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한진해운 법정관리] 채권단, 아프지만 구조조정 대원칙 지켰다
입력 2016-08-30 17:21 

한진해운이 요청한 6000억원의 자금지원 요청을 채권단이 끝내 외면한 것은 해외 용선주나 항만하역업체 외상값 지불에 혈세(血稅)를 낭비할 수 없다는 해운업 구조조정의 대원칙 때문이었다.
이 원칙은 지난 3월 29일 현대상선에 대한 조건부 자율협약(자율협약에 따른 채권단 공동관리) 개시 당시 처음 천명됐다.
당시 현대상선과 한진해운 등 두 해운사는 해운시황 악화로 수익인 운임이 비용인 용선료(선주사에게 배를 빌리는 비용)를 밑도는 상황이었다. 운임은 날씨였고 날씨는 악화됐다. 그래서 해외 선주사와 협상해 용선료를 낮추기로 했다. 채권단이나 금융당국 차원에서 조율할 수 없는 회사채 역시 사채권자 집회를 통해 이자율 인하 등 채무재조정에 나서기로 했다. 용선료 협상과 사채권자 집회라는 외부변수를 해운사가 자체적으로 해결할 경우 채권단이 출자전환을 거쳐 정상화 지원에 나서겠다는 게 채권단과 금융당국의 구상이었다.
문제는 막대한 해외 외상값이었다. 두 회사 모두 수천억원대의 용선료나 항만이용료 지불이 밀려 있는 상태였다. 이같은 해외 상거래 채무는 채권단 지원 원칙에서 벗어나 있었다. 천우신조로 3월 16일 1조2000억원대의 인수가격을 제시한 KB금융지주가 현대증권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면서 현대상선은 구조조정을 위한 신호탄을 쏜다. 해외 해운동맹(얼라이언스) 협상 역시 기사회생으로 마무리됐다. 법정관리를 불사한 채권단과 현대상선의 벼랑끝 전술로 용선료를 21% 인하하는 데도 성공했다.

반면 한진해운은 이 해외 상거래채무가 두고두고 발목을 잡았다. 최종적인 결론은 나지 않았지만 한진해운은 27%의 용선료 인하에 사실상 성공했고 현대상선 구조조정 당시에는 시도하지 않았던 대규모 선박금융 원금상환유예 협상에도 나서 상당 부분 진척을 이뤘다. 문제는 외상값이었다. 29일 기준 6500억원에 달하는 해외 상거래 채무를 두고 채권단이 지원해달라”는 한진 측과 구조조정 원칙상 지원할 수 없다”는 채권단은 평행선을 달렸다.
지난 25일 한진 측이 제시한 자구안은 5000억원으로 회계법인이 실사한 결과 내년까지 부족자금 규모(1조원)의 절반에 불과했다. 이중 대한항공을 제외한 나머지 계열사의 지원과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개인 유상증자인 1000억원은 내년 7월에도 자금 부족상황이 지속될 경우 한진 측이 분담하겠다는 단서가 붙었다. 채권단이 난색을 표했고 법정관리 조짐이 가시화되자 한진 측은 거듭 수정안을 내놓았지만 대세는 달라지지 않았다.
한진해운은 먼저 대한항공 유상증자 4000억원 중 2000억원을 올해 12월 중 지원하겠다고 했는데 29일에는 올해 2000억원 유상증자를 앞두고 같은 금액의 대한항공 ‘대여를 하겠다고 했다. 1000억원의 계열사·조 회장 고통분담에 대해서도 자금 부족여부와 무관하게”라며 단서를 지웠다. 하지만 채권단 자금 지원으로 해외 상거래 채무만 갚고 정작 회사 정상화에는 기여할 수 없는 악순환이 되풀이 될 것”이라는 채권단의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채권단은 특히 자율협약 개시를 앞두고 채권단으로 지배구조가 넘어온 현대상선이나 산업은행·정부가 대주주인 대우조선해양과 달리 소유주(조양호 회장 일가)가 있는 회사의 유동성 문제는 자체 노력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원칙을 지속적으로 천명해온 만큼 이 원칙을 벗어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향후 여러 업종의 구조조정 과제가 남아 있는 상태에서 원칙에서 벗어난 자금지원은 기업 구조조정에서 부정적인 선례로 남을 수 있다”며 이는 해당 규모 금액을 지원하는 것 이상의 사회적 비용으로 국가적 손실이 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정석우 기자 / 노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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