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위기 때마다 오르는 엔화, 이런 현상은 왜 생긴걸까
입력 2016-08-09 06:02 
[증권투자 비밀수첩-97]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결정 이후 불안감에 휩싸인 투자자들이 안전자산에 몰리면서 엔화 가치가 급등했다. 지난해 말 120엔대이던 엔·달러 환율은 브렉시트 결정 직후인 지난 6월 24일 100엔대까지 떨어졌다. 이 때문에 막대한 양적완화를 통해 엔화 약세(엔·달러 환율 상승) 효과를 누리던 일본 아베노믹스가 '직격탄'을 맞기도 했다.
 금융시장에 불확실성이 증가할 때마다 투자자들은 '안전자산'인 엔화를 사들였다. 하지만 천문학적인 일본의 국가 부채와 '잃어버린 20년'을 생각해보면 엔화가 과연 안전자산인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실제로 일본 재무성에 따르면 올해 일본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232.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또 1990년 주식시장 버블 붕괴 이후 '잃어버린 20년'을 겪은 일본은 아직 저성장과 디플레이션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천문학적인 나라 빚과는 별개로 일본 기업과 정부, 개인은 해외에 막대한 규모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일본은 지난해 말 기준 339조2630억엔(3678조원)의 대외순자산을 보유한 국가로, 대외순자산 규모로는 25년 연속 세계 1위를 유지했다. 대외순자산은 일본 기업과 정부, 개인이 해외에 보유한 자산에서 부채를 차감한 수치다. 세계 경제에 위기가 오면 일본인들이 해외에 가진 자산을 처분하고 엔화로 바꾸려고 하기 때문에 엔화 수요가 늘고 엔고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이를 노리고 투자자들은 위기 때마다 엔화를 서둘러 사들였다.
 또한 일본은 중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외환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4월 기준 일본의 외환보유액은 1조2625억달러로 중국(3조2197억달러)의 뒤를 이었다. 특히 외환보유액의 원천이 되는 경상수지는 1981년 이후 줄곧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 일본의 경상수지 흑자는 16조4120억엔으로 전년 3조8800억엔 대비 4배 증가했다.
 게다가 일본 엔화는 국제 외환시장에서 네 번째로 많이 거래되고 있으며, 24시간 거래되는 시장이 있기 때문에 엔화를 매입했다가 돈이 묶일 염려가 없다.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에 따르면 지난 6월 국제 결제통화 가운데 엔화의 비중은 3.46%로, 미국 달러화(40.97%), 유로화(30.82%), 영국 파운드화(8.73%)의 뒤를 이었다.
 이러한 일본 경제의 특수성 때문에 한국은 세계 경제가 호황일 때 외국인 투자자들이 투자했다가 위기가 닥치면 자금을 회수하는 '현금인출기' 역할을 하지만 일본은 정반대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윤석 한국금융연구원 국제금융연구실장은 "금융시장이 안정적일 때는 저금리인 엔화를 빌려 해외 고금리 자산에 투자하는 엔 캐리 트레이드가 일어나지만 갑작스러운 위기가 닥치면 이 같은 거래를 청산해 엔화가 강세를 나타내는 패턴이 반복되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엔저를 이용해 저성장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는 일본 입장에서는 브렉시트 발(發) 엔고 현상이 달가울 리 없다. 지난 6월 24일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는 엔달러 환율이 100엔대까지 붕괴하자 "필요할 때는 확실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시장에 강한 메시지를 전했다. 또한 일본 중앙은행은 지난 7월 통화정책회의를 열고 주가지수 연동형 상장지수펀드(ETF)의 연간 매입 규모를 기존 3조3000억엔(약 35조7000억원)에서 6조엔(약 65조원)으로 확대한다고 밝혔다.
[박윤구 증권부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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