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단독] 신입사원 절반 “황금연휴는 이직할 황금기회”
입력 2016-09-13 14:19  | 수정 2016-09-14 14:37

#올 상반기 국내 대기업 금융계열사에 취직한 신입사원 박 모씨(27)는 입사 후 처음으로 맞는 추석을 앞두고 가족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원서작성 등 취업준비에 전념하겠다”고 말했다.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기업에 들어갔지만 박씨는 어디라도 취업해야 한다는 생각에 문어발식으로 원서를 썼고 운좋게 현재 다니는 직장에 ‘덜컥 붙었지만 막상 회사에 들어와보니 업무가 적성에 맞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올해 1월 IT업계 한 중소기업에 취업한 유 모씨(26) 역시 재취업을 준비하는 신입사원이다. 그 역시 이번 추석 연휴에 고향에 내려가지 않기로 했다. 유씨는 하루 종일 취업 준비에 매진하는 다른 취업준비생들에 비해 직장인은 평소 준비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면서 (연휴기간)인적성 학원에서 특강을 듣고 스터디 모임도 꾸려서 그동안의 공백을 메울 계획”이라고 전했다.
하반기 공채 시즌이 시작된 가운데 직장을 다니면서 재취업을 준비하는 ‘취반생(취업반수생)들은 긴 연휴를 취업 준비를 위한 절호의 기회로 삼고 있다. 주요 기업들의 채용 마감일이 추석 연휴 끝에 몰려있기 때문에 이들은 누구보다 바쁜 명절을 보낼 계획이다. 취업컨설팅업계 한 관계자는 직장인들은 특히 시간이 없기 때문에 자기소개서 컨설팅을 맡기는 경우가 많다”며 연휴동안 자기소개서를 쓴 구직자들의 의뢰가 추석 직후에 몰릴 것으로 보여 대목이 예상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취업 반수생이 증가함에 따라 나타난 황금연휴 ‘신(新)풍속도다.
매일경제신문이 추석 연휴를 앞두고 취업포털 사람인과 직장인 971명을 대상으로 공동 설문조사한 결과 현업에서 일하고 있는 직장인 중 무려 57.1%(554명)가 다른 기업에 신입으로 지원할 계획이 있다”고 밝혔다. 또한 자신을 취반생이라고 밝힌 554명 중 60.8%(337명)가 실제 이번 추석 연휴에 구직활동에 나설 계획인 것으로 파악됐다. 현업에서 일하고 있는 직장인의 절반 이상이 다시 신입 채용시장의 문을 두드리는 기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연령제한에 너그러워진 채용 풍토에 조기퇴사를 고려하는 신입사원들의 영향으로 취업 반수생이 폭발적으로 늘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바늘 구멍을 뚫고 취업에 성공한 경력자들이 취업시장에 다시 돌아온 이유는 무엇일까? ‘묻지마 지원을 했다가 뒤늦게 후회하고 재취업을 준비하는 경우가 대표적으로 손꼽힌다. 취업 반수를 준비하고 있는 직장인 방 모씨(26)는 취업이 고시가 돼가는 상황에서 아무리 특정 기업을 선호한다고 해도 그 곳에만 지원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요즘 주변에 보면 다들 자소서 50개씩 써서 일단 붙은 다음에 취업 반수를 준비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중소기업이나 지방근무 기업에 취업했지만 처우에 만족하지 못해 이직을 시도하는 사례도 많다. 최경수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원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각각 제공하는 임금과 복지 혜택의 격차가 크다 보니 이에 만족하지 못한 직장인들이 취업 반수를 택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고 설명했다.
서열화된 대학교 순위처럼 국내외 기업을 줄 세우고 상위권 안에 있는 기업에 들어가야 성공한 것처럼 여기는 사회 분위기도 신입사원들의 스트레스를 가중시킨다. 서울의 명문 사립 K대를 졸업하고 한 대기업 계열사에 근무중인 공 모씨(29)는 작년 추석 때 고향에 내려가니 친지로부터 ‘너는 K대 나와서 거기밖에 취업 못 했냐는 말을 들었다”며 명문대를 졸업하고 상대적으로 네임 밸류가 떨어지는 회사에 들어가는 것에 스스로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게 한국의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기업들 역시 신입사원의 조기 이탈로 이어지는 취업 반수생 증가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신입사원이 퇴사할 경우 채용 및 교육과정에서 투입한 비용은 고스란히 기업에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지난 6월 전국 306개 기업을 대상으로 ‘2016년 신입사원 채용실태 조사를 실시한 결과에 따르면 대졸 신입사원의 1년 내 퇴사율은 27.7%로 2012년 보다 4.1%포인트 높아졌다. 국내 한 대기업 인사팀 관계자는 신입사원이 퇴사할 경우 이들에게 투입한 채용 및 교육 비용 등을 합치면 손실이 상당하다”면서 선발을 잘 하는 것 외엔 별다른 해결 방안은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전했다.
신입 채용 시장에 취업 반수생마저 대거 뛰어들면서 올해 하반기 ‘취업전쟁은 더욱 치열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사회적 비용을 야기하는 취반생 증가 현상에 대해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이대로 방치하면 채용 주체와 응시경쟁자, 최종 수혜자 모두 ‘루저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경고다. 윤정구 이화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대학 교육이 학생들이 원하는 ‘업이 무엇인지 깨닫고 장기적인 시각으로 목표를 세울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며 뚜렷한 목표없이 입사하면 자신의 적성이 실제 업무와 맞지 않아 이직을 피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전병준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업들도 조직문화에 부합하는 인재를 뽑고 선발한 직원들의 이직을 막기 위해 만족도 향상 등의 노력을 해야한다”며 취업반수생이 늘수록 더 큰 사회적 비용을 야기하기 때문에 대학과 정부가 취업률 높이기에만 급급해서는 안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황순민 기자 / 이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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