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샘과 락앤락 등 중견기업 창업자들 사이에서 시작된 공익재단 설립 바람이 확산되고 있다.
자수성가를 통해 재력을 모은 중견기업 오너들이 보다 나은 한국사회를 위해 사재를 털어 공익을 위한 투자에 발벗고 나선 셈이다. 여기에는 우리사회에서 들불처럼 번진 ‘흙수저, ‘헬조선과 같은 자학에 대한 안타까움을 극복하고 세상에 희망을 노래하자는 염원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이 1일 생명공학 기초연구를 지원하는 ‘서경배 과학재단을 설립한 것도 이같은 움직임에 동참하는 취지로 해석할 수 있다.
올들어 공익재단 설립에 시동을 건 사람은 국내가구업체 1위인 한샘의 조창걸 명예회장이다.
조 명예회장은 지난 2월 한샘 주식 60만주(당시 시가 1000억원)를 출연해 공익재단 ‘여시재(與時齋)를 설립했다. ‘시대와 함께하는 집이라는 뜻의 여시재는 민간 싱크탱크로, 한국판 브루킹즈연구소를 표방하고 있다. 조 명예회장은 한국에서도 미래전략을 짜고 실행할 제대로 된 연구재단이 꼭 필요하다고 봤다. 특히 조 명예회장은 지난 4월 이사직까지 내려놓고 재단을 떠나면서 여시재에 독립성을 보장해줬다. 그는 연구 성과가 날 때 까지 지속적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생각도 밝혔다. 여시재는 ▲동북아와 새로운 세계질서 ▲통일한국 ▲도시의 시대 등 3개 분야로 나눠 정책솔루션 연구, 인재 양성, 지식플랫폼 조성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여시재는 오는 10월에는 ‘동북아 국제포럼 개최를 준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재단은 동북아시아의 정치·경제·문화 등을 관한 논문 1000편을 모아 분석하고 있다. 향후 포럼에 동북아지도자들이 모여 보다 나은 동북아의 미래를 위해 아이디어를 모으고,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조 명예회장의 꿈이 시작되는 첫걸음인 셈이다. 내년에는 상반기 중 청년들을 대상으로 미래 변화에 대비한 신기술을 공모하는 대규모 기술경진대회(C-프로젝트)도 준비 중이다.
여시재 이사장을 맡은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는 21세기 대전환기를 맞아 한국과 동북아를 비롯해 세계의 미래 변화를 예측하고 능동적으로 대비하는 역할을 할 싱크탱크가 꼭 필요하다”며 여시재는 독립된 공익 재단법인으로서 당장 현안에 매달리기보다는 통일한국의 변화와 동북아의 변화를 주도할 정책 개발과 인재 육성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락앤락의 김준일 회장도 지난 3월 ‘아시아발전재단을 세웠다. 재단은 ‘다시 아시아로!라는 기치아래 동북아시아의 문화·학술교류를 통해 국가간 화합을 추구하고, 다문화 가정 2세의 정착 지원 및 미래인재 육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초대 이사장을 맡은 김 회장은 전 세계인구 60% 이상이 살고 있는 아시아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의 땅으로, 앞으로아시아 각국의 상호이해와 협력을 증진시키는 다양한 지원사업으로 대한민국 국가경쟁력 강화 및 나아가 아시아 각국의 선진화에 기여하겠다”라고 말했다. ‘아시아발전재단은 김 회장이 출연한 20억원으로 출범했으며, 내년 50억원으로 규모를 확대할 예정이다. 김 회장은 추후 500억원이상으로 출연규모를 확대해 재단의 사업 영역을 국내외적으로 확대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재단은 ▲아시아권 문화·학술교류 지원 ▲ 아시아 의료 취약 지역 아동의 무상의료 및 장학금 지원 ▲동포학생 장학금 지원 ▲다문화가정 2세의 안정적 정착 지원 ▲글로벌 리더 및 동남아 지역전문가 육성 등을 주요 사업으로 추진한다.
‘밝은 빛을 세운다라는 뜻의 건명원 역시 2평짜리 단추공장으로 시작해 탄탄한 기업을 일군 오정택 두양문화재단 이사장이 미래 인재 육성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재산을 출연해 설립한 곳이다. 건명원의 원장을 맡고 있는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교수는 기업들이 책무를 다하기 위해 교육사업 등을 통해 사회에 환원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이라며 미래를 위해서는 인재가 꼭 필요한데 미래형 인재가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고 생각돼 만 19~35세의 청년을 대상으로 철학 과학 예술과 한문과 라틴어를 교육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설립된 건명원에서 학생 전원은 무료로 정규 강의를 들을 수 있으며 교재비도 내지 않는다. 상임교수 4명을 비롯해 총 12명의 교수가 참여해 청년들을 대상으로 매주 2번씩 수업을 하고 있으며 지난해 18명의 청년들이 교육 과정을 이수해 졸업했고 올해는 28명이 졸업을 앞두고 있다.
조남철 전 방송통신대 총장은 조선족과 고려인, 재일동포 등 한민족 청년들이 함께 소통하는 기회를 만들고, 동남아의 이주노동자 자녀들에게 장학금을 주면서 한국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는 것은 물론 국내 다문화가정 지원을 통해 한국사회를 보다 건강하게 발전시키고 있다”며 중견기업수준에서는 어려운 일이지만 함의와 명분이 훌률한 공익사업으로 사회적으로 이 같은 사업이 보다 활성화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재계에 나타난 이같은 움직임에 대해 오종남 아시아발전재단 이사(새만금 위원회 민간위원장)은 시장자본주의가 계속되면서 필연적으로 승자와 패자가 나뉠 수 밖에 없는데 자본주의를 잘 활용해 혜택을 입은 사람들이 소득격차 때문에 주저않은 사람들을 위해 손을 내미는 좋은 시도”라고 해석했다. 오 위원장은 이것은 누가 시켜서 될 일도 아니며 스스로가 자각을 해서 이뤄진 일인 만큼 이런 생각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더욱 늘 것”이라고 덧붙였다.
[진영태 기자 / 김정범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