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가면을 쓴 유일한 동물이다. 멕시코 시인 옥타비오 파스는 말했다. 살아 있는 한 각자의 이름과 가면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 말은 인간은 가면 뒤에 어떤 심연을 숨긴 채 사는 존재란 의미로도 읽힌다. 세상이란 무대 위, 가면을 쓰고 주어진 배역을 수행하는 게 인간 삶이다.
심리학자 프로이트가 만들어낸 극장에서 인간에게는 하나의 배역만 가능했다. 그리스 신화의 오이디푸스였다. 테베의 왕,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잠자리를 하는 비운의 주인공. 부친살해와 근친상간을 뒤늦게 알고, 눈을 파내 어둠의 유배를 떠나는 인간. 프로이트는 수천 년 전 오이디푸스에게서 부성애와의 불화, 세대 간의 분쟁과 투쟁, 차단 당한 상상력 등의 키워드를 건져올렸고, 이를 이 시대의 인간 군상의 성격으로 정의했다.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였다.
이탈리아의 명망 높은 심리분석가 마시모 레칼카티가 쓴 ‘버려진 아들의 심리학은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를 전복시킨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 텔레마코스(Telemachus)를 집어넣는다. 텔레마코스는 트로이전쟁에 참전한 아버지 오디세우스를 기다리며 수평선을 바라본다. 학수고대 바라던 아버지가 귀향한 뒤 그는 어머니 페넬로페이아를 희롱한 귀족을 응징한다. ‘텔레마코스 컴플렉스가 이제 현대의 자화상이라고 명명하며 인간 심리 패러다임 전환을 청하는 레칼카티는, 오이디푸스와 텔레마코스 외에 안티(反)오이디푸스, 나르키소스를 소환해 인간 심리 자화상의 역사를 다시 쓴다. 무대 위에 옮겨 네 인물을 비유하면 이렇다.
#.점등(點燈). 네 남자가 가면을 쓰고 등장한다.
오이디푸스: 난 버림받았소. 부친 라이오스 왕은 내가 당신을 위협하리란 신탁에 굴복했지. 아버지란 늘 아들의 욕망을 차단해 새 세상의 가능성을 부정하려 하지.
안티(反)오이디푸스: 그렇다고 아버지와 불화할 수 있겠소. 난 싸우기보다 고아로 남겠소. 자유롭고 싶을 뿐, ‘타자와의 관계맺기란 쓸 데 없지, 안 그렇소?
나르키소스: 불화하지도 또 혼자가 되지도 않으렵니다. 나는 아버지를 닮고 싶어요. 투쟁도 분쟁도 부질 없는 일. 수면에 비친 모습처럼 아버지를 닮고 싶습니다.
텔레마코스: 아버지는 세상의 계율입니다. ‘아들로 존재하되, 욕망도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부재하는 아버지를 기다려 정당하게 정신의 상속을 받겠습니다.
#.네 남자가 서로를 노려본다. 암전(暗轉).
안티오이디푸스는 1970년대 초 철학자 들뢰즈와 가타리의 책 이름이다. 안티오이디푸스는 오이디푸스처럼 자멸을 선택하지 않고, 오히려 관계의 차단과 쾌락으로의 질주를 원한다. 오이디푸스와 동일한 태생이지만 아버지에게도 도전하지 않는다. 여기서 ‘아버지는 기득권, 구세대, 옛것으로 치환하면 이해가 한결 쉽다. 오이디푸스 컴플렉스가 집단 발병했던 시절엔 신세대가 구세대의 기득권을 인정하지 않았고 그건 구미권 68운동의 정신적 지지대였다. ‘안티오이디푸스는 결국 저항하지 않는 세대를 상징해낸 언어였다. 그런 의미를 연결짓자면 나르키소스는 세대 간의 차이가 없고, 분쟁이나 투쟁도 없이, 그저 개인의 무한한 행복을 상징하는 세대의 어떤 비유다.
텔레마코스는 아버지가 ‘증발한 시대에서 젊은 세대들에겐 욕망의 싹을 잘라내고 반항심을 조장하던 아버지의 존재가 사라졌다. 구세대조차 어린아이가 돼버렸기에 아버지라는 이름의 질량은 한없이 가볍다. 저자는 부재하는 아버지의 귀환을 기다리는 세대가 바로 지금의 젊은 세대의 바이러스, 즉, ‘텔레마코스 컴플렉스라고 명명한다.
인생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주인으로서의 아버지를 세상의 언어로 (시쳇말로) ‘꼰대라 부른다. 인생은 살 만한 가치가 있다고 조언하는 ‘증인으로서의 아버지를 물 건너온 말로 ‘멘토라고 일컫는다. 레칼라티는 결국 꼰대의 시대가 저물고 멘토의 시대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텔레마코스에게서 이 시대의 자화상을 발견한다.
오늘날 젊은 세대가 원하는 건 해답을 갖고 있는 아버지가 아니라 인생의 의미가 무엇인지 대답하지 못하지만 스스로의 삶을 통해 인생을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걸 증명해볼 수 있는 아버지다.” 세상의 험로에 던져진 존재인 우리는 ‘버려진 아들이다. 오이디푸스처럼 증오할 것인가 텔레마코스처럼 기다릴 것인가, 선택은 운명이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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