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김영란법 카오스] 과잉금지·명확성 쟁점…헌재의 판단은
입력 2016-07-21 16:14  | 수정 2016-07-22 17:07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시행일이 두 달 앞으로 다가오면서 헌법재판소의 조속한 판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통상 매달 마지막주 목요일에 선고를 하는데, 만약 이달 선고일인 28일을 넘겨 다음 달로 결정을 또 미룰 경우 위헌 판단을 내리더라도 국회의 후속 작업에 시간이 촉박하다는 이유에서다.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1일 매일경제와의 통화에서 김영란법에는 헌법에 명백히 위반되는 조항이 여러 개 있기 때문에 헌법재판소가 헌법의 법리대로 소신있게 위헌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본다”며 법 시행이 임박했는데 결정을 미루거나 하면 사회적 혼란과 폐해가 많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해 3월 김영란법이 국회를 통과할 당시 법사위원장이었다.
이 의원은 이어 헌재가 여론에 지나치게 민감해선 안된다. 명백히 위헌인 조항이 있는데 그것을 외면한다면 헌재 역할이 무의미한 것 아니겠냐”며 헌법 원칙에 반하는 것들은 빨리 위헌결정 내려야 하는 것이 헌재의 소임이다. 위헌성을 보완한 뒤 정해진 날에 빨리 시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창우 대한변협 회장도 이날 통화에서 헌재는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최후의 보루”라며 공직사회를 맑게 만들기 위해 필요한 법이지만 위헌인 조항을 고쳐 더 좋은 법을 시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불과 한 달 전에 위헌 결정이 내려진 ‘언론인의 선거운동 금지 사건도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사건은 공직선거법에 대한 것으로 김영란법과는 성격이 다르지만, 언론인과 관련한 ‘과잉금지의 원칙과 ‘죄형법정주의가 쟁점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헌재는 지난 6월 30일 언론인의 선거운동을 전면 금지하고, 위반하면 형사처벌을 하도록 한 공직선거법 제60조 1항 등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헌재 재판관 9명 가운데 7명이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주요 근거는 ‘과잉 금지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점이었다. 헌재 다수의견은 언론인의 범위가 지나치게 광범위하고, (선거운동의) 폐해를 시정하기 위한 법 조항들이 이미 충분히 있어 최소한의 기본권 침해라고 보기 힘들다”고 밝혔다. 기본권을 덜 제한하는 법 조항(언론기관의 공정보도 의무 규정한 8조)으로도 충분히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고, 외국에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법이라는 것이다.
헌재는 이와 함께 언론인의 범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헌재는 인터넷신문을 중심으로 언론인과 일반 시민의 경계가 점차 불분명해지고 있어 어디까지 언론에 포함될 것인지 예측하기가 어렵다”며 언론인 범위를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은 법은 ‘죄형법정주의에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법조계는 김영란법이 헌법 37조 2항이 규정하는 과잉금지 원칙과 부딪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할 때는 ▲목적이 정당하고 ▲방법이 적절하고 ▲침해는 최소한으로 하고 ▲침해되는 사익보다 지켜지는 공익이 커야 하는데, 이 법은 목적은 정당하지만 최소한의 침해로 보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특히 민간인은 형법이나 다른 개별법으로 규제할 수도 있는데 굳이 공직자와 똑같은 법을 적용해야 하느냐는 문제가 제기된다. 국가가 신분을 보장하고, 국민 세금으로 생계를 책임지는 공무원과 사기업 소속 언론인등을 동일선상에 놓으면 언론·사학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해외 부패방지법의 입법 사례를 살펴봐도 공직자를 위한 법이 민간인까지 규제하는 경우는 어디에도 없다. 기준은 때때로 김영란법보다 엄격하지만 대상은 공공영역에 한정돼 있다.
윤재윤 법무법인 세종 대표변호사는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원으로 적용대상을 넓힌 것은 사회적 공사 영역의 구분을 무시한 과잉입법으로서 위헌 소지가 있다”면서 언론인 등이 ‘공적 기능을 수행한다지만 공적 기능의 범위가 자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고, 대형 관급 수주 공사를 수행하는 대기업 임원 등으로도 무한정 확대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공직선거법과 마찬가지로 김영란법도 적용대상인 언론인 등 범위가 모호하고 광범위하다는 점이 문제될 수 있다. 최우정 계명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얼마 전 헌재가 언론인 선거운동 금지가 위헌이라고 판단했듯이, 김영란법도 언론인 범위를 애매하게 설정해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위배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김영란법처럼 ‘형사처벌 조항을 담고 있는 법의 경우 적용범위를 더 구체적으로 설정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채 포괄적인 언론중재법 규정을 그대로 준용했다는 것이다.
민간영역 내에서 누구는 법 적용을 받고, 누구는 적용받지 않으면 형평에 어긋난다는 것도 쟁점이다. 언론인과 사립대 교수뿐만 아니라 외국인학교, 유치원 교사들까지 모두 적용 대상이지만 막상 국회의원이나 시민단체, 정당인 등은 부정청탁 금지 예외로 들어가 규제를 피해갔다. 공공성이 강한 법률·의료·금융·방위 산업 종사자 역시 빠졌다.
김명식 조선대 법학과 교수는 법 전체가 위헌은 아니지만 민간인 가운데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원만 포함시킬 정당한 이유가 없다”며 국회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예외조항이 적용되면서 법 취지가 퇴색됐다”고 말했다.
‘부정청탁, ‘사회상규 등 애매한 용어들도 논란거리다. 이인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김영란법은 금지되는 행위들은 포괄적으로 적어놓고, 허용되는 예외들을 오히려 구체적으로 열거했다”며 본인 행위가 형사 처벌 대상인지 명확치 않아 제대로 지킬 수도 없고, 집행하는 사람들의 자의가 지나치게 커질 염려가 있다”고 말했다.
배우자의 금품수수를 자진 신고하지 않으면 과태료나 형사처벌을 받도록 한 김영란법이 연좌제로 인한 친족 처벌을 막고 있는 헌법과 배치된다는 시각도 있다.
헌법 13조가 모든 국민은 자기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해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임성택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는 큰 방향에서 김영란법에 동의하지만 배우자를 신고하지 않았다고 해서 범죄화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한 검찰 고위직 출신 변호사는 배우자 신고 의무는 연좌제 금지보다도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점에서 위헌일 수 있다”며 현행법에는 국가보안법상 간첩 신고에만 ‘불고지죄가 포함돼 있는데, 살인죄 등 다른 중범죄도 아니고 유독 김영란법에 넣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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