 독후감들을 직접 읽어보고 자신의 감상을 작성자와 공유한다. 독후감을 제출하지 않으면 인사고과와 승진에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이동인 기자 / 정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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