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뇌전증 환자 운전면허 갱신이 반나절만에 가능…형식적 절차 '논란'
입력 2016-08-02 20:11 
사진=연합뉴스
뇌전증 환자 운전면허 갱신이 반나절만에 가능…형식적 절차 '논란'

운전자의 건강상태에 따라 발생하는 교통사고를 막으려는 적성검사가 사실상 형식적인 절차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습니다.

지난 주말 부산 해운대에서 17명의 사상자를 낸 푸조 차량 운전자 김모(53)씨는 운전면허 취소 사유인 뇌전증 환자였지만 아무런 문제 없이 사고 한달여 전에 적성검사를 통과하고 면허증을 갱신했습니다.

2일 도로교통공단 부산 남부운전면허시험장은 여름 휴가철을 맞아 몰려든 민원인으로 해수욕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북적였습니다.

번호표를 발급받고 본인 순서가 오기까지는 최소 30분 이상이 걸렸습니다. 그래도 서류만 제출하면 당일 새 운전면허증을 발급받을 수 있습니다.


운전면허 적성검사에는 신체검사 결과가 필요합니다.

상당히 번거로울 것 같지만, 시력, 색약, 사지(四肢), 청력 검사만 받으면 서류 제출에는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적성검사 신청서를 제출하는 본관 앞 별관에는 신체검사장이 별도로 마련돼있습니다.

이곳의 검사는 대기 시간을 제외하면 불과 1분 정도면 마칠 수 있었습니다.

적성검사 신청서를 미리 작성한 뒤 현장에서 간단한 신체검사를 받고 그 결과를 첨부해 적성검사 신청서 제출하는 데에 5분이면 충분합니다.

최근에는 이런 적성검사 갱신 신청이 온라인으로도 가능해 직접 현장을 방문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간소해졌습니다.

문제는 수시 적성검사입니다.

운전면허 적성검사는 면허 발급일을 기준으로 일정 기간 내에 받아야 하는 정기 적성검사와 질병 등의 사유로 그때그때 받아야 하는 수시 적성검사로 나뉩니다.

수시 적성검사는 정기 적성검사와 달리 말 그대로 수시로 필요한 적성검사입니다.

운전자 본인이 직접 신청하지 하거나 관련 기관의 통보에 따라 도로교통공단이 대상자를 선정해 직접 심의합니다.

보건복지부나 지자체, 군대, 국민연금공단, 근로복지공단 등의 기관은 정신질환자, 알코올·마약 중독자 등 운전면허 결격 사유 해당자 정보를 경찰청과 도로교통공단에 통보하지만, 규정이 약해 사각지대가 많습니다.

의료기관의 진료기록을 관리하는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의 경우 뇌전증 등 운전면허 결격사유를 경찰청과 도로교통공단에 통보할 의무가 없습니다.

10여전 경찰청이 건보공단과 정신질환 운전자의 의료정보 공유 방안을 추진했지만 사생활 비밀과 자유를 침해한다는 국가인권위의 지적으로 무산됐습니다.

뇌전증 환자를 운전면허 수시 적성검사 대상에 포함하는 내용의 도로교통법 시행령이 2014년에 개정됐지만 건보공단의 통보 의무가 없어 한계가 있습니다.

이런 절차를 거치더라도 운전면허 갱신 여부를 최종 결정하는 도로교통공단 판정위원회의 결정이 나오기까지 최소 한 달 이상이 걸립니다.

도로교통공단 산하 운전면허시험장의 판정위원회는 한 달에 한 번 열립니다. 개인이 신청해도 이 일정에 맞춰야 합니다.

그 기간 푸조 운전자 김씨와 같은 사람이 운전대를 잡아도 아무런 제약이 없습니다.

알코올 중독 치료를 최근에 마치고 이날 수시 적성검사를 신청한 A(41)씨는 "언젠가는 병력을 숨긴 게 드러나겠지만, 지금 마음만 먹으면 수시 적성검사를 하지 않고 정기 적성검사를 신청해 얼마든지 면허증을 갱신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운전자 본인이 시험장에 찾아와 수시 적성검사를 신청하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부산남부운전면허시험장이 처리하는 적성검사 건수는 연간 약 16만 건입니다.

올해 7월 현재 본인이 직접 수시 적성검사를 신청한 것은 20건이 조금 넘었습니다.

[MBN 뉴스센터 / mbnreporter01@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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