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대부분 지역에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지난 13일 서울 남대문 시장. 연일 30도 이상을 웃도는 무더위가 이어진 탓에 한산했다. 시장을 찾은 사람들 대부분은 양산을 쓰고, 부채로 쉴새없이 땀을 식히는 등 더위에 지친 모습이었다. 이 곳에서 분식 노점상을 운영하는 50대 박모씨는 불볕더위에 지난달 매출이 절반 가까이 줄었다. 옆에 있는 신세계 면세점을 찾은 관광객들이 쇼핑을 마치고 시장을 찾을 법도 하지만 에어컨이 있는 시원한 실내에 머물다가 무더운 야외 시장으로 걸음을 옮기는 경우는 드물다”며 한탄했다.
올 여름 계속되는 폭염과 내수침체 등 전통시장에 잇따라 악재가 들이닥치면서 상인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전통시장은 대형마트나 백화점과 같은 타 유통업체에 비해 날씨 등 외부적인 요소에 더 많은 영향을 받는 만큼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 절실하다.
주변 면세점과 백화점에 밀려 매출액이 급감하고 있는 남대문시장이 ‘빅데이터를 시장 활성화를 위한 회심의 카드로 꺼내들었다. 통신사나 신용카드사가 전통시장 관련 정보를 분석한 적은 있지만 전통시장이 자체적으로 빅데이터를 도입하는 것은 최초다.
1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남대문시장은 시장 출입구에 사람 인식 기능이 탑재된 총 10대 내외의 360도 회전형 오버헤드 CCTV를 설치해 방문객 수 및 이동동선, 피크 시간대, 방문객의 연령대·성별 등을 조사해 빅데이터를 구축하기로 했다. 고객이 어느 가게에 방문해 어떤 제품 군에 관심을 표하는지, 어느 시간대에 어떤 연령층이 방문했는지 등 상세 정보를 기반으로 마케팅 및 전체적인 시장 운영에 활용할 계획이다. CCTV설치는 오는 10월까지 완료하고, 빅데이터 구축은 약 1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남대문시장은 먼저 자동 사람 인식 기능을 갖춘 CCTV를 통해 정확한 방문객 수를 파악하고, 방문객 연령대 등 세부적인 부분은 용역업체를 고용해 분석한다. 이와 함께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대규모 설문조사 및 인터뷰도 실시해 남대문시장 방문 경로, 동행인원 등을 조사해 관광객들의 실질적인 방문행태를 확인한다.
서울 남대문시장 주식회사 관계자는 그동안 전통시장은 방문객 수 조사 등 기본적인 통계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돼 왔는데, 이젠 정확한 데이터 구축을 통해 사업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며 빅데이터 기술 활용은 시장 상인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남대문시장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변화를 시도하는 이유는 사업전략을 재정비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최근 들어 크게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남대문시장은 타 전통시장에 비해 특화된 상품 군이 취약하다. 최근 동대문시장은 몰려드는 유커와 현대시티아울렛 개점 덕분에 패션의 메카로 재조명받고 있고, 광장시장이나 통인시장은 특색 있는 먹거리로 인기를 끌고있다. 남대문시장도 액세서리에 중점을 두고있긴 하지만 재구매율이나 가격 단가 측면에 있어서 토털패션이나 먹거리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신세계백화점 본점에 면세점이 들어서면 유커의 남대문시장 방문도 증가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아직까지 기대에 못 미치고 있는 상황도 변화의 이유다. 남대문시장 상인협회 관계자는 단체관광으로 오는 중국인들을 수용할 만큼 남대문시장 면적이 크지 않고, 소매로만 구매하는 유커들은 매출에 큰 도움이 안되는 게 사실”이라면서 중국인 관광객이 오기만을 기다리기보단 시장이 자체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통업계 전반에 들이닥친 내수침체도 원인이다. 한국은행 소비자동향조사에 따르면 자영업자들의 경기전망지수는 지난 6월 78까지 추락했다. 경기전망지수는 100을 기준으로 지수가 100 이상이면 경기 호전을, 100 이하면 경기 부진을 예상하는 자영업자가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2014년 6월 95, 지난해 6월 82보다 더 큰 폭으로 하락한 것이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지난 6월 국내 대형마트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0%대 성장에 머문 것으로 나타났다.
[박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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