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쭉한 활 모양의 일본 열도에서 동해와 접한 중북부 호쿠리쿠(北陸) 지방은 변방 중의 변방이다. ‘동양의 알프스로 불리는 이곳은 신칸센이 연결되기 전까지는 겨울이면 몇미터씩 눈이 내려 고립되곤 했다. 호쿠리쿠의 3개 현 도야먀, 이시카와, 후쿠이는 놀랍게도 일본내 행복도 조사에서 47개 현 중 늘 1~3위를 휩쓴다. 2010년 기준 노동자 수입에서도 1위는 후쿠이현으로 2위 도쿄를 멀리 따돌렸다. 초·중학교 학력평가도 후쿠이현은 1~2위를 다툰다. 더 인상적인 통계는 후쿠이현의 전국 맞벌이 비율 1위, 서점 숫자 1위 기록이다.
비결이 뭘까. 일본 포브스 저팬의 부편집장인 후지요시 마사하루는 후쿠이현 사바에시에서 활력이 아니라 오히려 위기감을 느꼈다. 이 도시는 일본 내 안경테의 90%를 생산하는 안경 명산지. 중국제 안경의 공세로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었다. 이 도시는 안경 뿐 아니라 섬유, 칠기 산업도 유명하다. 모두가 사양기에 접어든 산업군이다. 하지만 이 곳엔 ‘사양산업판 실리콘밸리라는 별명이 붙어있었다.
‘일본 제일과 ‘세계 제일이 수두룩한 게 비결이다. 후쿠이에는 일본내 카시트 1위 세이렌, 세계 벨벳 의류 1위 아게하라 벨벳, 상업용 칠기 일본 점유율 80%인 수지제 등이 있다. 후쿠이의 세계 점유율 1위 제품 및 기술은 40개, 일본 점유율 1위는 51개나 된다. 그들은 사양산업이라도 살아남은 산업은 오히려 강해진다는 말을 현실로 만들었다. 안경산업이 위기를 겪자 안경 제조로 익힌 티타늄 가공기술을 의료용과 항공기 산업, 광센서 등으로 확장했다. 안경산업은 새로운 산업의 광맥이 됐다. 이처럼 후쿠이의 힘은 ‘그늘을 ‘빛으로 바꾸는데 있었다.
도야마현으로 옮겨가보자. 모리 마사시는 2002년 도야마 시장에 취임했다. 취임직후 만성적자 예산과 맞닥뜨린 그의 첫 목표는 도심의 팽창을 막는 것. 도야먀는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 도시가 교외로 팽창하고 있었다. 그 덕분에 중심가의 땅값이 떨어지며 세수가 줄었다. 시가가 교외로 확대될 수록 쓰레기 수거, 간병 서비스, 도시 정비, 제설 등 행정비용은 늘어났다. 악순환을 끊는 게 필요했다.
모리 시장은 젊은층을 묶어두기 위해 세가지 요소에 집중했다. 재미· 맛·멋이었다. 그는 ‘꼬챙이와 경단형 도시구조라는 계획을 세웠다. 먼저 도야마 역을 중심으로 JR, 도야마 지방철도 외에 포트램이라는 노면전차를 만들었다. 전차의 바닥을 낮춰 계단 없이 탈 수 있는 한두량짜리 경전철은 사람들을 도시로 흡수하는 꼬챙이 역할을 했다. 경단은 이들 공공교통으로 연결된 주거지역이다. 도시에 교외 계발을 억제해 시가 중심부에 사람, 물건, 돈의 기능을 집약했다. 이것이 세계 도시들이 장려하기 시작한 ‘콤팩트시티 아이디어다.
모리 시장이 지역내 반대를 극복하고, 구시대적이라 비판받는 노면전차 구상을 밀어붙인 힘은 ‘논리와 ‘데이터였다. 도야마의 세수는 약 703억엔이다. 이중 74%가 도심에서 나왔다. 면적의 5.8%에 불과한 중심지역이 쇠락하면 세수도 줄 것이 분명다. 모리 시장은 중심 시가지 집중 투자는 세금 회수 측면에서 합리적이고 효과적”이라고 설득했다. 게다가 자동차에 의지할 수 없는 고령자들이 도심에 살게 되면, 슈퍼마켓 병원 공원 도서관 을 모두 걸어갈 수 있게 된다고 주장했다. 주거지역을 집약시키기 위해 경전철역 500미터권에 공동주택을 건설하면 재건축 보조금을 지급했다. 이 정책으로 2014년까지 총 2236개의 주택이 도심으로 이주했다.
도시계획의 가장 큰 효과는 인구 유지였다. 24~40세의 인구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관광객도 늘기 시작했다. 매년 4월 일본의 지붕으로 불리는 다테야마 엘펜 루트에서는 20미터 높이 설벽을 걷는 ‘눈골짜기 걷기 행사가 열린다. 이 행사를 찾아 2011년 4월 도야마를 찾은 외국인 숙박객은 511명이었다. 3년후 이 숫자는 9736명이 됐다. 외국인에 한해 200엔인 경전철을 무료로 타게한 정책이 부린 마법이었다.
‘외출 정기권 사업도 시작했다. 65세 이상 고령자가 중심 시가지까지 올 경우 1회 교통비를 100엔으로 책정한 것이다. 일반 승차권보다 10배나 싼 이 정기권을 이용하면서 고령자들은 지갑을 열기 시작했다. 중심시가에는 보행자가 늘었고, 빈점포도 사라졌다. 임대자전거를 곳곳에 두자 시민들은 항구 마을을 자전거로 횡단하기 시작했다. 지정된 꽃집에서 꽃다발을 구입해 경전철을 타면 요금을 무료로 하는 ‘꽃 트램 모델사업도 실시했다. 도시가 꽃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행정만으로 이 지역의 높은 ‘행복도를 설명할 수는 없다. 중소기업이 중심인 이 지역은 일본 내 가장 높은 맞벌이 비율을 자랑한다. 여성들이 일하기 편하고 보육시설이 잘돼있으니 소득이 높고, 교육도 발달했다. 아이를 키우기 편한 사회는 곧 높은 출생률로 돌아왔다. 이 곳은 이제 일본의 북유럽으로 불린다.
도시의 풍경이 바뀌니 시민의식도 변했다. 외지인에 너그러운 문화, 교실 간 칸막이가 없는 학교, 애향심이 넘치는 시민들…. 이 모든 것이 마법처럼 작용해 이 작고 늙은 도시는 일본의 미래가 됐다. 저자는 힘겨웠던 경험이야말로 미래를 만드는 데 중요한 동력임을 후쿠이 지역을 취재하면서 알았다”고 말한다. 위기를 통한 반전. 그것은 일본이 강대국이 된 비결이기도 했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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