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미술인의 축제인 비엔날레에 가면 흔히 거대한 설치물을 맞닥뜨리기 쉽다. 스펙타클한 조각이나 설치는 비엔날레의 힘과 위용을 보여주는 듯 했다. 그러나 2일 개막하는 제11회 광주비엔날레는 스펙타클을 버리고 비움과 상상력을 택했다. ‘제8지대(예술은 무엇을 하는가?)라는 묵직한 화두를 던진 전시장에는 여백과 상상력, 성찰이 감도는 공간으로 변신했다. 작품들은 파티션(경계) 없이 서로 한 공간에 어깨를 맞대며 다양성과 공존을 이야기하고 있다.
37개국 120명의 작가가 참여하는 광주비엔날레가 2일 66일간의 대장정을 시작한다. 마리아 린드 예술감독은 1일 기자회견에서 ‘제8지대라는 주제 선정과 관련해 제8지대는 이분법적 사고의 틀을 벗어난 ‘상상의 세계를 의미한다. 지진계가 기후의 변화를 예측하듯이 예술가들이 사회의 변화를 먼저 예측·진단하고 예술에 대한 잠재력, 미래에 대한 투시와 상상력을 끌어내 예술을 무대의 중앙에 놓고자 한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작품 252점은 전세계 곳곳에서 일상이 되어버린 재난과 테러 뿐 아니라 지구온난화라는 문제에 대한 깊은 성찰을 보여준다. 여기와 함께 인공지능 시대 예술은 무엇을 하는가라는 질문도 곁들인다.
본 전시관은 크게 다섯개의 전시장으로 나뉜다. 한눈에 들어오는 단일한 이미지나 대형 구조물의 전시라기 보다는 만화경처럼 다양성과 복잡성의 세계를 구현해놓은 전시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제1전시장은 5.18광주민주화 운동의 주요 거점인 1980년대 녹두서점을 재현하며 광주비엔날레의 지역성과 정체성을 강조한다. 스페인 작가 도라 가르시아의 ‘녹두서점-산자와 죽은자, 우리 모두를 위한이라는 제목의 신작으로 이 곳에서 다양한 워크숍과 발표행사가 이어진다.
덴마크 작가 잉겔라 오르만의 ‘거대한 돼지풀도 눈길을 끈다. 갈대와 녹말풀, 마분지, 고무호스, 노끈 등 이질적인 재료로 만든 6m 돼지풀은 폭력적인 자연과 인류의 포용을 이야기한다. 작가는 마치 멸종하거나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주변 지천으로 존재하는 것들을 사랑할 수 있다면 우리의 인생이란 더 좋지 아니한가?”라고 되묻는 듯하다.
미국의 타일러 코번은 ‘인체공학의 미래라는 작품을 통해 미래 인류를 위한 신개념 인체공학적 가구 시리즈를 선보인다. 안 리슬리가드의 영상 ‘신탁자, 부엉이...어떤 동물들은 절대 잠들지 않는다에서 부엉이는 아리송한 기계음으로 이야기하고 신작 ‘에이더를 엮고 돌리는 과정에서 거미는 거미줄로 ‘ADA LOVELACE(에이다 러브레이스)라는 글자를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든다.
제2전시장은 다양한 영상으로 채워진 미디어아트 전시실로 탈바꿈했고, 제4전시장은 채움보다는 비움을 택해 여백을 남겨둔 것이 인상적이었다. 사진과 회화, 설치 등 다양한 매체가 총출동했다. 소박하고 밋밋하지만 여백과 성찰을 통해 ‘내면의 스펙터클을 꾀하겠다는 광주비엔날레가 관람객과 소통에 성공할 지 주목된다. 11월 6일까지. (062)608-4224
[광주 = 이향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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