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실업급여 노린 ‘노쇼 구직자’에 눈물짓는 中企
입력 2016-08-19 15:06 

면접 대상자 중에 70~80% 정도는 안 와요. 인력이 모자라 급히 채용을 하려는데 일정이 미뤄지면 생산차질이 불가피합니다.”(경기도 식기세척기 제작 A업체 인사담당자)
면접 현장에 나타나지 않는 악성 구직자들로 인해 중소기업이 인력난 이중고로 눈물을 짓고 있다. 이같이 ‘허수 구직자가 양산되는 것은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이력서만 넣고 면접에 불참하는 구직자가 많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경기도 광주 소재 A업체는 최근 면접 현장에 나타나지 않는 구직자들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다. 올 상반기 연봉 2500만원 직원 채용에 구직자 20명이 면접 대상자로 선정됐지만 이중 70%가 불참했다. 결국 6명의 구직자를 두고 면접을 진행했지만 직무에 적합한 사람이 없어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2014년 고용노동부가 강소기업으로 선정한 B업체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근로자수 110명에 연매출이 250억 원 규모 비교적 튼튼한 중소기업이어서 다른 중기 보다 더 나은 급여 조건을 제시했지만 악성 구직자들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다. B업체 인사담당자는 면접에 안 오는 건 기본이고 면접을 보고 채용하기로 했는데 출근 당일 날 연락이 두절되는 경우도 있었다”며 그 사람이 다음에 구인광고를 냈을 때 또 지원하는 황당한 상황도 있었다”고 말했다.
매일경제가 고용노동부가 운영하는 온라인 취업정보 사이트 ‘워크넷에 채용 공고를 올린 중소기업 20여 곳을 취재한 결과 4곳이 올해 채용 면접에서 구직자들 전원 혹은 일부가 면접 현장에 나타나지 않아 채용을 미룬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고 답했다. 다른 중소기업 4곳도 지난 채용과정에서 비슷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이들 중소기업들은 실업급여를 타기 위해 허수 구직자들이 많이 몰리는 현상을 구직자 면접 불참의 주요한 이유로 꼽았다. 경기도 양주 C업체 총무부장은 워크넷 등 구직사이트에 채용공고를 올리고 나면 하루 이틀정도 구직자들이 바짝 모였다가 3일 이후에는 지원자들의 발길이 끊긴다”며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근로복지공단에 구직활동을 증명해야 하다 보니 공고를 올리자마자 허수 지원이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인터넷 카페 등에서는 실제로 허수 구직자들이 구직활동을 하지 않고 실업급여를 타가는 노하우를 주고받는 풍경이 연출됐다. 한 구직자 카페에서는 구직활동을 하다가 덜컥 취업이 될까봐 겁난다. 실업급여를 잘 받을 수 있는 팁을 알려 달라”라는 식의 질문이 다수확인됐다. 이 게시글에는 면접 내역이 고용노동부에서도 확인이 되는지 잘 모르겠지만 다른 핑계를 대고 (면접은) 가지마세요”라는 조언이 쏟아졌다.
고용노동부의 실업급여 지급 절차에 따르면 구직활동은 △구인업체 방문 또는 우편, 인터넷 등을 이용하여 구인에 응모한 경우 △채용 관련 행사에 참여하여 구인자와 면접을 본 경우 △당해 실업 인정일부터 30일 이내에 취업하기로 확정된 경우 등으로 규정된다. 인터넷으로 구직 신청하는 경우 업체가 올린 모집요강 화면을 출력하고 입사지원서를 보낸 날짜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만 제출하면 구직 활동으로 인정하고 있다. 이력서만 넣으면 구직 활동으로 인정되는 탓에 허수 구직자들을 양산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사업장에 전화로만 구인문의를 하거나 특정 직종과 임금만 고집하며 동일 사업장을 반복해 구직 활동하는 경우는 재취업활동이 인정되지 않는다. 때문에 수시 고용 시스템을 가진 중소기업에 해당 직무에 적합하지 않은 허수 지원자들의 발길이 몰리고 있다. C업체 관계자는 100여명 정도가 지원을 했는데 그 중에서 딱 그 경력에 맞는 사람은 5명 내외였다”며 우리 회사는 아스팔트 도로를 포장하거나 거기에 들어가는 아스팔트 제품을 생산하는 회사인데 자동차 회사 출신, 식품 회사, 영양사 등 왜 이 분야에 지원하는지도 모를 사람들이 대다수였다”고 말했다.
이들 중소기업들은 인력 풀(pool)이 넉넉한 대기업들과는 달리 그때그때 채용해야 하는 중소기업의 사정상 악성 구직자들이 고스란히 해당 기업의 피해로 돌아온다고 설명했다. 대개 중소기업의 경우 채용과정이 2~3주에 걸쳐 진행되지만 면접자들이 오지 않는 경우 서류과정에서부터 다시 전형을 시작해야 했다.
예비 인력이 없어 필요한 인력을 수시로 뽑아서 써야 하는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생산, 개발 등 일정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B업체 인사담당자는 면접자가 안 오면 다시 채용공고를 올려야 하고 임원들 출장 일정까지 재조정해야 한다”며 내부에서 보직변경, 야근 등으로 부족해진 인력을 채워 쓰는 현실이지만 채용 과정이 미뤄지다 보면 업무에 과부하가 걸리게 마련”이라고 하소연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중소기업 현장에 나타나지 않는 구직자들이 전부 실업급여를 위한 허위 구직자로 보기는 힘들다”면서도 혹시 모를 악성 구직자들을 선별해 내기 위해 최근 전담 모니터링 담당자를 두는 등 제도 강화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유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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