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중산층이 최근 자유와 자녀 교육 등을 이유로 김정은 체제 하에서 안정적인 생활을 포기하고 탈북하는 사태가 잇따르고 있다. 탈북민의 대다수는 아직 먹고살기 힘들기 때문에 탈출한 ‘생계형이다. 그러나 북한과 같은 가혹한 통제사회에서 삶의 질을 찾아 탈출하는 것은 엘리트 층 내에서도 체제 불만이 폭발 직전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될 수 있어 눈길을 끈다.
◆김정은 체제에 대한 반감과 불만 축적
탈북민의 상황에 정통한 정부의 관계자는 29일 매일경제와 통화에서 최근 북한의 40대 탈북자가 한국에 온 이유를 ‘자녀 교육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며 매우 드문 사례지만 김정은 통치 체제에 대해 답답해하는 인식을 보였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들은 북한에서 생활하는 데 아무 어려움이 없었으나 아이들 교육을 위해 탈출을 감행했다”며 남한의 현실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유엔 제재 이후 중국에서 발생하는 탈북 행렬이 급증하고 있다. 특히 20대 젊은층과 중상류층 출신들이 북한에 등을 돌리고 있어 김정은 체제에 대한 북한 민심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29일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중국 랴오닝성 둥강의 공장에서 일하던 북한 여성 근로자 8명이 지난달 집단 탈출했다고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둥강시의 한 수산물 가공 공장에서 일하던 이들은 지난달 말 감시원들의 눈을 피해 달아났다. 이들이 탈출한 뒤 북한 당국은 동료 직원 등 약 100명을 본국으로 소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최근 몇년간 중국, 러시아와 접경지대에 노동자들을 파견하는 인력수출을 크게 늘렸지만 최근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로 근로자들의 동요가 큰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제조업체 생산라인과 식당에서 근무하는 여성들은 대부분 20대로, 북한내에서 철저한 신분조회와 사상검증을 거쳤음에도 북한에 등을 돌리고 있다.
이에 앞서 지난 4월과 5월에도 중국 저장성과 산시성 북한 식당 종업원 16명이 탈출해 동남아를 거쳐 한국으로 입국했다. 이들 대부분이 북한에서 중상류층으로 분류되는 평양출신 20대 여성들이라는 점에서 북한 당국의 위기감이 높아진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의 탈북도 단순한 생계 문제 때문은 아닐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4월 국내 입국한 탈북 종업원 한 명은 탈북을 결심한 이유에 관해 최근 대북 제재가 심해지면서 북한 체제에는 더는 희망이 없다고 봤다”고 말한 바 있다.이와 관련해 최성룡 납북자가족모임 대표는 대북소식통을 인용해 식당 종업원들의 집단탈북 사건과 관련된 책임자 6명을 북한당국이 5월에 공개처형했다”고 밝혔다.
이달 중순에는 18세 북한 고등학생이 홍콩주재 한국총영사관에 진입했다.‘과학기술강국을 목표로 내걸고 있는 북한에서 장래가 촉망되는 수학 영재가 탈북에 나선 것은 여느 탈북 사례와는 다르다는 게 북한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이 학생은 지난 6일부터 16일까지 홍콩 과학기술대학에서 열린 제57회 국제수학올림피아드 대회에 참가했다가 북한대표단을 이탈해 한국총영사관에 망명 신청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대회에는 이 학생을 포함해 북한에서 6명의 대표가 참석했는데, 국제경시대회에 참가하는 학생들은 대개 평양 소재 명문학교에서 선발된다. 북한에선 남부러울것 없는 가정에서 성장한 10대 학생이 ‘나홀로 탈북을 감행했다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을 모은다. 홍콩 명보는 중국과 한국 외교당국이 탈북 학생 처리문제를 협의하고 있으며, 한국으로 보내는 방안이 가장 쉬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북한군의 장성급 고위 인사가 최근 탈북했다는 설도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탈북자단체 대표는 29일 북한군 총정치국에서 김정은의 자금 관리 업무를 하던 장성급 인사가 최근 중국에서 탈북해 제3국행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북한군 장성급 인사와 외교관 등 4명이 탈출해 중국에서 제 3국행을 준비중이라는 설이 나돌고 있다.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김정은 체제에서 희망이 좌절된 사람들이 자유세계를 접하고 확신을 가지게 된다”며 CNN이 탈북자 가족 인터뷰를 접한 북한 주민들이 ‘나도 탈북해야겠다고 생각하는 등 역효과가 발생한 것 같다”고 말했다.
◆북, 전시예비용 유류 탕진”
이런 가운데 북한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가 별다른 효과가 없다는 점을 과시하기 위해 전시예비물자마저 탕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자유아시아아방송(RFA)은 29일 북한 당국은 올해 4월 전시예비물자를 보관하는 ‘4호 창고의 휘발유와 디젤유를 농업부문에 먼저 돌려쓰라는 지시를 내려 현재 시·군들에 있는 전시예비물자 휘발유와 디젤유는 바닥이 난 상태”라고 소식통을 인용해 전했다. 이 소식통은 최근 각 도 소재지들에 새로 건설되는 아파트들도 인민군 군수동원총국 산하 ‘50호사업소에 보관됐던 전시예비물자인 시멘트와 철강재들로 건설되고 있다”며 50호사업소에 보관했던 휘발유와 디젤유도 상당량 소비됐다”고 설명했다. 소식통은 김정은이 미국의 대북제재에 끄떡도 안 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전시예비물자까지 탕진하고 있다는 사실을 현지 간부들은 잘 알고 있다”며 전시예비물자까지 모조리 축낸다면 앞으로 김정은 체제가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 것인지 간부들도 의문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고말했다. 또 대북제재 이후 북한에서 휘발유와 디젤유 가격이 종전보다 두 배로 뛰어올랐다는 증언도 나왔다. 또다른 현지 소식통은 양강도 혜산시 장마당들에서 올해 2월까지 휘발유는 kg당 중국 런민비 3.5위안(약 590원), 디젤유는 kg당 2.6 위안이었지만, 이달 28일 현재 휘발유는 kg당 7위안, 디젤유는 kg당 5위안으로 올랐다”고 전했다.
[베이징 = 박만원 특파원 / 서울 = 안두원 기자 / 김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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